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연구소 1년간 조사·발굴
신여성이 뜨고 있다. 최근 인문학계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신여성 관련 연구가 붐을 이뤄 책으로 출간됐고, 영화 <청연>이나 드라마 <서울 1945>처럼 대중문화의 중요한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반면 발굴과 조사가 모자란 탓에 사실을 왜곡한 재생산이나 곡해도 거듭됐다. 객관적 사실 연구의 부족이 <청연>을 둘러싼 박경원의 친일 논란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감안하면, 신여성 연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때 신여성이 인터넷에서 ‘제대로’ 되살아났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문을 연 홈페이지 ‘한국 근대 여성교육과 신여성 문화’(newwoman.culturecontent.com)는 신여성 관련 단일 디지털콘텐츠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사)한국여성연구소가 2004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정공모를 통해 1년 넘게 조사·발굴·개발 작업한 결과물이다. 근대 여성과 신여성 문화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정확한 고증과 성인지적 관점의 역사자료를 제공해 만화,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창작물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첫째 목적이다.
한국여성연구소 1년간 조사·발굴한
근대 여성교육과 신여성 문화
인터넷에 2D·3D 생생 복원
일부만 무료 공개 아쉬워 주된 주제는 우리나라 근대 여학교 설립과 신여성의 등장이다. 학교 건물, 수업풍경, 기숙사 생활 등 2차원, 3차원 디지털 형식으로 되살아난 여학교 풍경은 선택받은 소수층인 여학생들이 누렸던 특권적 분위기를 짐작게 한다. 투르게네프의 <격야>를 읽으며 연애를 꿈꾸고, ‘결혼은 여학생의 무덤’이라고 여기며 조국 해방운동에 평생을 바친 다양한 신여성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전문가가 포진한 고증도 믿을 만하다.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이수 교수, 수유+너머의 권보드래 공동대표, 카이스트 이상경 교수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100여년에 걸친 사료를 뒤져 이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신여성의 문화는 <별건곤> <신여성> <신가정> 같은 여성지를 참고했고 학교생활과 50여개에 이르는 교복 및 체육복 복원은 15개 여학교의 사료를 분석했다. 콘텐츠는 주로 19세기 말에서 1945년 이전의 것이지만 1880년대에 나타난 일부 신여성의 모습도 담겨 있다.
고갱이는 생활과 문화를 복원한 2차원, 3차원 작업들이다. 청소년들로 이뤄진 영상물 제작 모임 ‘하자비주얼레이브’가 제작한 그때 여학생들의 영상스케치도 발랄하고 신선하다. 모피 입은 신여성을 ‘털보’라 부르고, 사랑 소설에 탐닉하는 신여성의 아버지들에게 학비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저널리즘의 만평과 광고에서는 신여성에 대한 동시대의 이물감과 함께 신여성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민족운동도 중요하게 다뤘다. 특히 이 시기 신여성의 활동사에 대한 고증은 근대에 우리 사회 여성들이 남성운동에 무임승차한 것이 아니라 성차별을 뚫고 제구실을 했다는 점을 밝히는 밑거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웹 강의실에는 1920년대 황애덕 같은 신여성들이 민족운동에서 여성을 소외시키는 남학생들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근우회 사건’으로 알려진 1930년 서울여학생만세운동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에는 서울여학생만세운동이 근우회 성인 여성들이 아니라 이화여고보 학생들이 주도한 최초의 여학생만세운동이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2000년 발굴한 당시 심문조서를 일일이 확인해 고증을 한 카이스트 이상경 교수는 “신여성의 활동에 대한 발굴과 사실 확인 작업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화가 나혜석이 단순히 환락녀로, 무용가 최승희가 북 정권에 협력한 ‘빨갱이’로, 비행사 박경원이 ‘제국주의의 치어걸’로 지금까지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신여성에 대한 발굴과 고증 노력이 부족했음을 넓게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직업과 인물’편에서 최근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밝혀진 권기옥 대신 박경원을 여전히 ‘최초’로 다룬 것, 사진 설명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된 김활란의 행적에 대한 설명과 재해석이 부족한 점 등은 일반인들에게 남긴 숙제인지 해석의 미비점인지 알기 힘들다. 복사와 인쇄조차 막아놓은 점, 중요한 자료들의 일부만 공개하고 콘텐츠 구매자에게만 전량 공개한 점도 아쉽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근대 여성교육과 신여성 문화
인터넷에 2D·3D 생생 복원
일부만 무료 공개 아쉬워 주된 주제는 우리나라 근대 여학교 설립과 신여성의 등장이다. 학교 건물, 수업풍경, 기숙사 생활 등 2차원, 3차원 디지털 형식으로 되살아난 여학교 풍경은 선택받은 소수층인 여학생들이 누렸던 특권적 분위기를 짐작게 한다. 투르게네프의 <격야>를 읽으며 연애를 꿈꾸고, ‘결혼은 여학생의 무덤’이라고 여기며 조국 해방운동에 평생을 바친 다양한 신여성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전문가가 포진한 고증도 믿을 만하다.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이수 교수, 수유+너머의 권보드래 공동대표, 카이스트 이상경 교수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100여년에 걸친 사료를 뒤져 이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신여성의 문화는 <별건곤> <신여성> <신가정> 같은 여성지를 참고했고 학교생활과 50여개에 이르는 교복 및 체육복 복원은 15개 여학교의 사료를 분석했다. 콘텐츠는 주로 19세기 말에서 1945년 이전의 것이지만 1880년대에 나타난 일부 신여성의 모습도 담겨 있다.
한국여성연구소 1년간 조사·발굴
한국여성연구소 1년간 조사·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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