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영화에 집중이 안돼요”, “이제 누나라고 부르지마”, “오늘 가장 친한 (남자) 후배 하나를 잃었다(대신 애인이 생겼다).” 광고 속 연상-연하 커플 만들기가 갈수록 탄력이 붙는다. 가수 김승기의 ‘누난 내 여자니까’라는 노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신드롬이 어째 심상치 않다 싶더니만, 이제는 핸드폰 하나 팔아먹는 데에도 “누나”를 연발하는 꽃미남이 등장한다.
철없어서 순수해 보이는 연하 남자와, 나이 들어 어른스러운 척해도 귀엽고 어여쁜 연상 여자 커플은 보기만 해도 알콩달콩이라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여전히 연하 여자와 살거나 연상 남자와 사귀고 있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커플들이 가진 판타지의 산물이 아니겠는지. ‘남자다움’의 무게에 짓눌리는 남자들이나, ‘여자다움’의 지루함으로 인해 팔다리가 배배 꼬이는 여자들 모두 가부장제의 롤 플레이에 지쳤다. 성별분업 바꾸기는 쉽지 않으니 성별과 나이가 조합해 빚어지는 권위적인 관계라도 바꿔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겠다. 그래서 연상-연하 커플의 남자들은 더 이상 가벼워질 수 없을 만큼 통통 튀어 오르며 누나에게 앙탈부리고, 여자들은 “나 가지고 논거야?”하고 삐죽거리는 어린 남자 길들이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 모르나 보다.
그런데 말이다. 나의 ‘순박한’ 조사에 의하면, 연하의 남자와 사귀는 여자들의 열에 아홉은 ‘누나’라는 호칭을 거부한다. 어린 남자에게 “누나라고 부르지 마” 하고 선언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너와 연애하겠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래나 뭐래나. 오빠로 시작해 아빠가 되는 연상남자와의 연애 공식이 여전한데, 왜 연상 여자들은 ‘누나’란 호칭이 달갑지 않을까? 나이 어린 남자에게 이성적으로나 성적으로 끌려 버릇할 만큼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다. 여자들에게 나이 어린 남자는 비록 자기는 굶더라도 돌봐야 하는 남동생처럼 돌봄의 대상이었지 시시덕거리며 연애질하는 대상은 아니었단 말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별을 초월해 작동해버리는 나이라는 권위가 당황이 되기도 하겠다. 나이 많고 의지할 만하고 심지어 존경씩이나 해야 할 것 같은 남자와의 관계에 익숙해진 여자들이 거꾸로 자기를 그렇게 의지하고 존경하느라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를 쉽게 감당할 수 있겠는지. 그러나 이러한 제스처가 여자들 스스로 낮은 데로 임하는 자폭이라고 기분 나빠 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역으로 말하자면, 높은 데로 오르기 힘들어 하는 여자들이야말로 평등한 관계가 주는 섹시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나라고 부르지마”라고 어린 남자에게 명령했던 여자분들, 나중에 나이 많은 남자와 연애할 기회가 생기면 그 신호탄으로 “오빠라고 부르지 않겠어”라고 선언해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 간에 반말하는 것만큼 에로틱한 것은 없다”고 우기면 더 좋겠다. 몇 살 차이까지 ‘반말’이 통하는지 실험도 할 겸 말이다. 찾아보니 반말이란 “존대도 하대도 아니하고 말끝을 흐리는 것”이란 훌륭한 뜻도 있다. 반말 만세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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