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정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이 23일 정부서울청사 여가부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기자 브리핑을 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와 관련해 서울시가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지원방안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과정이 복잡해 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 우려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서울시 현장점검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번 현장점검은 28∼29일 이틀간 서울시의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에 대해 실시한 것으로 여가부 내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추진 점검단을 포함해 법률·노무·상담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여가부는△고충심의위원회 접수 및 처리현황 △최근 3년간 고충상담 접수현황 △2013년 이후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 처리현황을 서면으로 확인하고, 인사담당자·고충상담 업무담당자·노조추천 직원 및 20·30대 직원을 심층면담했다.
여가부는 이번 점검에서 “최근 사건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 보호·지원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서울시에 피해자 보호·지원계획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지적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피해자 보호 규정을 준수해 △피해자 익명성 보장 △고충상담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조력자 지정·운영 △인사 상 불이익 방지 조치를 해당 계획에 담아야 한다고도 밝혔다.
서울시가 2회에 걸쳐 전 직원 대상으로 ‘2차 피해’ 주의 공문을 보냈으나,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단 점도 지적했다. 여가부는 서울시에 “2차 피해 정의와 유형에 대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2차 피해 제보절차와 처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무관용원칙에 대해 기관이 지속적으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가부는 또 서울시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절차가 복잡한데다 가해자 징계까지 장시간이 소요돼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도 요청했다. 다층적인 신고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피해자 관점에서 볼 땐 보호·조사·징계 절차가 복잡하고, 사건처리 과정에 참여하는 관련 부서가 많아 처리 과정에서 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전체 사건처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피해자 접근성이 높고 익명성이 보장되며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 내부 고충상담창구 외에도 외부 상담·신고기구의 사건처리방법, 피해자 지원사항 등을 정기적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희롱 고충상담원이나 고위직을 대상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2년(2018년∼2019년) 간 성희롱 고충상담원의 약 70%가 교육을 받지 않아 피해자보호 및 사건처리에 한계가 있고, 직급 구분 없이 집합교육 형태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고위직 대상으로 위력에 대한 인지, 성인지 감수성 제고 내용의 맞춤형 특별교육 실시를 제안”하며 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세대나 성별에 따라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 격차가 커서 소통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도 지적했다.
여가부는 서울시에 이번 현장점검 제안사항을 반영해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여가부는 아울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정책 지역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시·도국장회의’를 열고 전국 17개 시도의 여성정책 담당 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 지자체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 실태를 점검한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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