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산지 1년, 내게 세상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족속과 동물을 싫어하는 족속으로 자연스레 나뉘어져 버렸다. 나의 반려동물인 깐돌이의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괜히 이야기 했다가 “인간이나 사랑하라”라는 충고를 들어야 하는 분위기를 구분할 정도가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어떤 경우이냐 하면, 에미도 ‘메리’이고 그 새끼들도 ‘메리’인 황구들을 5대 째 키웠을 정도로 개를 사랑하신다. 그런데도 결혼도 안 한 나이든 딸이 동물만 애지중지하는 것은 심히 못마땅하시나보다. “그놈의 동물(그것도 수컷인 놈)한테만 정 주면 난중에 아그가 안 생길지도 모른당께”. 세상에 별 희한한 걱정도 다 하신다 했건만, 이런 종류의 동물괴담은 사람들에게 퍽이나 공포스럽게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도록 얘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봤더니 그 집 부인이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기 때문이더라, 갓 태어난 아기를 질투에 불탄 개가 물어뜯어 죽였더라, 는 ‘카더라’ 통신이 남발하더란 말이다.
개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일어날 수 있고, 개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인간사(예를 들면 종족 번식)에는 관심 없는 여성도 있을 수 있으니 이 모든 괴담을 동물포비아들이 지어낸 음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유독 여자들의 동물사랑만 보면 삐죽거려대는 그 입들을 참아내는 건 고역이다. 우리 엄마야,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공이란 게 있으니 내 인생에 그 정도의 간섭은 하실 수도 있겠다 치자. 허나 언제부터 내 후세를 그리 걱정해주었는지도 모를 이들이 “개 키우면 애가 안 생긴다는데 웬만하면 결혼 전까지만 키우라”고 충고씩이나 하는 걸 듣고 있자면, 이 사람들은 내가 아이 낳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아이 낳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여자들은 개 하나 마음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인지, 내가 아이 낳을 계획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지, 왜 남의 생물학적인 생식능력에 그리 관심이 많은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마흔을 갓 넘은 한 선배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한 ‘관심’이 지속될 것이니 남 보기에 ‘아이 낳을 만한 나이’를 넘기는 동안에는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듣지 말라 한다. 알고 보니 싱글인 그 선배는 “아이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낳아라”는 충고를 몇 년 동안 줄기차게 들었다는 것이다. 얼굴이 주름지고 검버섯이 생긴 지금에야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없어졌다니,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생식능력이란 온전히 그 여성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음이다.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반려동물과의 생활까지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하다니, 화려한 싱글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조용한 싱글로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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