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국회 앞 4시간 이어말하기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제 친구는 성인이 딱 되었을 무렵 운이 안 좋게도 결혼을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중지를 위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해야 했지만,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함께 산부인과들을 고발하는 바람에 수술비용이 무척 높아졌을 때였습니다. 당시는 현금으로 300만원에서 500만원을 지급해야 수술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친구는 남자친구도 책임지지 않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동안 백화점에서 구두를 팔았습니다.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 1차적 이유는 가난이었습니다 .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던 어머니는 아이 3명을 키우기에는 집안 형편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했고, 아버지와 의논해서 낙태를 결정했습니다 . 경상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태어났고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제 어머니는 국가가 하는 말이라면 다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분입니다 .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낙태를 할 수 있었을까요 .
어머니는 ‘그 당시에는 모두가 낙태를 했다, 안 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태가 불법이 아니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에서 둘만 나으라고 했고, (어머니는) 이미 둘을 낳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했고, 일반 병원에서도 묻지 않고 낙태를 해줬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낙태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법을 어기면서 낙태를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저는 남성으로 살고 있고, 동성애자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남성 성소수자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제가 낙태죄와 가장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낙태죄 폐지 집회에 함께하며, 낙태죄란 어떤 존재인가를 늘 생각했습니다.
낙태죄의 존재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길러야만 한다는 성 역할에서 벗어날 때 그런 일을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게 과연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젠더는 시스템이며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여러 요소가 맞물려야 작동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여성에게 어머니라는 성 역할이 강요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남성의 아버지라는 성 역할도 필요합니다. 사회는 이런 삶에 정상성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몰거나 없는 취급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유롭거나 평등하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태죄 폐지는 제 싸움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20일 남짓 남았는데 공청회를 여는 게 법사위가 하는 일인가요 . 선출직인 사람들이 낙태죄가 어려운 문제라면서 정체시킨다면 게으르고 나쁜 일입니다. 낙태죄는 정치적 득실에 따라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닙니다. 국회가 낙태죄를 이해당사자가 많아서 골치 아픈 문제로 여기거나 나중으로 넘겨도 되는 문제로 치부하는 동안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모른 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낙태죄 폐지 뒤에도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 낙태죄로 인해서 죄인이 되는 사람이 없게 한 뒤에도 사회경제적 장벽과 구조적 불평등이 남아있습니다 . 국회는 이런 장벽이 없애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편파적인 공청회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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