사건의 시작
“페미니즘은 인권의 문제
비판적 사고 키울 좋은 교재”
조작의 확산
남초 커뮤니티, 교사 얼굴 캡처
“남혐 교사” 낙인찍어 퍼트려
교사 책상 퀴어축제 상품 빌미
“동성애 권유하는 교사” 맹공격
일부 학부모 가세…SNS 조롱글
상식의 반격
“성소수자 존중이 왜 문제인가”
학부모·단체들 교사 응원 나서
명예훼손 누리꾼 고발 등 검토
“교육청이 현장 갈등에 나서야”
“페미니즘은 인권의 문제
비판적 사고 키울 좋은 교재”
조작의 확산
남초 커뮤니티, 교사 얼굴 캡처
“남혐 교사” 낙인찍어 퍼트려
교사 책상 퀴어축제 상품 빌미
“동성애 권유하는 교사” 맹공격
일부 학부모 가세…SNS 조롱글
상식의 반격
“성소수자 존중이 왜 문제인가”
학부모·단체들 교사 응원 나서
명예훼손 누리꾼 고발 등 검토
“교육청이 현장 갈등에 나서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와 한국 사회의 혐오세력들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혐오세력들이 해당 교사를 향해 온갖 인신공격을 쏟아냈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교사 지지 모임을 결성하고 나섰다. 학내 문제에서 성평등 교육, 교권 등 교육계 전체 문제로 번지고 있다.
■ “여자아이들도 운동장 쓰자”는 한마디에 지난 7월26일 한 온라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ㅇ초등학교 ㄱ교사가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나”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ㄱ교사는 “초등학교 운동장 보셨어요? 여자아이들의 것이 아니에요. 축구하고 노는 건 남자아이들이에요. 그걸 보통 교사들이 ‘아, 역시 남자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군’ 이러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지?’ 그런 고민을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ㄱ교사는 “페미니즘은 인권의 문제로 아이들이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길러낼 수 있는 좋은 교재”라며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1주일도 안 돼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수십만건을 기록했다. 곧이어 남초 커뮤니티(남성 이용자 비중이 높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ㄱ교사에 대한 혐오성 공격이 시작됐다. ㄱ교사의 얼굴이 캡처돼 “남혐(남자혐오) 교사”라는 낙인과 함께 퍼트려졌다. 소속 학교와 담당 교육청으로도 항의 민원·전화가 빗발쳤다.
비난은 ㄱ교사의 책상이 공개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ㄱ교사가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책상 사진엔 퀴어 축제에서 판매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동성애를 학생들에게 권유하는 교사”라는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ㄱ교사가 항문 섹스를 가르쳤다”는 비방 글도 이어졌다.
개학 이틀 뒤인 지난달 25일 이 문제 논의를 위해 해당 학교에서 학부모 간담회가 열렸다. ㄱ교사를 두고 토론을 하려던 간담회는 수업 중단을 요구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고성과 폭언을 터트려 난장판이 됐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학부모는 “학부모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간담회에 참석해 한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ㄱ교사는 현재 병가를 낸 상태다. “이 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서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 동료 교사가 전했다.
■ 교사를 지켜라 ㄱ교사를 응원하는 학부모 및 단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밤 11시 정각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엔 왜 학내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지를 적은 글과 함께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가 붙은 손글씨 인증 사진이 600건 넘게 올라왔다.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이 기획한 ‘8·26 공동행동’이었다. 지난 1일에는 금태섭·권미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해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초등성평등연구회, 아하 성문화센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등은 6일 ‘페미니즘교육실현을 위한 네트워크’(가칭)를 조직하고 ㄱ교사에 대한 보호, 사실관계 정정 보도 요구, 명예훼손성 글 게재한 누리꾼 고발, 성평등 교육 운동 확대 등을 다각도로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ㄱ교사가 어떤 말을 했다 안 했다는 식으로 하면 앞으로 성평등 교육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일일이 대응하진 않았는데 학부모들이 그런 주장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어 앞으로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ㄱ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축제 관련 영상을 틀면서 동성애 차별 철폐 교육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참석한, 서울시청에서 합법적으로 열린 축제의 퍼레이드 모습을 40초가량 보여준 것이다. 시의성 있는 자료로 교육에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학내 문제 넘어 교육계 전반 문제로 서울시교육청이나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업시간에 어떤 학습주제, 학습자료를 제시하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이 많다. 논란이 커지긴 했지만 교사가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학습자료를 제시한 것에 대해 교육청이 제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결 주체는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이다. 교육청이 나서면 월권”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지역 한 교사는 “성평등 교육에 관한 현장 갈등 문제에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영진 문화평론가는 “ㄱ교사에 대한 반응은 피해망상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다”며 “인권과 젠더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을 가르쳐본 적이 없으니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의 한 학부모는 “ㄱ교사는 ‘성소수자도 존중해야 한다. 왜냐면 저 사람들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니까’라고 지극히 당연한 것을 가르쳐준 선생님 아니냐”며 “어른들부터 그동안 잘못된 교육을 받아와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 같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양진 김미향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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