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하면 어떻게 해”…‘직장 내 성희롱’ 입막음당하는 피해자들

등록 2021-03-21 13:00수정 2021-03-21 14:11

한국여성민우회 2020년 일고민상담실 상담 사례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회사에 신고를 해도 조직이 가해자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드러난 뒤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며 문제제기를 무마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20년 일고민상담실에 접수된 197건의 상담 사례를 분석해 지난 18일 결과를 발표했다. 상담 사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113건, 57%)이었고, 직장 내 괴롭힘(58건, 29%), 부당해고 등 ‘기타 노동사안’(24건, 12%)이 그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보통 신입·수습·인턴 등 직급상 취약한 위치에 있는 하급자에게 자주 발생했다. 민우회에 접수된 사례 중에는 ‘3개월 수습기간 만료 직전에’, ‘입사 3일차 되던 날 전화로’,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경우가 있었다. 성적 괴롭힘의 양태는 다양했다. “몸이 안 좋아 약국을 다녀오겠다고 하니 대뜸 콘돔 사러 가냐고 묻는” 등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사례가 여럿 접수됐고, “회식 끝나고 차 안에서 춥다면서 계속 손을 잡는” 등 신체적 성희롱을 당해 상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은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문제제기를 하자마자 ‘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거나, 가해자와의 원치 않는 ‘삼자대면’을 강요하는 회사가 있었다. ‘두 사람의 말이 달라서 우리는 판단을 못 한다’고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불륜이라고 볼 것’이라며 피해자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이후로 “가해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떡하냐”며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무마하려는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성추행은 지금 사람이 죽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하거나 “사회적 명예를 얻은 사람이 외부에 알려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떡하냐”고 한 경우가 그 예다. 민우회는 “직장 내 성희롱은 일정한 조치와 사과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임에도 극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들이 나타나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들은 부당전보·승진배제·저평가 등 고용상 불이익을 받았다. 회사는 피해자를 경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부서에 배치하거나, 합리적 기준 없이 저성과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민우회는 “회사 전체에 ‘문제제기를 하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확산시켜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허용하는 문화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외부기관 신고를 결심한 피해자들은 주요 창구인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 어려움을 겪었다. 근로감독관이 ‘피해 상황이 한 번밖에 안 일어나서 성희롱이라고 판단 안 될 수도 있다’고 하거나, ‘녹음증거가 없으면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한 사례가 있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 사이의 판단이 엇갈려 피해자에게 혼란을 준 사례도 접수됐다. ‘근로감독관은 사건의 시간과 장소로 볼 때 사적인 만남이라 성희롱이 인정 안 될 것이라 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간이나 장소와 무관하게 성희롱에 해당할 것이라 판단’한 경우였다.

상담 사례를 분석한 여성민우회는 “성희롱을 인지했을 때 역할을 방기하며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하거나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일을 발생하고 있다”며 “관리·감독 의무가 고용노동부에 있는 만큼, 근로감독관의 성인지 감수성 및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