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와 지지자들이 지난 6일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선거벽보 훼손사건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득표율 4위를 차지하며 성평등 의제로 돌풍을 일으킨 신지예 녹색당 후보의 ‘성평등 계약제’ 공약이 올 하반기께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에서 도입될 예정이다. 비슷한 공약을 들고 나온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뒤 공약 이행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17일 서울시 윤희천 여성정책담당관은 “박원순 시장의 공약 중 서울시 위탁기관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구체안을 점검해 올 하반기께부터 시행할 예정”이라며 “서울시가 기업 또는 공공기관과 위탁 계약을 체결할 때 표준계약서에 성평등 조처 강화, 성폭력 대응 체계 강화를 강제 조항으로 넣어 이행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표준계약서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과태료를 낸 사업주와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해당 기업·기관의 성평등 조처가 미흡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등의 조항을 추가하고 올 하반기께 적용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기관의 범위와 추가되는 조항의 문구 등을 좀더 구체화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성희롱·성폭력 및 2차 피해 예방대책’을 발표한 지난 3월부터 이와 관련된 내용을 검토해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박원순 후보는 서울시장 시절인 지난 3월 관련 정책을 내놓았으나, 서울시의 시행 시기가 올해 하반기로 명시되고 표준계약서 조항이 추가되는 등 내용이 구체화한 것은 최근 일이다. 신지예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성평등 계약제'를 우선순위 2번째 공약으로 내걸고 성평등 의제를 전면화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후보 시절인 지난 5월20일 66개의 핵심공약 중 하나로 서울시와 계약을 맺는 위탁기관에 대해 성희롱·성폭력 사건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세부 공약으로 ‘성폭력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 시 계약해지 조항 신설’, ‘계약한 사업기관의 성평등·인권 교육 의무화 추진’ 등이 있었다.
하지만, 강도높은 ‘성평등 계약제’를 들고 나왔던 녹색당에서는 미진하다는 반응이다. 김형수 녹색당 서울시당 정책팀장은 “‘성평등 계약제’의 본래 취지대로라면 대상 기관이 서울시 위탁 기관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계약을 맺는 모든 기관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사건 발생 이후 대처를 보고 계약 해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전 해당 조직의 성평등 문화 전반에 대한 이행 계획서나 각서를 받는 방식으로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라는 선택 조항이 아닌 강제 조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초 녹색당이 공약한 ‘성평등 계약제’는 서울시와 위탁, 용역, 사업 등의 각종 계약을 맺는 모든 기업이나 기관에게 계약시 성평등 이행 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행각서에 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인권 교육, 조직 내 성폭력 대응 체계 구축 등을 포함시켜 서울시와 계약을 맺는 기관이나 기업이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평등 일터 인증서’를 부여해 향후 서울시 위탁·용역 사업 계약시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있다. 신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는 곳에는 서울시 예산이 단 1원도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윤희천 담당관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서울시에서는 전문가 자문 등 간담회를 통해 1~2월부터 관련 내용을 검토해 3월 성희롱성폭력 대책에 포함했다. 이번 하반기 추진은 녹색당의 공약과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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