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번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26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는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일본 정부에 통보한 다음날인 2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근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1354번째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한가위 연휴 마지막날임에도 불구하고 시민 100여명이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2015년 한·일 합의 완전폐기와 재협상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한목소리로 반겼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체결한 합의에 따라 발족했고,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99억원)의 출연금을 내놨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형식으로 10억엔을 내놓은 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한·일 합의 무효’, ‘10억엔 반환’,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 등을 요구해왔다. 화해치유재단은 지난해 말에 민간 이사 5명이 전원 사퇴하면서 사실상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올해 안에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이를 일본 정부에 공식 통보한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6일 수요집회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추석 선물이 왔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에둘러 일본 정부에 밝힌 것은 늦었지만 피해자들의 요구에 귀기울인 한 단계 진전된 조처”라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8월부터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계속해왔다. 특히 지난 9월 3일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장대비 속에 휠체어에 앉아 직접 1인 시위에 나선 바 있다. 93살인 김복동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다.
26일 수요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한·일 합의 무효’ 등의 구호가 적힌 노랑나비 모양의 손팻말을 들고,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과 피해자 중심적 문제 해결 등을 한국과 일본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특히 연휴를 맞아 이날 집회에는 중고등학생 참가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서울 광신고 학생들은 할머니들께 하고싶은 말을 적은 포스트잇 208개로 대형 팻말을 만들어왔다. 광신고 1학년 황서영 학생은 “독일은 과거 만행을 반성하는데 일본은 과거를 성찰하지 않는다”며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를 촉구했다. 삼천포여고 3학년 강서정 학생은 “학교 역사동아리에서 전쟁의 만행을 알리는 전시물을 만들어 교내 곳곳에 붙였다”면서 “삼천포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있는 우리들도 기억하고 있으니 할머니들께 일본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그날까지 지치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1354번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26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는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에둘러 공식화하긴 했으나, ‘지혜로운 매듭’이 어디까지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2015년 한·일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반면 성노예제 피해자들과 정의기억연대는 ‘한·일 합의’를 무효로 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위로금’으로 받은 재단기금 10억엔을 반환한 뒤에 공식 사과와 함께 ‘법적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날 수요집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황선진 서울여대 ‘평화나비’ 대표는 “외교적인 문제가 있긴 했겠지만, 한·일 합의를 재협상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부족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잘못 꿰었던 첫단추가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바란다”며 “10억엔을 반환하고 피해자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후속 외교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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