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여성을 제외한 모든 대상에 대한 혐오를 표방하고 있는 커뮤니티 ‘워마드’(WOMAD)에 태아 사체 사진을 전시한 게시물이 올라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여성계에서 워마드의 이런 행태가 “낙태 반대 주장을 강화할 뿐 여성들에게 전혀 힘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선혜 ‘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위원은 17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유산된 태아의 사체 사진을 전시하는 행위는 낙태 반대 집단에서 널리 시행해온 ‘반낙태정서’ 고취를 위한 고전적인 방법”이라며 “(워마드) 게시물의 이미지와 글들이 인공임신중절을 이미 경험한, 현재 고민 중인, 혹은 앞으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여러 여성들에게 과연 힘을 주고 있는가. 유산과 사산의 경험을 한 여러 여성들의 복잡한 고통의 경험을 덜어주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워마드) 게시자는 아마도 이 행위가 낙태를 터부(금기)시하는 이 사회에 대한 조롱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산된 태아 사체의 조롱은 임신중단의 문제를 ‘여성 대 태아’의 대립 구도로 주장해왔던 오래된 낙태 반대 집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강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장애와 젠더’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성과 재생산 정치에 개입하고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취지로 2016년 만들어진 단체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건강과 대안 젠더 건강팀,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개인연구자들로 구성돼 있다.
김 위원은 또 워마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정 행동을 자극적인 방식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일부 언론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17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워마드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특정 행동 자체를 한국 사회가 지금 하나하나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워마드가 가장 선정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한국의 페미니즘 관련 기사의 중심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자체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페이스북 글에서 워마드의 행위를 지적한 것은) 낙태된 태아의 사체를 전시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여성운동의 아젠다 중 하나인 재생산권 운동(낙태죄 폐지 포함) 안에서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관련 기사 : 도심 낙태죄 폐지 집회…“임신 중지 여성 범죄자 낙인찍기 그만”)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총집중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낙태(임신중지)를 형법으로 처벌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면서, 한 사회의 재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오롯이 전가해 왔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아울러 언론이 낙태와 관련한 주제를 다룰 때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 이미지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 위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한국의 언론들도 습관적으로 낙태 관련 기사를 다룰 때 만삭의 임산부의 배 혹은 작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태아의 이미지를 사용한다”며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의 인공임신중절은 외관상 여성의 배가 불러오기 전에 이루어지며, 그 시기 태아는 인간의 형태로 발전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이미지의 사용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왜곡된 정보 제공의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마지막으로 한국의 페미니즘 이슈가 ‘워마드’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방식으로만 다뤄지면서 페미니즘 안에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워마드’의 행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페미니즘 의제를 풍부하게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페미니즘의 의제로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말’을 하고 있는가”라며 “앞으로는 제발 언론을 통해 그 다양한 말들을 더 많이 전해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관련 기사 : ‘아동 성폭행 파문’ 워마드…‘미러링’ 사라지고 ‘혐오’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