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앱 등을 이용해 상대를 칭찬한 뒤 성적인 영상을 요구하는 등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지난해 랜덤채팅앱에서 이뤄진 2230명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미성년일 때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상대방이 미성년임을 인지한 뒤에도 대화를 지속하는 비율은 61.9%에 달했다.
여성가족부는 15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정원에 의뢰해 3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이번 조사에선 온라인에서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랜덤채팅앱의 대화 패턴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심층 분석했다.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랜덤채팅앱 현황 분석’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399개 랜덤채팅앱 가운데 77.7%가 만 18살 이상 ‘성인’ 등급으로 설정돼 있으면서도 실제로 본인인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연구자가 13·16·19·23살 여성으로 가장해 랜덤채팅앱에 접속한 뒤 조사 대상자 2230명과의 대화를 수집·분석했는데, 대상자의 10명 중 9명이 30대 이하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21.4%는 미성년자에게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채팅(12.3%)을 하거나 음란 사진과 영상을 공유(7%)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온라인 그루밍’처럼 성적인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친밀감을 형성한 뒤 성적인 행위를 유도하는 ‘유도형 채팅’은 대화 상대가 성년일 때(9.6%)보다 두배 가까이 높게 나타나, 연령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형정원은 “미성년이 대상일 때 주로 이상한 사람이나 변태가 아님을 안심시키고 부모나 친구에게 대화를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고, 영화감상이나 여행, 음주, 용돈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형정원은 또 전체 앱의 27.8%인 111개 앱의 상호명이 일치해 동일한 운영자가 여러 앱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랜덤채팅앱은 다른 앱에 견줘 비교적 개발이 쉬운데다 개발된 앱을 복사하는 형식으로 유사한 앱을 개발한 뒤 사용자를 연동하는 형태의 ‘전문 사업자’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성구매 후기 사이트 15개를 분석한 결과 1일 평균 방문자는 3만8511명, 평균 페이지뷰는 44만4428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등록업소는 7973개소고 후기글은 98만 3684건이다. 유튜브에서 검색되는 성매매 관련 영상 5067개 가운데 업소 홍보나 후기를 담아 성매매를 조장하는 영상은 2425개(47.9%)로 나타났다.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전국 중고생의 ‘성적 유인 경험’ 조사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국 중·고생 6423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한 성적 유인’ 경험 조사도 이번에 처음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11.1%가 “지난 3년 간 온라인에서 원치 않는 성적 유인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만남을 유도하는 것까지 경험한 비율은 2.7%였다. ‘성적 유인’을 경험하는 주요 경로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메신저 등 인스턴트 메신저(28.1%)와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27.8%)가 가장 많았고, 인터넷 게임(14.3%)이 뒤를 이었다. 형정원은 또 “현행 성매매처벌법상 성매매 강요·알선·광고 등 3개 유형 범죄는 법정형에 견줘 양형기준이 낮게 설정돼 있다”며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는 경우가 전체의 71%를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반영해 “올해 하반기에는 랜덤채팅앱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그루밍 범죄에 대한 처벌 근거 마련할 것”이라며 “잠입수사 도입 등 제도 개선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