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여성은 세상에 태어나 딸-아내-어머니 이렇게 세 번의 변신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몇 해가 지나야 과일 나무에 풍성한 열매가 맺히듯, 여자도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에 경륜이 쌓이면서 점차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태양이 과일을 키우듯, 여자는 한 가정을 알뜰하게 살리기에 "살림"이라는 고운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한다.
남자라는 고달픈 이름으로 살아가며 아내의 평소 행동을 보면서 가끔 “만약 어머니였다면”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필자를 강아지라 부르며 옆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는데, 아내는 숨 쉬는 것조차 지겹다며 살아주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고 한다. 그러니 남 앞에서 칭찬에 인색하고 흠은 대단히(?) 과장한다. 어머니는 외박을 해도 적당한 이유를 대면 대충 넘어 갔는데, 아내는 12시만 넘겨도 그 즉시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수사관으로 돌변한다. 상황이 이러니 해장국은 커녕 멀건 죽 한 그릇 제대로 얻어먹기 힘들다.
오랜 방황으로 불효를 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한번은 아내에게 만약 불가피하게 방황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했더니 싸늘하게도 이혼을 각오하란다. 이렇듯 아내의 사랑은 상당히 조건적이다. 어머니는 외식은 낭비라 여기고, 휴가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 하셨는데, 아내는 최소한의 문화생활쯤으로 여긴다. 한 남자의 아내로 살길 원했던 어머니와 한 여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도 불사하는 아내 사이에서 오늘도 번민한다.
한번은 신혼 초에 어머니가 옴박지(함지박의 사투리)를 가져오라 했는데, 아내가 은박지를 가져가자 “너는 대학까지 나와서 옴박지도 모르냐!”하고 호통을 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어머니와 아내는 정서적으로 공유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무엇보다 최대의 차이는 어머니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아내는 정정하게 그것도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고민이다. 어떻게든 부딪히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30년 이상을 함께 살아야 한다니 어찌 고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아내에게는 이런 차이에서 오는 고민을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쫓겨날 각오를 해야 가능한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렇다고 두 여자의 차이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직히 요즘엔 어머니가 아내로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내도 아이의 어머니로 10년을 살아서 그런지 이제 제법 음식도 어머니가 해준 것만큼 맛있고 살림도 깔끔하게 잘한다. 두 여자의 공통점은 좋은 점인지라 팔불출이라 할까봐 생략해야 하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면 그래도 세상 어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고 지혜롭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정을 편안한 안식처로 만드는 태양이자 여성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