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회원들이 2017년 12월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장 내 성폭력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 담당자가 다른 직원을 성추행하고, 한국철도공사에선 계열사 직원이 지하철역에서 불법촬영을 하는 등 공공기관 직원의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은 법에 따라 매년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관련 사건이 생길 경우 징계를 하는 등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비교적 잘 갖춘 곳인데도 이런 일이 반복돼,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2020년 상반기 징계위원회 처분 현황’을 보면, 전체 12건 가운데 5건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이었다. 특히 가해자 중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심의해야 하는 고충심의 담당자 ㄱ씨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지난해 9월 술자리에서 “남녀 직원이 이불을 같이 덮고 잤는데 이불 속에서 뭔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등의 발언을 했고, 이어진 2차 술자리에선 상대가 거부하는데도 추행했다. ㄴ씨는 매년 2차례 성희롱 예방교육은 물론이고 성희롱 예방 강사로 활동하겠다며 지난해에 별도의 교육까지 받았는데, 사택에서 음주 뒤 동료 직원을 성추행했다. ㄷ씨도 매년 관련 교육을 받으며 “의도와 상관없이 듣는 분이 기분 나빴다면 성희롱이라고 생각한다”는 ‘모범 답변’을 내놨지만, 직장동료에게 성희롱 발언을 반복했다. ㄱ씨와 ㄴ씨는 해임됐고, ㄷ씨는 감봉 처분을 받았다.
같은 당 박상혁 의원이 한국철도공사에서 제출받은 성희롱·성폭력 징계 현황 자료를 보면, 여기서도 올해 상반기에만 성희롱·성추행으로 5건의 징계처분이 이뤄졌다. 지난해 사내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전체 인원의 98.6%가 이를 수강했는데도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동료 직원의 신체를 만지는 등 성추행 사건이 반복됐다. 특히 공사 계열사인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역무원은 지난 4월 야간근무 도중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은 공공기관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연 1차례 이상 시행하고 관련 고충담당자를 지정할 것을 의무사항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법에 따라 교육을 하고 대응체계를 갖췄는데도 성폭력이 그치지 않는다면 ‘문화’를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의원은 “사건 발생 뒤 처리 절차를 명시한 시스템만으론 한계가 있다. 예방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고 조직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도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 성차별적인 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