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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폭력 남편 살해 아내 징역형 확정에 25년 전 ‘문재인 변론’ 화제

등록 2018-07-04 14:03수정 2018-08-17 15:38

37년간 가정폭력 시달린 60대 여성
대법원, 지난 2일 징역 4년 확정에
“가정폭력 정당방위 인정해야” 비판
25년 전 문재인 변호사도 “정당방위” 변론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모습. 1987년 9월 모습.문재인 캠프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모습. 1987년 9월 모습.문재인 캠프 제공
“만약 피고인이 절박한 생명의 위협 속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면 설사 피고인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살의를 품었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중략)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르는 절박한 위기와 공포에 놓여 있던 사람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하여 정당방위를 부정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1993년 11월 변호사 문재인

지난 2일 대법원이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집에 있는 돌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여성에게 징역 4년을 확정하면서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하라’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을 숨지게 한 30대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변론요지서가 온라인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993년 2월 부산, 당시 서른일곱살이던 이아무개씨는 지난 14년간 자신을 구타·학대하던 남편이 목에 칼을 들이대는 등 또다시 위협을 하자 칼을 빼앗고 그 칼로 남편을 찔러 숨지게 했다. 당시 1심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러한 결과에 반발해 ‘무죄석방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꾸려졌고 전국에서 1만3천여명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무죄로 석방하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이 사건은 5년 뒤인 1998년 가정폭력처벌법(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은 문재인 당시 변호사는 변론요지서에서 “1심 판결은 피고인이 당하고 있던 위해의 상황을 과소평가했다”며 “피고인은 칼을 빼앗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절박한 공포 속에서 피해자에게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칼을 뺏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문 변호사는 지속적인 폭행이 오히려 살의를 입증하는 정황이 되는 모순도 지적했다. 그는 “1심 판결은 (피고인이) 극심한 폭행에 시달렸으니 상대방에게 증오감을 품었을 것이고, 그 증오감이 살의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식의 추론을 깔고 있다”며 “절대적 폭력 앞에서는 증오조차 품지 못하며 설사 증오의 동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 성립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게 판례”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문 변호사의 변호로 항소심 결과는 달라졌을까. 1993년 11월11일 부산고등법원은 “이씨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 등 그동안 겪은 가정생활의 고통을 참작한다”면서도 “사건 전후의 정황이나 수사 기록을 살펴볼 때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보다 1년이 낮아지긴 했지만 ‘무죄 석방’을 요구해 온 공대위나 문 변호사에겐 아쉬운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이씨 사건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법원의 판단은 그대로다. 지금껏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 가운데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2일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은 여성 역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는 3일 논평을 내고 “이 여성은 혼인기간 내내 칼에 찔리고 가스통으로 머리를 가격당해 혼절해서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도 있는 등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다”며 “가정폭력 피해자는 폭력상황에서 가해자가 자신을 죽일 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음에도 사법부는 이러한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는 2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데이트 도중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살인 혐의가 아닌 상해치사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을 예로 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성이 여성을 죽일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왜 죽이겠느냐, 살인이라고 고의를 인정하기 좀 어려운 상황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간주를 하면서 신체적 열세에 있는 여성이 남성을 죽인 경우에는 ‘체격이 더 큰 남성을 고의도 없이 어떻게 죽이느냐’며 대부분 살인죄를 적용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2일 대법원 결정에 대해서도 “학대 피해를 당한 37년간의 역사가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는 데 활용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 시행 20주년을 맞은 가정폭력처벌법부터 시급히 개정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이 ‘가정 보호와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탓에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고 이로 인해 가정폭력이 지속,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배우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피해자 가운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2.8%에 그쳤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불기소되거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는 경우가 전체의 85%에 이르렀다.

여성의전화는 “이러한 법의 한계로 인해 가정폭력은 결국 ‘죽거나 죽이거나’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가정폭력 정당방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인권 보장’ 관점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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