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밥을 안 차려줘서” “너무 사랑해서” “자려는데 말을 걸어서” “안 만나줘서” “내연 관계가 폭로될 것 같아서” “빌린 돈을 돌려달라고 해서”
지난해 최소 97명의 여성이 이런 이유로 남편이나 애인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됐다.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최소 131명)까지 포함하면 228명. 1.6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20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사건을 분석한 결과(2020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를 8일 공개했다.
피해자 연령은 20대가 15.4%로 가장 많았으나, 50대(14.9%)·40대(14.5%)·30대(13.2%) 등 연령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발생했다.
범행 동기는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53명·23.2%)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22.8%),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14.9%)는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가해 남성들은 “연락이 끊겨서”, “여행 가자는 것을 거부해서” 등 온갖 이유를 들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피해자의 주변인도 위험에 빠뜨렸다. 전체 피해자 285명 가운데 20%(57명)가 피해자의 자녀와 부모, 전·현 파트너, 친구 등이었다. 특히 피해 여성의 자녀가 가해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당할 위험에 처한 경우(37명)가 가장 많았다. 주로 남편인 남성이 피해자와 자녀들을 살해한 뒤 자신 역시 자살하거나 자살시도를 한 사례들이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한두 해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이런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1072명에 달한다. 살인미수를 포함하면 2038명, 주변인 피해까지 계산하면 2514명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해남성이 든 여성 살해의 이유는) 언뜻 각기 다른 이유인 듯 보이지만, 크게 보면 모두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와 연결된다”며 “가해자들에게 피해 여성은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어야 하는 존재이자, 거기서 벗어날 경우 언제든 제 맘대로 해쳐도 되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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