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장례 방식 등에 대한 의견이 나뉘고 있다. 왼쪽은 서울시가 마련한 박 시장의 온라인 분향소, 오른쪽은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화면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그의 성추행 피소 사실과 장례 방식을 두고 진보진영 내에서도 성별, 세대별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연대 성명을 낸 곳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등 일부 여성단체에 국한된다. 그 배경에는 성범죄를 바라보는 인식의 간극이 있다. 근본적으로 젠더 문제가 기존 민주화 세대, 진보진영의 핵심 의제로 자리잡고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시장에 대한 애도와 피해자와의 연대 사이에서 시민사회는 양분된 모양새를 보였다. 서울시 누리집에 마련된 온라인 분향소에는 12일 밤 9시40분 기준 100만여명이 헌화를 했다. 시민사회운동의 기틀을 닦은 점, 서울시장으로서 다양한 개혁을 추구해온 점 등을 기리기 위해서다. 같은 시각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5만여명이 동의했다. 이 청원에는 성추행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 세상을 등진 유력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2차 가해를 반대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를 두고 “그래도 추모가 먼저”라는 입장부터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애도에 집중하라”는 비난까지 이어졌다.
이런 양분된 여론은 범진보진영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지지하며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힌 정의당 의원을 향해선 비판과 응원이 엇갈렸고, 진보진영 지지를 자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되레 피해자를 색출하려는 2차 가해성 움직임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 데 당 차원 대응을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역정을 냈다. 민주당이 서울 곳곳에 내건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두고도 ’2차 가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철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처럼 논쟁이 격화되는 것을 두고,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는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젠더 문제가 중심에 놓여 있지 않아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며 “민주화운동이 성평등을 포함한 다양한 가치 중심의 질적 도약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지 못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묵살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모습을 두고 “사건의 중심에 놓여야 할 피해자와 관련된 이슈를 뒤로 미루고, 박원순 시장의 공백과 그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을 먼저 고려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2030 여성들은 각자가 겪은 ‘직장 내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며 피해자에 대한 언급 없이 박 시장의 공적만 기리는 정치인들의 대응에 분노를 표했다. 페미니스트문화기획자 그룹 ‘보슈’의 서한나 대표는 “여성들은 전 생애에 걸쳐 받는 (성범죄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칭 진보인사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가해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0일 페이스북에서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한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며 고인을 두둔했는데 ‘스쿨미투’로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겪은 직장 내 성폭력 경험을 에스엔에스에 적으며 피해자를 지지한 작가 김은화씨는 “가해자에게는 빛나는 과거가 있었던 만큼 전도유망한 미래가 있다는 논리가 따라붙는데, 성폭력 피해를 입고 회사를 그만둔 숱한 여성들의 과거와 미래는 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가”라고 되물었다.
피해자의 고소는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됐지만,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포괄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그의 죽음으로 어렵게 구축해가고 있는 성폭력 예방시스템이 또다시 부당한 공격을 당하게 됐다”며 “이런 책임을 물을 개인이 떠났으므로 ‘서울시’라는 시스템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무엇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형중 정책연구자는 “박 시장을 진정 애도하려 한다면 그가 살아생전에 추구했던 가치에 부합하는 추모를 해야 한다고 본다”며 “그것은 ‘누구에게도 폭력적이지 않은 추모’ ‘나의 애도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되지 않을까 세심하게 배려하는 추모’일 것”이라고 짚었다. 손 평론가는 “박원순 개인보다 박원순이라는 개인이 상징하던 가치의 상실을 애도하고, ‘그 가치 이후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정치적이고 윤리적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잠시 유보하기로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바로잡았습니다
◇ 2020년 7월13일 05:00 등록된 위 기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했던 부분을 2021년 4월15일 피해자로 바로잡았습니다. 그해 7월13일 피해자 쪽의 기자회견 전 혼용돼 사용됐던 표현이긴 하나,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었습니다. 피해자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