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이번 설날 때 못 내려가요. 연휴도 짧고 일도 많아서요.” 드디어 용감해진 이 몸, 생전 처음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명절날 일 시키는 사장은 무쉰 맘이다냐, 엄마가 끓여준 떡국은 먹어야제, 언능 내려온나”
흐음, 서서히 약해지려는 마음, ‘고향의 맛’으로 살살 달래려는 엄마의 수법이렷다. “떡국 먹어봤자 나이만 먹는데 뭘 그러시나? 떡국도 못 끓여 먹을 줄 알고?” 딸이 단단히 마음먹었다는 것을 눈치 채시고는 속내를 드러내시는 엄마. “니라도 안 오믄 심부름은 누가 해준다냐?” “이 나이에 심부름 하겠수? 파출부 일당 부쳤으니 사람 쓰시든가요.” 철컥.
엄마한테 그 무슨 버르장머리냐 탓하면 안 된다. 종가의 며느리로 살아오신 분답게 ‘손만 큰’ 엄마와 나는 명절 때마다 늘 싸움을 되풀이 했다. 양손 가득 과일이며 나물거리 들고 시장 몇 군데를 따라다니느라 어깨가 빠질 즈음 “먹을 만큼만 장만해요”하고 볼멘소리를 건네 봐도 “정성이랑께”라는 엄마의 한마디면 상황 끝이다. “동그랑땡하고 버섯전만 부쳐도 충분하다니까요.” 네다섯 시간 쪼그리고 앉아 잘하지도 못하는 전 부치느라 기름 범벅이 된 내가 통사정을 해도 엄마는 “정성이랑께” 하셨다.
내가 명절 때만 되면 울화통 터지는 건 가히 ‘정성의 여왕’이라 할만한 엄마 때문이다. 소파에 앉아 리모콘이나 이리저리 돌려대며 노정권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하는 남정네들은 포기한지 오래다. 너는 서른 넘어 왜 여적 결혼 안하냐는 말에, 결혼 안 해도 행복한 인생이 있는 법이니 신경 끄시죠, 라고 한마디 던지고 입 쩍 벌어진 어르신들 모르는 척 잽싸게 자리 뜰 정도의 ‘내공’까지 갖춘 나다.
그런 나의 울화통은, 이제 며느리도 아니고 남편도 없는 환갑의 엄마가 아직도 종가 며느리의 책무를 다하느라 다리 절어가며 나물 삶고 무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데서 터진다. 설령 차례상을 밥상으로 장만한다 한들, 나무라거나 ‘정성없음’을 타박할 이 아무도 없건만, 엄마는 올해도 홍동백서의 차례상을 그야말로 정성들여 차리셨다 한다.
‘일하기 싫다’ 떼도 써보고, 명절은 즐거워야 한다며 진지하게 설득해 봐도 엄마의 정성은 나이와 더불어 깊어만 가니, 그 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아예 그 정성에 참여하지 않는 것 아니겠는지. 이런 딸의 전략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다음 명절 때 확인해볼 일이다. 그보다 먼저, 일머리는 없어도 심부름꾼 구실은 하던 딸마저 없어진 엄마가 얼마나 힘드실지, 불쑥불쑥 일어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지지 않도록 내가 더욱 굳건해져야겠다. 못 먹고 죽은 귀신들 위해 음식 장만하는 일에 목숨 거는 것 말고, 남정네들 치닥거리 하느라 그 좋은 시간 다 보내는 것 말고, 호젓하고도 행복한 명절을 보낼 마음의 결단을 엄마가 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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