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공청회 발언에서 비롯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김 의원이 우리 당 조혜민 대변인에게 공청회 관련 브리핑 내용에 대해 항의 전화를 했는데, 방식이 매우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집권 여당 국회의원이 맞는지 의심케 할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남국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피해자의 사과 요구를 ‘갑질 폭력'으로 매도하다니, 정의당이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다”며 역공을 펼쳤다. 연합뉴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당이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에서 있었던 발언을 두고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정의당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한 논평을 냈다며 거세게 항의했고, 정의당은 김 의원이 ‘브리핑을 고치지 않으면 낙태죄 등 법안 통과를 돕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합니다.
정작 임신중지 관련 입법 논의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여성계에서는 ‘중요한 국면에 스포트라이트가 엉뚱한 데 갔다’는 한탄이 나옵니다. 헌법재판소가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의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 제시한 시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의 대체입법 논의 앞길은 여전히 안갯 속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김 의원과 정의당이 ‘강을 건너게 됐는지’, 여성계는 왜 한탄하는지 상황을 짚어봤습니다.
‘임신중지 입법 공청회’서 김남국 “남성도 심각한 책임…낙태죄 의견은?” 질문
발단은 이렇습니다.
지난 8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여야 합의로 법조계·학계·의료계에서 고른 8명의 진술인을 국회로 불러 임신중지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자리였는데요.
여성계에서는 이들 중 ‘낙태죄 폐지’ 입장을 가진 진술인이 2명에 불과하다며 ‘공청회 진술인 구성이 지극히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남국 의원은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에게 질의를 했습니다. 김 부연구위원은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2명의 진술인 중 1명이었습니다. 논란이 된 문제의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남국 의원 : 김정혜 부연구위원께 여쭙고 싶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20대나 30대 여성들의 인식이나 여론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법 개정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실증 연구 데이터가 있다면 그런 데이터, 그게 없다면 경험적 진술이라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김정혜 부연구위원 : 설문조사는 다양한 곳에서 했기 때문에 퍼센트는 다양합니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앞으로 규제를 가져가야 할 것인가는 허용의 범위를 앞으로 넓히는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연령대나 성별에 따른 의견의 차이도 크다. 20~30대 여성들의 경우는, 사실상 작년 4월에 낙태 폐지됐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이번 10월에 정부안 나오면서 놀란 모습을 보였다.(이하 생략)
김남국 :
낙태라는 것이 과거에는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이 문제는 남성이 함께 결정을 해야 될 문제이고, 남성도 여기에 대해서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 여기에 대해서 남성들의 법안에 대한 의견이 있는지 진술인께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김정혜 : 낙태죄 문제를 지적할 때 남성의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 데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었고, 대안으로서 남성도 처벌하라는 식으로 대안이 이야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처벌하든 처벌하지 않든 간에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고, 그 이후에 양육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성에 대한 책임은 민사적으로 이후에 양육책임을 공동으로 진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물어야 하는 것이고, 처벌에 있어서는 남성의 동의라든지 남성의 공동처벌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남국 : 남성까지 처벌하자는 게 해법은 아닐 거라고 보이는데, 궁금한 것은 법안에 대한 남성의 인식 이런 것들 있을까? 발의된 법안에 대한...
김정혜 : 발의된 법안에 대한 남성의 인식이요?
김남국 :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방금 진술을 해줬는데, 20~30대 남성들이 이 법안을 바라보는 평가,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 인식 이런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정혜 : 저는 20~30대 남성들도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남국 : 그게 주류의 시각이나 평가일까요?
김정혜 : 네네
김남국 : 김혜령 교수님께도 질문드리고 싶다. 저희가 법학을 배울 때 낙태라는 게 태아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이 충돌한다는 식으로 배웠는데, 최근 논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여성의 생존권이 침해된다고 하면서 가치적으로 새로운 문제 제기가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회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이하 생략)
질의 내용을 보면, 김 의원은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임신중지 관련 입법안에 대한 20∼30대 여성들의 여론을 물은 뒤, “남성도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라며 20∼30대 남성들이 낙태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에 김 부연구위원은 “저는 20∼30대 남성들도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합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8일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 김남국 질의에 “어이없는 말·망언” 논평…김남국 “왜곡” 항의
공청회가 끝난 직후,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 김 의원의 이 질의가 “어이없는 말”이자 “망언”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오늘 낙태죄 개정 관련 국회 공청회가 있었습니다.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 발표할 진술인은 단 2명에 불과한 자리였고 공청회에서 오간 이야기는 여성들의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들의 반대의견은 잘 알겠으나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등 어이없는 말들을 일삼고 여성들의 삶을 짓밟았던 공청회에서의 망언들을 굳이 다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김남국 의원은 조혜민 대변인의 비판이 자신의 진의를 왜곡한 비판이라고 분개했던 모양입니다.
이날 저녁 김 의원의 페이스북에 “남성도 낙태에 공동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남성들은 정부 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제 질문의 취지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했다. 이런 논평이라면 ‘조선일보’랑 뭐가 다릅니까”라고 내용이었습니다. 임신중지는 남성도 함께 책임질 문제라는 전제하에 남성들의 정부 법안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는 것이죠.
정의당 “김남국, 조혜민에 전화해 ‘조치 안 하면 낙태죄 입법 안 돕는다’”
그런데 사실 김 의원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 글만 올린 게 아니었습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다음날인 9일 오후 1시55분께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김남국 의원이 8일 저녁 6시께 조혜민 대변인에게 직접 연락해 9분간 통화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의 항의 내용과 방식이 “매우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집권여당 국회의원이 맞는지 의심케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정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김 의원은 조 대변인에게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낙태죄 폐지는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 의원이 낙태죄 관련 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에 대한 협조를 ‘협박’조로 거론했다는 것이죠.
정 수석대변인은 “각 당 대변인 브리핑과 관련해 이의 및 정정을 요청하는 일은 간혹 발생하고, 이 경우 공식적인 방식을 통해 이의·정정을 요청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난데없이 일면식도 없는 국회의원이 타 당 대변인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상식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공방은 그 뒤로도 이어졌습니다. 김 의원은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피해자의 사과 요구를 ‘갑질 폭력’으로 매도하다니, 정의당이 이렇게 망가진 지 몰랐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는 “(법안 비협조 발언은 정의당 주장과) 맥락이 전혀 다르다. 정의당에 서운한 것이 있어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처럼) 공동발의한 법안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조혜민 대변인도 재차 입장을 내 “문제의 핵심은 거대 여당 의원이 타 당 대변인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나이 어린 여성’이자 ‘소수정당의 원외 대변인’이라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여성계 “공방 자체가 소모적…임신중지 입법은 ‘협상 카드’ 아냐”
여성계에서는 김 의원과 정의당의 논쟁 자체가 ‘소모적’이며 ‘국회의 입법방기’라는 핵심을 비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김 의원의 질의 내용 자체가 크게 의미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앞뒤 맥락을 보자면 ‘남성들도 낙태죄 폐지에 긍정적이다’라는 정도의 답을 기대했던 것 같기는 한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따지는 임신중지 논의에서 굳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짚었습니다. 또 “국회가 대체입법 논의를 미루고 미루다 겨우 진행된 공청회에서 가장 뜨겁게 화제가 된 것이 이런 논란이라니 맥이 빠지는 기분”이라고도 했습니다.
다른 활동가는 “김 의원의 입장에서는 조 대변인의 논평이 자신의 질의를 왜곡했다고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그 이후 김 의원이 논평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한 행동은 분명 선을 넘었다. 임신중지 관련 입법을 볼모로 잡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김 의원이 낙태죄 폐지 논의를 협상카드 정도로 쓸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이 정의당 논평에 재차 반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남성혐오’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체입법 시한…“낙태죄 폐지 입법논의에 집중할 때”
‘김남국-정의당 공방’으로 국회가 엉뚱하게 시간을 소모한 사이 임신중지 관련 입법시한은 20여일(12월31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김남국 질의 공방’에 가려졌지만, 사실 이날 열린 공청회는 정기국회 종료 하루를 앞두고 졸속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나마 이날 질의에 나선 여당 법사위원 중 다수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것이 희망적이지만, 이들이 자신의 입장에 배치되는 정부안을 뒤엎고 낙태죄를 폐지한 권인숙 의원안이나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에 힘을 실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낙태죄 입법논의에 밝은 한 국회 관계자는 “공청회 전까지만 해도 속내를 안 보이던 의원들이 이날 질의과정에서 낙태죄 폐지에 기운 듯한 입장을 낸 부분이 주목할 만 하다. 국회 일정상 연내 처리가 어렵다면, 내년 초라도 대체입법이 가능하도록 논의를 서둘러야 하는데, 소모적인 논쟁으로 민주당과 정의당이 엉뚱한 데 힘을 쏟으면서 괜히 감정만 상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김 의원이 공식적인 통로로 이의제기하면 될 것을 너무 과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뉴스를 만들었다”는 볼멘소리도 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리얼미터’가 벌인 낙태죄 폐지 관련 여론조사 결과. 출처 리얼미터 누리집
기사를 끝내기 전에, 김 의원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남성들의 의견’에 대한 힌트가 될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겠습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낸 응답자는 전체의 58.3%였습니다. 20대의 74.1%, 30대의 71.5%, 여성의 64.3%, 남성의 52.2%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습니다. 진보층의 62.7%, 중도층의 59.5%, 보수층의 57.6%가 폐지에 찬성했습니다. ‘낙태죄 폐지’ 여론은 지역·성별·이념성향·정당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폐지 반대’보다 높았습니다. 이제 궁금증이 해결됐으니, 김 의원을 비롯한 여당 법사위 의원들은 본인들의 ‘진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임신중지 관련 입법 논의’에 더 힘을 써야할 같습니다.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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