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지난 7월 14일 오후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인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폭력과 차별을 끝내기 위한 여러분의 투쟁은 모두의 투쟁입니다. 여러분에 대한 공격은 제가 옹호하고 지키겠다고 약속한 유엔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격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서 있습니다.” (2012년 3월 7일)
“오해할 만한 소지가 (바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얘기입니다. 제가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의 인권과 인격이 차별받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2017년 1월 24일)
두 발언의 주인공은 같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유엔 사무총장’과 ‘대선 후보’라는 위치 정도다. 정치권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발언을 애매모호하게 회피하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는 일은, 사실 반 전 총장만의 일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17·18·19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됐지만 ‘성적 지향’이란 단어 때문에 통과하지 못했다. 오는 10일 세계인권선언 채택 70주년을 맞아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 차별의 현주소와 그 대안’ 토론회는 20대 국회에서 처음 열린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였다. 20대 국회 후반기에 돌입하고 나서야 처음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혐오와 차별은 정치권의 침묵을 먹고 자랐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은 “2013년 일베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지면서 처음 ‘혐오표현’이란 규정과 처벌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며 “인터넷에서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을 박근혜 정부 이후 정치권력은 최소한 방치하고 묵인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혐오가 확산하는 흐름을 막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을 하는 광화문 광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때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실체가 없는 망상으로 한 범행을 혐오범죄로 보긴 적절치 않다”고 발표해 논란이 됐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을 확산하는 이들은 종종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 현상을 설명하거나 사실 일부를 악의적으로 편집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때론 국가가 차별의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나 이주여성의 문제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 사월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지난 정부에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범죄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강제 단속하겠다고 했다. 이번 정부에선 서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강제단속을 계속한다며 포장만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외국인 및 재외국민 건강보험제도 개선방안’도 이주노동자를 적극 배제하는 정책이라고 짚었다. 그는 “(복지부의 정책은) 이주민들이 건강보험제도를 남용하고 부당하게 혜택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비숙련 노동직에 이주노동자를 투입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조차 없는 곳에 고용허가를 내줘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도 많다”고 지적했다.
혐오가 만연한 곳에서 소수자의 인권은 박탈당한다. 차별은 정당화되고, 평등이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같은 가치도 설 자리가 사라진다.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현행 법 제도 안에선 차별 행위의 피해자가 법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뿐이란 한계를 지적했다. 이 때 입증책임은 오롯이 차별을 받은 사람에게 전가된다. 조 위원장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상대적 약자이고 차별에 관한 증거가 (반대로) 차별을 한 사람의 지배영역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온전히 차별의 존재를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국가인권위 산하에 차별피해소송지원기금 및 차별피해소송지원변호인단을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조 위원장은 또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을 때 혐오의 문제는 그저 집단과 집단 사이의 평면적인 갈등의 문제로 오인되기 쉽다”며 “2018년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들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제도화하는 법으로서 중요성을 지닌다”라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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