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지도를 잇다]
② 케냐 ‘여성 성기 훼손’ 근절 운동 케냐 HIV 감염인 활동가 페니 아위티 인터뷰
지난해 8월 HIV 감염인 활동가 페니 아위티가 둘째 딸 아히디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있다. 페니 아위티 제공
지난해 8월. 케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페니 아위티(26)는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페니의 두 팔엔 1년 전 태어난 둘째 딸 아히디가 안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페니 아위티입니다. 저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고요. 10년간 꾸준히 약물 치료를 한 덕분에 HIV 음성인 건강한 두 딸을 낳았습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모유 수유도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수유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엄마 품에 안긴 아히디는 편안한 표정으로 페니의 젖을 빨았다.
지난달 11일 ‘음시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가 주최한 ‘2018 청소년 포럼’에서 강연자로 나선 페니는 스스로를 ‘HIV 감염인 활동가’라고 부른다. “저 같은 HIV 감염자들을 위해 감염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강연과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는 타지 재단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HIV 감염자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요.” ‘HIV 감염자는 금방 죽는다’ ‘감염자 가까이만 가도 전염된다’ ‘입술이 붉은 사람은 감염자다’. HIV에 대한 케냐 사회의 오해와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페니는 “아직 걸음마 단계임에도 많은 반발과 비난을 감수하다 보니 오히려 좀 뻔뻔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1992년 케냐 나쿠루에서 태어난 페니는 일찍 부모님을 여읜 뒤 언니들의 손에 컸다.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지만 가족들은 ‘그저 면역력이 약해서 그렇겠거니’라고 여겼다고 한다. 밝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장난꾸러기로 통했던 페니의 삶은 2007년 학교에서 받은 건강검진 뒤 악몽으로 바뀌었다. “보건선생님이 저를 따로 불러 HIV 검사 키트를 보여줬어요. 선명하게 두줄이 떠 있더라고요. 그때 처음 제가 HIV 감염자라는 걸 알게 됐어요.” HIV가 ‘무조건 죽는 병’인 줄 알고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페니는 언니들을 통해 부모님도 HIV 감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자매들 중에서 유일하게 저만 감염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페니는 지역 교회와 학교의 도움으로 약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병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16살 아이들에게 학교는 좁은 세계잖아요. 제가 HIV 감염자라는 소문은 금방 퍼졌고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멀리 떨어져 수군거리고 놀려댔어요. 마치 스스로가 전염병이 된 것 같았죠.” 숱한 오해와 낙인, 편견을 딛고 겨우 학교를 졸업한 페니는 2013년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배우자는 페니가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HIV 감염인 활동가 페니 아위티가 자신이 복용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소개하는 영상 갈무리. 페니 아위티 제공
케냐 미고리주 케한차에서 열린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 주최 ‘2018 청소년 포럼’에서 페니 아위티가 HIV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케냐 서남부 미고리주 케한차에 자리한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 사무실에서 페니 아위티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싱글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던 페니가 본격적인 HIV 감염인 활동가로 나선 것은 자신이 받았던 차별과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다. 페니는 2017년 6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공개적으로 ‘HIV 감염자’라고 밝혔는데, 이 글은 약 한달간 댓글 3천여개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페니는 ‘실제로 HIV 감염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리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IV 감염인이 굳이 다른 것을 꼽자면 하루에 두번 꾸준히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게 좀 귀찮다는 것 정도?(웃음) ‘우리의 일상은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로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모든 걸 밝히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고요.” 페니가 에스엔에스에 꾸준히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약물을 복용하는 모습 등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리는 이유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활동가로 나선 뒤 페니의 삶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낙인 없는 사회’(stigma free society)를 만드는 것이 됐다. 그는 HIV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해소하는 운동이 궁극적으로 여성인권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HIV 여성 감염인의 권리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권리와도 연결돼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적절한 의료진의 개입과 치료가 있으려면 여성 감염인에 대한 차별 해소가 선행되어야죠.” 인터뷰 내내 ‘여성 감염인들에 대한 의료·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 페니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일까.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위한 기본 가치죠.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권리가 동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평등한 기반 위에 있다는 인식이요.”
쿠리아/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