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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불교 교리는 남녀 평등해 ‘차별’ 들어갈 여지가 없어요”

등록 2020-08-11 18:59수정 2020-08-11 20:15

【짬】 종교와 젠더 연구소 옥복연 소장

옥복연 종교와 젠더 연구소장은 최근 몇년 새 비구니 출가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비구니 승단은 17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온 이후 계속 존재했죠. 티베트나 동남아 나라들의 비구니 승단은 사라졌어요. 한국 비구니 스님들은 이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 비구니 출가자가 주는 데는 종단 성차별도 영향이 있다고 봐요.”       강성만 선임기자
옥복연 종교와 젠더 연구소장은 최근 몇년 새 비구니 출가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비구니 승단은 17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온 이후 계속 존재했죠. 티베트나 동남아 나라들의 비구니 승단은 사라졌어요. 한국 비구니 스님들은 이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 비구니 출가자가 주는 데는 종단 성차별도 영향이 있다고 봐요.” 강성만 선임기자

“불교는 평등과 해방의 종교입니다.”

지난 3월 설립 10년을 맞은 ‘종교와 젠더 연구소’ 옥복연 소장의 말이다. “모든 인간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죠. 모든 게 변한다는 공 사상이나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상호공존 사상인 연기론이나, 불교 교리엔 남·여 차별이 들어갈 구멍이 없어요.”

하지만 교리와 현실의 차이는 크다. “조계종을 보면 남자 승려 비구와 여자 승려 비구니 그리고 남성 재가 불자와 여성 재가 불자 순으로 위계가 있어요. 비구와 비구니가 각각 6천여 명으로 거의 동수이고 불교 신도의 60%가 여성인데도요. 저는 이를 두고 21세기 신카스트제도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실은 그가 연구소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서울 장충동 연구소 사무실에서 옥 소장을 만났다.

그는 연구소를 만들고 불교계의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썼다. 조계종 중앙종회 엔지오 모니터단을 꾸려 3년 동안 세속의 국회 격인 종회 활동을 감시했고 8년 전 중앙종회 비구니의원 연구회 창립 때도 힘을 보탰다. 2017년엔 9개 단체가 참여한 ‘성평등 불교 연대’를 꾸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모니터단 활동은 5년 전에 중단했어요. 비구 의원들의 낮은 종회 참석률이나 막말 발언을 공개하고 비판했더니 종회 참관을 막더군요.”

위대한 불교 여성 인물을 찾아 알리는 활동도 해왔다. 올해 4년째인 ‘마하마야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부처님을 낳은 마야 왕비를 기리는 축제다. “마하는 ‘위대한’이란 뜻이죠. 마야 왕비는 비구도 그 앞에서 절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여성입니다. 여성 불자의 긍정적인 정체성 확립을 위해 축제를 기획했죠.” 그는 올해 8명의 공저자와 함께 마야 왕비에 대한 책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다-불교의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를 내기도 했다. “페스티벌을 하면서 마야 왕비에 대한 이론적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전문가들을 모아 책을 냈죠. 초기 경전을 포함해 여러 전적에서 마야 왕비를 다룬 기록들을 살폈어요. 마야 왕비가 주인공인 <마하마야경>은 <승만경>과 함께 여성이 주인공인 대승불교 2대 경전이죠.” 그가 최근 번역 출간한 <불교 페미니즘-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리타 그로스 지음)도 남성이 주도한 기록 작업으로 가려진 위대한 여성 불교 지도자들의 행적을 담고 있다.

종교와 젠더 연구소가 주관하는 마하마야 페스티벌 모습.  옥복연 소장 제공
종교와 젠더 연구소가 주관하는 마하마야 페스티벌 모습. 옥복연 소장 제공
지난 10년 이런 노력에도 종단의 차별적인 법과 제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8년 전에 비구니들에게 물어보니 ‘사법기구’인 호계원에서 비구한테 조사받는 것을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더군요. 비구니한테 받고 싶다는 거죠. 하지만 종법상, 검·판사격인 호계위원들은 다 비구입니다. 초심과 재심 중 초심이라도 비구니는 비구니가 조사하게 하자고 목소리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조계종 최고위직인 총무원장과 교육원장, 포교원장은 물론 교구 24개 본사 주지 모두 비구여야 한다는 종법 규정도 요지부동이다. “종법의 비구 규정을 성중립적인 용어인 승려로 바꿔야 합니다. 현재 조계종 부장 10여명 중 비구니는 1명뿐입니다. 종교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도 여성 할당제를 하잖아요. 우선 중앙종회라도 의원 30%는 비구니에게 할당해야 합니다.”

이런 목소리에 호응하는 비구는 어느 정도일까? 그는 “재작년 총무원장 선거 때 후보들에게 성평등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는데 반응이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성차별적인 종법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비구를 본 적이 없어요. 다른 비구들 눈에 날까 봐 말을 못하는 거죠. 일종의 브라더후드(형제 관계)죠.”

상당수 여성 불자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여성업설’도 난관이란다. “여성 불자들 스스로 전생에 나쁜 업을 지어 여자로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성불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스님에게 무조건 복종하죠.”

연구소 10돌 ‘교리-현실’ 좁히려 애써
비구·비구니 엇비슷…불자 60% 여성
“조계종 여전히 ‘신카스트제도’ 완고”
‘조계종의 성차별 종법 연구’ 박사학위
“요직 자격 비구 대신 성중립적 ‘승려’로”

성평등불교연대 통해 ‘성폭력 처벌’ 운동

그가 갈수록 교리를 정확히 불자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성업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교리의 뒷받침이 없다면 호소력이 없어요. 교리의 정신이나 맥락을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불교 경전을 보면 성차별이 없어요. 경전마다 남자의 경과 여자의 경이 따로 있어요. 예컨대 부처님 말씀을 모은 <앙굿따라 니까야>를 보면 남자를 가장 유혹하는 존재가 여자라는 경 바로 뒤에 여자를 가장 유혹하는 존재는 남자라는 경이 나옵니다.” 그는 “우선은 연구소 총서 발간 등으로 교리 알리기에 힘쓰고 종법 개정은 길게 보고 갈 생각”이라고도 했다.

세종대 80학번인 옥 소장은 학생운동을 거쳐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 위장 취업해 2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20년 가까이 성교육과 성상담 강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만 마흔이 되던 2002년에 여성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 4년 뒤 코네티컷주립대에서 ‘한국 위안부 운동의 여성운동사적 의미’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땄다.

옥복연 소장.       강성만 선임기자
옥복연 소장. 강성만 선임기자
그가 불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시기도 바로 미국 유학 때였단다. “어려서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다니기도 했지만 대학 때만 해도 불교의 기복적 성격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석사를 마칠 무렵 불교가 다시 찾아왔어요. 여성학을 배우려 초등생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갔는데 공부가 맘에 차지 않았어요. 한국 여성의 문제를 고민하며 답을 찾고 싶었지만 대학에선 흑인이나 서구여성 노동운동사를 가르치더군요. 제가 한국 위안부를 주제로 학교에서 발표했는데 아무도 몰라 충격을 받기도 했죠. 그때 부처님한테 그랬어요. 빨리 한국에 가면 불교와 관계된 일을 하겠다고요.” 그는 2013년에 서울대 대학원(여성학 전공)에서 ‘조계종의 성차별 종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공동대표로 이끄는 성평등불교연대는 교단 내 성폭력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춰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4월에는 엔번방 사건에 연루된 조계종단 소속 승려 처리 문제를 두고 성명을 내어 종단의 참회와 대안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종단의 성폭력 대처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다. “성폭력 사건이 나면 먼저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을 해야 합니다. 이래야 재발 방지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종단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재빨리 승적을 박탈해버립니다. 철저한 조사나 처벌 없이요.”

그는 하반기에는 기독교와 가톨릭 등 다른 종교단체 대표자들과 함께 성폭력 처벌을 받은 성직자는 해당 종단 기관 대표를 맡지 못하도록 법 개정 운동을 펼칠 생각이라고 했다. “성폭력으로 처벌을 받은 승려가 다시 불교 기관 이사로 복귀하더군요.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다른 종교 단체 대표자들과 만나 이야기해보니 종교내 성폭력 문제가 유사했어요. 기독교, 가톨릭, 천도교, 유교 등 다른 종교 단체 대표자들과 법 개정 운동에 나서자고 대략 뜻을 모았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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