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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별 고정관념 강화하는 표현, 쓰지 않겠습니다

등록 2021-05-19 10:08수정 2021-05-19 10:22

한겨레 33살 프로젝트_젠더 보도 가이드라인
<한겨레> 가 이어온 젠더 이슈 보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때부터 국내 종합일간지 최초로 여성 담당 기자를 두고 여성면을 신설했습니다. 성평등 가치와 저널리즘의 접목을 실현한 국내 최초의 종합일간지였습니다. 전시 성폭력 사건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표현조차 생소했던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호주제 폐지, 새로운 가족 구성, 성폭력 문제를 성평등 관점에서 해석한 보도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국내 언론들이 관련 사안을 보도할 때 참고하는 기준점이 됐습니다.

<한겨레>는 ‘성평등’한 사회에 기여하는 언론이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2010년 중반 이후 이 사회의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은 성평등 요구의 목소리를 담아냈습니다. 불법촬영 근절 시위,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디지털 성범죄 반대 운동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최초의 역사도 다시 써내려갔습니다. <한겨레>는 2018년 10월 젠더 분야 담당 기자, 2019년 5월 젠더데스크, 2020년 11월 젠더팀을 만들었습니다. 텔레그램 엔(n)번방 성착취 실태 보도, 세계 여성의 날 특별판 발행, 20대 여성 정신건강 위기를 다룬 ‘조용한 학살’ 보도 등을 이어갔습니다. <한겨레> 편집국 특정 부서가 아닌 모든 부서가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에 필요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습니다.

성차별·성범죄 보도 악습은 벗고자 노력했습니다. 성범죄 기사 작성 때 몰카·도촬을 ‘불법 촬영’, 성적 행위를 강요해 만든 영상을 ‘성착취물’이라 적었습니다. 성폭력 보도 때 언론이 저지르는 잦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해 4월에는 내부적으로 성범죄·성평등 보도 때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을 공유했습니다.

창간 33돌을 맞은 <한겨레>는 ‘주의사항’에 그치지 않고, 기사·사진·영상 등 콘텐츠 제작 때 비춰볼 ‘기준’인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사내 간담회도 진행했습니다. 성차별적인 사회 인식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성폭력 보도에서는 ‘피해자 관점’을 분명히 해 2차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기준입니다. 불변의 기준이 아닙니다. 앞으로 <한겨레> 안팎의 고민과 논의를 담아 진화하는 기준을 선보이겠습니다.
1. 성평등 보도

콘텐츠의 성편향 극복은 미디어의 오랜 과제입니다. 지난 3월4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나온 ‘글로벌 미디어 모니터링 프로젝트’의 예비보고서(12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분의 2가량을 조사)는 “지난 5년간 뉴스 등장인물과 취재원의 성별 격차 변화 속도는 아주 느리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신문 기사에 나오는 인물 및 취재원 중 여성 비율은 5년 전보다 2%포인트 준 24%였습니다.

국외에는 <비비시>(BBC)의 ‘50 대 50 챌린지 프로젝트’, <파이낸셜 타임스>의 ‘그녀는 말했다, 그는 말했다(She said He said) 봇’ 등 성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찾기 힘든 노력입니다. 미디어의 성편향은 한국 사회 전체의 성편향이 개선되지 않으면 극적으로 변화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성평등한 사회로 변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언론의 책임을 방기할 순 없습니다. 성평등 보도는 1)등장인물의 성비 2)성 고정관념 3)성차별 용어 및 표현 항목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밖에 다양한 콘텐츠로 <한겨레>의 성편향 극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 등장인물의 성비 
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취재원 가운데 특정 성만 포함하지 않는다.
② 토론, 칼럼 참여자의 성별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한다.
③ 사진, 영상, 일러스트에 특정 성만 등장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2) 성 고정관념 
① 성별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노력한다.
② 등장인물을 성별에 따른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③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전형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3) 성차별 용어 및 표현 
①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② 불필요한 성별 표현을 쓰지 않는다.
③ 여성의 나이, 외모, 목소리, 가족관계, 옷에 집중해 보도하지 않는다.
④ 특정 성을 성적대상화한 표현을 쓰지 않는다.

2. 성폭력 보도

성폭력 보도의 원칙은 ‘피해자 관점’의 보도입니다. 피해자의 관점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는 성폭력이 ‘권력관계’, ‘위력’에 따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권력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보복 등의 우려에도 문제를 제기할 때 언론은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해야 합니다. 또한 언론은 피해자를 사회의 고정관념에 따라 회복 불가능한 존재로 그리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관점과 경험은 오랫동안 배제됐고, 이는 우리의 보도 관습에도 남아 있습니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은 1)피해자 2)가해자 3)선정성 4)성폭력 이해 항목으로 구성했습니다.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존중하고, 가해자 주장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2차 피해를 줄 수 있는 선정적인 표현을 지양하며, 성폭력에 대한 관습적 이해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반영한 <한겨레>의 콘텐츠가 언론에 의한 2차 피해를 줄이고, 성폭력에 대한 이 사회의 감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 피해자 
① 이름, 나이, 회사·근무지, 직업, 업무, 주소지 등 피해자의 신상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노출하지 않는다.
②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성격, 이전의 성경험이나 혼인경험, 평판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③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에 있었던 사실을 범죄의 원인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
④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2) 가해자 
①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해 다루지 않는다.
②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비유하지 않는다.
③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가해자의 업적, 성격, 평판, 사적 인상 비평 등을 부각하지 않는다.

3) 선정성 
① 제목에 선정적·자극적인 내용을 부각하지 않는다.
② 영상·이미지에 성범죄를 선정적·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③ 사건과 관련한 정보 전달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잔인하거나 노골적인 폭력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④ 정확하지 않은 성폭력 관련 표현을 쓰지 않는다.

4) 성폭력 이해 
① 성폭력을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일탈 또는 충동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함께 다루도록 한다.
②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사적 관계를 단정 짓거나 앞세워 성폭력의 심각성을 희석하지 않는다.
③ 성폭력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다루거나, 정치적 공방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는다.
④ 재판 보도 중 법리적 쟁점이 아닌 피고인과 피고인 측 증인의 발언을 검증 없이 보도하지 않는다.
⑤ 성폭력의 폭력성을 희석하고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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