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박원순 피소 50일…여전히 왜곡된 성폭력 통념 절감했다”

등록 2020-08-27 04:59수정 2020-08-27 09:42

여성운동가 이미경-고미경 인터뷰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피해자, 최선 다해 수사 협조에도
‘6층 사람들’은 증거인멸 시도
수사 통한 진실 규명이 국가의 의무
사람 따라 잘잘못 다른 판단은
사회정의·신뢰 무너뜨리는 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정치권 ‘피해 호소인’ 단어 사용은
성폭력 자체를 인정 안하려는 용어
다른 범죄자엔 그런 표현 안쓰지않나
‘변호인이 사건 주도한다’는 비판
피해자 신뢰성 흔드는 전형적 사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왼쪽)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본사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고발 이후 50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발열검사와 소독을 마친 뒤 진행했고, 사진 촬영 전후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왼쪽)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본사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고발 이후 50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발열검사와 소독을 마친 뒤 진행했고, 사진 촬영 전후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달 8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의 혐의로 피소된 뒤 50일이 지났다. 피해자 지원단체로 나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변호인단은 매일같이 회의를 하며 ‘피의자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 정무라인인 이른바 ‘6층 사람들’에 대한 수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관련 사항을 챙기는 한편 이번 사건을 백서로 남기는 준비도 하고 있다.

30여년간 여성인권운동을 해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은 직후 지원을 결심했다. 그의 증언과 증거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성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두 대표는 피해자 지원에 나선 뒤 처음 <한겨레>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진영론적 시각이나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발언이 많았다고 비판하며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아직도 뿌리 깊다는 점을 다시금 자각했다”고 말했다.

_______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건 이후 3000명 이상 응원 메시지

피해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피해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건 이후 3천명 이상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피해자 지원단체에 후원이 끊겼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 이상으로 응원과 지지를 표현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피해를 말하는 사람이 늘고 피해자들의 태도가 달라진 점”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미투’ 운동을 거쳐오면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고, 어떻게 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시민들이 늘어났다는 점을 체감한다”며 “이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참으라고 강요하거나 유난스럽다고 비난하며 사소화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 사건을 접하고 어땠나.

고미경 “뿌리깊은 가부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누구보다 성평등을 많이 이야기한 사람도 ‘내 안의 가부장성’이 다 안 씻겨진 거다. 오랫동안 여성인권 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성폭력·가정폭력 가해자를 만나다 보니, ‘이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관념이 깨진 지 오래다. 밖에선 ‘호인’이고 ‘진보적’인데도 여성폭력에 한해선 가해를 하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이 소장님은 1993년 ‘서울대 신 교수 사건’ 때 박 전 시장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미경 “개인적으로 함께한 경험이 있지만, 다른 판단기준을 갖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박 전 시장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제도의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원천적인 장벽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평소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분에 의한 성폭력은, 사건을 알리거나 해결하는 데 가림막이 더 많다는 걸 반성폭력운동가로 30여년간 현장에 있으면서 봐왔다. 이 사건 역시 그 패턴을 벗어나지 않아 공분했다.”

―어떻게 두 단체가 피해자 지원을 맡게 됐나.

이미경 “7월7일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사건을 지원해달란 제안을 받았다.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사건파악과 피해자 면담이 필요해 9일 오전 두 단체가 처음 피해자와 변호사를 만났다. 증거자료를 확인한 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 온 두 단체로선 지원이 꼭 필요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과거 경력을 문제삼거나 변호사가 피해자나 지원단체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일부 있다. 무고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는데.

고미경 “피해자는 변호인의 긍정적·부정적 요인을 모두 검토해 변호인을 선택한 거다. 단체의 지원도 본인 의사로 진행했다. 저희도 모든 사안을 피해자, 변호인단과 회의를 거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런 비판은 성폭력 피해자의 신뢰성을 흔드는 전형적인 사례다. 피해를 믿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행태다.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여성단체나 변호인에 의해 부추겨졌다’는 말은 피해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치부하고, 이 자체로 피해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미경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때도 ‘피해자 아버지가 특정 당에서 일했다’는 허위 사실이 퍼졌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데 이용됐다. 이번엔 변호인을 인신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거다. 피해자가 자유의지로 변호사를 수임하고, 변호인이 오랜 피해자 지원 경험이 있는 여성인권단체에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건 다른 피해자의 경우에도 매우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다. 피해자나 지원단체를 자율적인 존재로 존중하지 않고 근거없는 의심부터 하는 것에 대한 성찰을 요청드린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고발이 벌써 세번째다. 왜 이런 사건이 반복될까.

이미경 “‘보좌’를 기반으로 제왕적 권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고위직은 이런 권력을 이용해 공사를 임의로 뒤섞는다. 이번 경우, 비서 채용 단계부터 맡은 역할까지 문제다. 피해자는 (임용 시) 비서를 생각지도 않았는데 공무원 시보를 하다가 갑자기 차출됐다. 이후 아침식사를 챙기는 것부터 ‘심기 보좌’까지 사적 노무를 맡아야 했다. ‘여성’이란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일이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4년 동안 20명에게 말했는데도 이를 묵살한 주변인들, 비서가 그런 ‘사적인’ 역할을 하고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는 구조를 함께 봐야한다.”

고미경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뿌리깊은 가부장성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비서를 채용할 때 외모 등을 보고 차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 사람을 ‘노동자’로 보지 않고 이런 기준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성차별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거다.”

―첫 기자회견을 고 박 전 시장의 발인날인 13일에 한 점을 두고 비판이 나왔다.

고미경 “피해자가 4년 만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 (장례의 격으로) ‘서울특별시장’이 적절하지 않다는 국민청원도 60만명에 달했는데 그대로 진행했다. 그 자체로 위력을 보여주는 거다.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는 상황이었는데, 그와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피해자가 말해야 할 공간도 있어야 했다. 오히려 예의를 지키려고 당일 오전 발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거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피해자 쪽 기자회견 이후에도 여당에서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을 쓰고 여성가족부 장관도 ‘피해고소인’이라 말하며, 단어 자체가 큰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고미경 “사건의 본질을 흔들면서 ‘너 피해자 맞니?’라고 묻는 용어다. 다른 범죄 피해자에게 그런 용어를 쓰는지 되돌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절도 피해자에게 ‘절도 피해호소인’이라고 쓰는가? 이번에 유독 그 단어가 주요하게 등장한 건, 성폭력 자체를 인정하기 싫다는 방증 아닐까? 오히려 왜 그 용어를 썼는지 묻고 싶다. ”

이미경 “‘성폭력방지법’은 ‘성폭력 피해자란 성폭력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인정받는 자’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지금껏 경찰 수사단계부터 ‘피해자’라고 불려왔는데, 갑자기 ‘피해호소인’이 된 거다. 피해자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 쪽 주장에 왜 어떤 의문도 제기해선 안 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보여달라는 건데, ‘2차 가해’라고 말도 꺼낼 수 없게 하는 건 문제 아니냐는 거다.

이미경 “피해자는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이미 수사·조사기관에 증거 60여개를 제출했다. 이건 시민재판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증받기 위해 모든 시민들에게 사생활이 들춰져야 하는 건 아니다. 형사 사법절차나 인권위의 직권조사는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낸 거고, 거기서 제대로 수사·조사한 결과를 봐야 한다. ‘나는 왜, 어떤 점에서 피해자 말을 의심하는걸까?’란 질문을 먼저 스스로 던져봤으면 한다.”

고미경 “그 기저엔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는 가부장적 통념이 깔려있다고 본다. 성폭력 범죄만 유독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것’을 요구받는다.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피해자에게 ‘공개적으로 증거를 내놔라’라고 요구하나? 성폭력처벌법에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이 있는데도, 이런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피소 사실을 서울시가 먼저 인지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절차에 따랐다고 하나, 경찰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직보하기도 했다.

고미경 “형법과 별도로 성폭력특별법을 만든 건,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해서다. 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절차를 기계적으로 따르면 결국 가해자에겐 증거를 없앨 기회를 주고 피해자의 입을 닫게 만든다. 해당 절차는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해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이런 절차가 유지되면 누가 공권력을 믿고 피해를 고소할 수 있겠나.”

―일각에선 ‘여성계에서 알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는데.

이미경 “두 지원단체를 통해선 누설된 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겠다. 피해자에 대한 비밀보장은 피해자 지원자로서 의무다. 인권위에 고소사실이 누설된 경위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출된 경로가 정확하게 드러나야 이 사건의 본질인 ‘위력’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모여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 연대행진 및 기자회견‘을 연 다음 국가인권위원회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모여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 연대행진 및 기자회견‘을 연 다음 국가인권위원회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방조혐의 등에 대한 경찰 수사나 인권위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이미경 “피해자는 12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는 등 최선을 다해서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려면 박 전 시장의 휴대폰 포렌식이 재개돼야 한다. 방조 및 2차 가해 혐의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른바 ‘6층 사람들’(정무라인)은 텔레그램을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 시도를 하는데, 제대로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가의 의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세대, 성별 등에 따라 갈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런 괴리를 줄이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고미경 “진상 규명과 피해자 인권보장이 우선이다. 진상 규명이 안 된 채 제도만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더불어 성희롱 예방교육,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피해구제절차 등 기존에 구축해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사실 ‘미투’ 운동 이후, 관련해 제대로 국회를 통과한 법이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질적인 정책 변화도 이어져야 한다.”

이미경 “다른 당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어도 정부가 이렇게 대처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사람에 따라 잘잘못이 다르게 판단되는 건 사회정의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런 사건이 공권력을 통해 제대로 처리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자 예방책이다. 피해자는 ‘내가 진술하는 건, 진상이 규명되고 잘못된 것이 바뀌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분 외에도 수많은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계속 ‘말하기’를 하고 있다. 이 ‘말’들을 사회가 무겁게 받아야 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