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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폭력 해군간부 ‘무죄’ 선고한 군사법원, 존재 이유 포기”

등록 2018-11-26 14:05수정 2018-11-26 14:34

시민단체들, 1심 번복에 “합당한 처벌을” 규탄 기자회견
“군사법원, 감형 위해 군형법 아닌 일반 형법 적용 꼼수”
군법원 성폭력 선고유예 비율 10%, 일반 법원 10배 달해
여성·시민단체들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국가는 군대 내 성폭력과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여성·시민단체들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국가는 군대 내 성폭력과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해군 간부의 반복된 성폭력에 대한 징역 선고를 ‘무죄’로 뒤집은 고등군사법원의 판결을 “명백한 오판”이라고 규탄하며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군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16개 시민단체는 26일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등군사재판부는 합리적인 이유나 근거 없이 피해자의 증언을 배제하면서 가해자의 주장은 무턱대고 신뢰하는 성편향을 드러냈다”며 전군의 성폭력 예방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것, 군내 성소수자 인권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체계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국방부에 요구했다.

‘해군 간부 성폭력 사건’은 함정에서 함께 근무하던 상관 두 명이 성소수자인 부하 군인에게 성폭력 가해를 한 사건이다. ㄱ소령은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며 부하 군인을 지속적으로 추행, 강간하고, ㄴ대령은 해당 군인의 피해사실을 알고도 위로해주겠다며 불러 성폭행을 했다. (▶관련 기사: 상관에 성폭행 당한 대위 “군사법정서 재연해야만 했다”)

두 간부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ㄱ소령)과 8년(ㄴ대령)을 선고받았으나, 2심의 고등군사법원 특별재판부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고 둘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의 기억에만 의지한 진술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움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가해자에게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었다.

피고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음에도,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언만을 일방적으로 배제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장은 “고등군사법원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다는 첫번째 가해자 ㄱ소령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도 가해자의 부인과 두번째 가해자인 ㄴ대령의 진술을 토대로 피해자의 주장은 배척했다”고 짚었다. 그는 “ㄱ소령과 피해자가 서로 성적 호감을 가진 사이라는 걸 증명할 증거는 재판 과정에서 아무 것도 제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임 장교인 피해자에게 직속 상관인 ㄱ소령의 질책이 심했고 강압적인 태도로 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ㄴ대령이 “‘묵시적 합의’에 의해 가슴을 만지고 키스를 한 적은 있지만 성폭력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피해자는 초급 장교로 피해 당시 만 23세였다. ㄴ대령은 최고 책임자이자 함장이었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군대조직 문화에서 초급 장교와 대령 간에 묵시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전체 군의 5∼6%에 불과한 여성 군인의 특수한 근무환경을 재판부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20일 이상 한 배를 타야하는 함정에서 피해 군인은 유일한 여성이었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함정은 운명공동체니까 상관이 지시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일 지라도 무조건 수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또 다른 여성 해군 ㄷ씨의 발언을 예로 들며 “(군 안에서) 여성 소수자로서 고립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기저에 깔려있음을 재판부는 무시한다”고 했다.

수직적인 계급문화가 공고한 군대의 특성도 2심 재판부의 판결에선 사라졌다. 김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는 이번처럼 소위, 중위나 하사처럼 낮은 계급이다. 이들은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걸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으로 교육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라며 “상관의 말과 행동은 무조건 옳은 것,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협박 그 이상의 힘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군 내 소수자로서 여성 군인의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고등군사법원으로서 존재 이유를 포기한 위악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군 내 성범죄를 다루는 군사법원의 ‘꼼수’를 지적하며 군사법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는 “군대 내 성범죄를 더욱 엄벌하고자 군인들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도록 돼 있지만 군사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하기 위해 일반 형법이나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무더기로 벌금형을 선고하는 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형법은 성범죄 처벌조항인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이나 이에 준하는 행동을 모두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12월 “현역군인에게 군형법을 적용해야하나 일반 형법을 적용한 경우도 있었다. (군사법원의) 부적절한 법률적용과 온정적 처벌 경향이 확인됐다”며 “군인 등의 성폭력 범죄 양형기준을 별도로 마련할 것, 부하에 대한 지휘관과 부서장의 성범죄는 가중처벌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같은 달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 조사 결과를 보면, 군사법원이 선고한 전체 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가 여성 군인인 사건의 선고유예 비율은 10.34%로 일반법원의 1.36% 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군 법원의 독립성 결여와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방 간사는 “군판사, 군검사에 대한 근무평정 권한을 소속 군 법무실장과 지휘관이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군 판사는 수뇌부의 판단과 지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판결을 선고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고인 쪽은 고등군사법원의 군 판사와 해군본부 법무과장을 지냈던 고위 법무관 출신 변호인을 선임했다. 방 간사는 “예비역 변호인에 대한 전관예우로 의뢰인인 성범죄자에게 감형을 해주는 관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군사법원의 악습이며 이를 이용한 군 법무관 출신 성범죄 전문 로펌까지 나타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검찰은 지난 22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란 청와대 국민청원은 26일 오후 기준 18만 4천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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