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2050여성살이] 내 생식능력에 관심 좀 꺼줘

등록 2005-12-20 17:49수정 2005-12-21 13:57

반려동물과 함께 산지 1년, 내게 세상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족속과 동물을 싫어하는 족속으로 자연스레 나뉘어져 버렸다. 나의 반려동물인 깐돌이의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괜히 이야기 했다가 “인간이나 사랑하라”라는 충고를 들어야 하는 분위기를 구분할 정도가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어떤 경우이냐 하면, 에미도 ‘메리’이고 그 새끼들도 ‘메리’인 황구들을 5대 째 키웠을 정도로 개를 사랑하신다. 그런데도 결혼도 안 한 나이든 딸이 동물만 애지중지하는 것은 심히 못마땅하시나보다. “그놈의 동물(그것도 수컷인 놈)한테만 정 주면 난중에 아그가 안 생길지도 모른당께”. 세상에 별 희한한 걱정도 다 하신다 했건만, 이런 종류의 동물괴담은 사람들에게 퍽이나 공포스럽게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도록 얘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봤더니 그 집 부인이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기 때문이더라, 갓 태어난 아기를 질투에 불탄 개가 물어뜯어 죽였더라, 는 ‘카더라’ 통신이 남발하더란 말이다.

개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일어날 수 있고, 개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인간사(예를 들면 종족 번식)에는 관심 없는 여성도 있을 수 있으니 이 모든 괴담을 동물포비아들이 지어낸 음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유독 여자들의 동물사랑만 보면 삐죽거려대는 그 입들을 참아내는 건 고역이다. 우리 엄마야,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공이란 게 있으니 내 인생에 그 정도의 간섭은 하실 수도 있겠다 치자. 허나 언제부터 내 후세를 그리 걱정해주었는지도 모를 이들이 “개 키우면 애가 안 생긴다는데 웬만하면 결혼 전까지만 키우라”고 충고씩이나 하는 걸 듣고 있자면, 이 사람들은 내가 아이 낳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아이 낳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여자들은 개 하나 마음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인지, 내가 아이 낳을 계획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지, 왜 남의 생물학적인 생식능력에 그리 관심이 많은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마흔을 갓 넘은 한 선배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한 ‘관심’이 지속될 것이니 남 보기에 ‘아이 낳을 만한 나이’를 넘기는 동안에는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듣지 말라 한다. 알고 보니 싱글인 그 선배는 “아이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낳아라”는 충고를 몇 년 동안 줄기차게 들었다는 것이다. 얼굴이 주름지고 검버섯이 생긴 지금에야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없어졌다니,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생식능력이란 온전히 그 여성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음이다.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반려동물과의 생활까지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하다니, 화려한 싱글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조용한 싱글로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