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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공공부문 성폭력 매뉴얼, 촘촘했지만 전혀 작동 안했다

등록 2020-07-15 05:00수정 2020-07-15 11:45

박원순 성추행 의혹 진상요구 확산

특별신고센터 운영·매뉴얼 의무화
2년전 도입에도 박원순 고소인 외면
“성평등 조직문화 없다면 종잇조각”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에게 연대의 뜻을 밝히며<한겨레> 젠더데스크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메시지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에게 연대의 뜻을 밝히며<한겨레> 젠더데스크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메시지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8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도 ‘미투’가 잇따르자, 정부는 새로운 제도 마련에 나섰다. 공공부문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성폭력을 신고하는 특별센터를 운영하고 ‘성차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돕는 컨설팅 사업도 실시했다. 국가기관, 지자체, 학교 등 공공부문이 대상이다. 기관마다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매뉴얼 작성도 의무화했다. 하지만 성평등한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뉴얼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내부 은폐 논란까지 불거진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2018년 만들어진 뒤에 지난해 개정된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살펴봤더니, 사건이 발생하면 ‘고충상담원’인 여성권익담당관이나 시에서 독립된 시민인권보호관에게 신고하고 시민인권보호관이 조사를 전담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고소한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러한 제도적 장치와 매뉴얼은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김기현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은 “시장도 매뉴얼 적용 대상이지만, 이번 사건은 신고 접수된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앞줄 왼쪽 둘째)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의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자료가 배포되는 동안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앞줄 왼쪽 둘째)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의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자료가 배포되는 동안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번 사건처럼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별도의 매뉴얼이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만든 이 매뉴얼에는 ‘기관 내부 절차의 공정성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급기관이 직접 사건처리 과정을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서울시 산하 기관장이 성추행을 하면, 서울시 고충상담원이 피해자를 상담하거나 보호하는 방식이다. 서울시장이 직접 가해자인 경우에는 절차가 불분명하다. 피해자가 정식으로 신고했다면 행정안전부가 관리·감독했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해석도 있다.

배복주 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미투 이후로 모든 공공기관에 담당자, 제도 등이 마련됐지만 사건을 막지 못했다”며 “조직문화를 성평등하게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나 절차라도 조직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내부 신고 절차나 사건처리 과정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는 한, 그동안 공공부문에 마련해놓은 여러 제도들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여가부가 2018년 6월 기초지자체 공무원 10만8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3년 이내에 성희롱 등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11.1%에 이르렀으나, 응답자 가운데 74.5%는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직장 내 공식기구에 신고한 응답자는 3.9%에 그쳤다.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 컨설팅위원인 이혜온 변호사는 “제도를 잘 갖춰놨으니 괜찮다고 여기는 조직문화도 큰 문제”라며 “긴급한 신고를 받고 공공기관에 나갔는데, 조사를 착수하기도 전에 신고 접수 사실을 바로 회사 주요 조직에 알려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에 놀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서울시는 진상조사를 위한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황예랑 서혜미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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