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국가 책임으로 규정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동안 가정폭력, 성매매 등의 개별법은 있었지만 데이트폭력과 디지털성폭력, 사용자로부터의 불이익 등 ‘2차 피해’까지 포함한 여성폭력 전반을 규율한 법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여성폭력 실태와 관련한 국가 차원의 통계도 구축된다.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방지정책을 수립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법에서는 ‘여성폭력’의 유형과 범위를 확장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괴롭힘 행위,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까지 포괄한 것이다.
법에 ‘2차 피해’와 피해자 권리 조항을 명시한 점도 의미가 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사용자로부터 당하는 부당한 인사 조치 등을 ‘2차 피해’로 정의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했다. 또 피해자가 성별, 연령, 장애 등 특성에 따라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도 보장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국가는 5년마다 ‘여성폭력방지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여성가족부 장관은 3년마다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관련 통계를 내놔야 한다. 또한 여성가족부 산하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설립하고, 관련 정책 전반을 심의·조정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 위원회를 통해 중장기적인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성폭력’의 정의를 축소하고, ‘성평등’이란 문구를 ‘양성평등’으로 수정한 점은 한계로 꼽힌다. 이 법은 애초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으로 정의했는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명과의 통일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으로 수정했다. 이를 두고 피해자를 ‘생물학적인 여성’으로 한정해 성소수자 등을 배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동·청소년과 일부 남성 피해자가 제외됐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폭력 피해자의 지원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한다고 명시한 부분은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바뀌었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은 “남성이나 성소수자도 ‘성별에 기반한 폭력’의 피해자라면 당연히 국가 정책의 대상이어야 한다”며 “입법 취지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도록 하는 과제가 남았다. (정부가)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지침에서 상세히 안내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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