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우리는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불법촬영 피해 첫 추모제

등록 2019-01-30 21:53수정 2019-01-30 21:55

30일 죽음에 이른 불법촬영 및
비동의 유포 피해자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 열려
“자살 아닌 사회적 타살”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피해자 이름은 여기 계신 분들만 알고, 더 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자 여러분들은 기사에 쓰지 말아 주세요.”

마이크를 쥔 ㄱ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ㄱ 씨는 2017년 8월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겪은 친구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피해자의 이름을 알면, 그 이름으로 동영상을 검색해 보는 사람들이요.”

30일 저녁 7~8시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 피해를 겪으며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위한 첫 추모제가 열렸다.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페미당 창당모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이 주관했다. 평일 저녁 추운 겨울 날씨에도 참여자 200여명이 모였다. 피해자가 죽어도 ‘유작’이라는 말머리를 붙여 영상을 퍼뜨리는 유포자들, 이런 유포 행위를 방치하는 법과 제도의 공백 탓에, 피해자들의 이름은 ‘알아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됐다.

ㄱ 씨는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며 “그 애는 (웹하드에서 자신의 동영상을 발견한)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해서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맛있어 보인다’, ‘저런 XX를 입고 다니는 년들은 걸레더라’ ‘내가 본 국산 탑10에 든다’ (…) 그 외에도 수천 개가 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던 겁니까? 누구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왜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방관했습니까?”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추모제 주최자들은 공동 발언문을 통해 “성적 촬영물 비동의 유포를 성폭력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던 과거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이뤄낸 것도 많았으나 잃은 것도 많았다”며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에는 받은 줄도 몰랐던 상처를 돌보고, 서로를 바라보고, 위로하고, 눈물 흘렸던 하루의 끝에서, 또다시 ‘국산 XXX’로 소환될까봐 이름을 알아도 부를 수 없는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꼭 하고 싶은 말’이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1년 만에,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당신의 죽음을 재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이버성폭력 피해경험자의 죽음을 다시 명명할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자 1로 집계되었을 당신의 죽음은 타살 사건이었다.”

피해경험자를 지원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활동가도 추모 발언을 통해 “혹시라도 스스로를 탓하며 아팠을까봐 늦었지만 이제라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며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디 평안하세요”라고 말했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지원자가 아닌 죽어간 당신의 자매로서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이고 당신은 저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신체로만 읽히는 존재들이고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입니다. 당신이 다시 힘을 내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국산야동’이라고 불리며 웹하드 산업을 지탱해온 수많은 피해촬영물이 ‘디지털성범죄’ 혹은 ‘사이버성폭력’으로 재명명되며 경찰의 단속이 강화됐지만, 주최자들은 국가적 대책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최 쪽은 추모제에서 ‘불법촬영물 유통 근절을 위한 우리들의 요구안’을 통해 방통위에 △2008~2018년 웹하드 관리·감독 자료 공개 △웹하드 카르텔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계획 수립 △온라인성폭력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 수립 및 별도 기구 설치 등을 요구했다. 주최 쪽은 “이효성 방통위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며, 요구안과 함께 온라인 추모 페이지(https://govcraft.org/campaigns/149)에 모인 시민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아래는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겪은 친구를 떠나보낸 ㄱ 씨의 추모 발언 전문.

그 애는 2017년 8월 1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웹하드에서 자신의 동영상을 발견한 후부터 자살하기까지 3개월간, 그 애가 거의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에 더는 안 되겠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과 동행해 그 애 자취방의 문을 따고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구급차 안에서 그 애 핸드폰으로 부모를 부르고 그 애가 숨이 끊어진 순간 병원에 있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애 장례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제대로 추모하고 애도한 적이 없습니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이 자리에서 별로 정갈하게 그 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죽음은 나에게 마음 정리가 채 다 되지 않은 일이고, 그런 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 의미를 따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그저 디지털성폭력 이슈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편인 일반인입니다. 사실 그 애와 절친한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그 애는 경찰, 법조인,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겨우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 애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는, 그 정도로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이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애는 왜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겁니까?

나도 그 애 장례식장에 가서 슬피 울고 추모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입니다. 그 전 3개월 동안 그 애 옆에 있어주고 지지하고 보조자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제 일상은 충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죽은 날 아침에 출근하고, 그 다음 날, 그 다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 하는 일반인이었습니다. 나는 힘에 부치게 했는데 뭐가 모자랐던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아니 사실 내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과호흡을 겪고 몇 번 쓰러지기도 하면서 우선 그 일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비극 때문에 생업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요. 개인 단위로는 감당할 수 없고, 개인의 일상이 망가질 만한 폭력을 왜 법과 행정이 맡지 않았던 겁니까?

마지막으로,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 애는 처음 도움 요청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볼까봐 불안증으로 덜덜 떨면서도 굳이 밖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애가 죽던 날 새벽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건 그 방이 그 애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개월 전에 봤던 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창문에는 깼다가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그걸 다시 깼다가 그 위에 또 테이프를 덧바른 흔적이 무수히 있었습니다. 책상, 의자, 침대, 노트북, 벽 등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부쉈다가 테이프를 발랐다가를 반복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했다가 살아보려고 했다가 또 죽으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보려고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2017년 8월 1X일에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애는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해서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맛있어 보인다’ ’저런 XX를 입고 다니는 년들은 걸레더라’ ‘내가 본 국산 탑10에 든다’ ‘X살 있어서 좋다’ ‘아니다 싫다’ ‘질질 싸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어느 학교 애다’ ‘그 학교 다니는데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수천 개가 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던 겁니까? 누구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왜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방관했습니까?

오늘 이 자리는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의 추모제라고 알고 왔습니다. 어차피 늘 숱하게 일어나는 일,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새삼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애의 이름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XX이에게, 지금까지 너의 죽음을 어느 정도 회피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XX이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이상으로 싸울 것임을 약속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30일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의 모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