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소위 '아내' 를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일컬어야 할까. '아내'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는 안식구와 밖에서 여러 가지 일에 활동하는 바깥주인에 대해 '內外'라고 한다. 아내라는 말은 집 안쪽이라는 뜻으로 이루어진 말중의 하나로 옛말에 안해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안(內)+ㅎ+ㅇ(처격조사)'라는 조어구조에서 발달하여 근원적 뜻은 집안쪽이라는 표현과 같으며 주부를 가리키는 명사로 굳어졌다. 주부라는 뜻에서 안식구. 안사람. 집사람. 아내는 같은 뜻이다. 이 안(內)이라는 말을 나타내는 호칭은 아낙또는 아낙네로도 발달하여 쓰인다.
http://cc.kangwon.ac.kr/~sulb/oldword/aneori.htm
여자가 집안 살림을 한다는 사실과 여자가 집안 살림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나타난 표현이 '아내'인 셈이다. 여자가 집안 살림을 하고 있지 않은 사실과 여자만 집안 살림을 할 필요는 없다라는 당위가 성립한다면 '아내'는 적합한 말이 아니다. 집사람, 안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집사람, 안사람은 어원이고 뭐고 따질 것도 없이 노골적이라는 차이는 있다.
그렇다면 마누라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http://www.gepco.or.kr/home/news/webzine/web_0511/rest03.jsp
마누라가 위와 같은 의미라면 평등한 관계의 '아내'를 마누라로 지칭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물론 마누라는 현재 그러한 뉘앙스로 쓰이지 않고 오히려 희화화되어 사용된다. '아내'를 속되게 일컫고 싶지 않을 때 마누라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마누라'는 '남편'처럼 무취하지 않다.
와이프라는 말도 일부 쓰이나 '남편'과 짝을 이룰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남에게 자기 남편을 일컬어 '내 허즈번드가~' 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나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뭐라고 일컫는지 유심히 듣는다. '아내'라고 부르는 사람은 무난하지만 생각없어 보인다. '집사람'이나 '안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와이프'라고 부르는 사람은 치기어려 보인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리에서 '마누라'라고 부르는 사람은 좋게 보인다. 역시 딱딱하지 않은 자리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나 '동거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도 호감이 간다.
그러나 '마누라'도 '같이 사는 사람'도 '동거인'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런 자리에서 '처'라는 표현을 쓴 남자가 아주 감동적이었는데 -처妻라는 한자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흔치 않는 지칭을 쓴 데서 적어도 그 남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 남편을 남에게 '내 부夫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처 역시 남편의 상대어는 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아내'의 대안은 '여편'이다. '여편네'가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 걸리지만 '남편'과 대구를 이룰 말로 '여편'만큼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다. 모두가 무취하게 '여편'이라는 말을 쓰다 보면 현재 '여편네'가 가지고 있는 저급한 뉘앙스는 점차 옅어지지 않을까.
의식이 언어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아내'냐 '여편'이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누라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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