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표적 아침 식사인 콘티넨털 브렉퍼스트. 어나더스튜디오 임경빈 실장, 장소협찬 롯데호텔 서울
직장인 이민혜(36)씨는 최근 아침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예전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한 숟갈 뜨고 출근길에 나섰지만, 4년 전 독립한 뒤로 아침밥을 ‘잠’에 양보한 상태였다. “일산에서 서울 강남까지 통근 시간이 한 시간 이상 걸려 아침을 먹는 거 보다 10분 더 자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주변에서도 아침 먹고 온다는 동료들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코로나19는 그의 일과에 아침밥을 다시 불러왔다. “아침에 여유가 생기니깐 자연스럽게 밥을 챙겨 먹게 됐어요. 점심에 배달 음식을 많이 먹으니 아침이라도 건강하게 먹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주로 전날 주문한 샐러드를 먹어요”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 사례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는 멀어졌던 아침밥을 부활시켰다. 출근 시간에 쫓겨 눈곱만 겨우 떼고 출근길에 나섰던 직장인들이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탓이다. 이제는 푸드 트렌드의 하나로 아침밥이 거론될 정도.
온라인 커머스 티몬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아침 식사용으로 주로 팔리는 볶음밥·죽·간편식의 매출은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같은 기간에 견줘 34% 증가했다. 인기 아침 메뉴인 누룽지(57%), 떡(36%)의 매출도 크게 올랐다. 대표적 간편 아침밥인 시리얼의 매출도 17% 상승했다. 티몬 관계자는 “재택근무가 늘면서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밥을 많이 먹게 됨에 따라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이 늘자, 당연히 아침밥 시장도 꿈틀대는 중이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식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원을 넘긴 뒤 정체기였다가, 코로나 이후 급성장해 현재 3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푸드 트렌드의 하나로 아침 식사 시장을 꼽았던 문정훈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코로나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펜데믹 초반 조식 간편식 관련 시장이 들썩였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는 업계들이 한발 멀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가 5조원에 이를 것이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전망이 있을 만큼, 가정간편식 시장은 폭발적 증가세다. 아침밥도 이 시장에 가세했다. 업계는 빵, 시리얼, 그래놀라 같은 가벼운 식사류에 덧붙여 우유, 두유, 커피 같은 아침 대용 음료류, 여기에 밀키트와 도시락까지 아침 식사로 선택할 수 있는 아침 메뉴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시장이 다양해지고 커진다는 의미다.
호캉스족이 호텔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조식 뷔페다. 롯데호텔 서울 르 살롱의 조식 뷔페. 어나더스튜디오 임경빈 실장
이뿐만이 아니다. 휴가철을 앞두고 아침밥은 몸값을 더욱 올리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곳은 호텔이다. 호캉스가 휴가의 대세가 된 상황에서 호텔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식이기 때문. 예약 단계부터 조식 포함인지 아닌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맛있다고 소문난 조식을 맛보기 위해 특정 호텔을 선택하기도 한다. 호텔들이 조식에 힘을 쏟는 이유다. 안다즈 서울 강남은 과음을 한 여름 호캉스족을 겨냥해 해물라면, 햄버거, 계란프라이, 밀크쉐이크가 포함된 이색 조식세트를 패키지 상품에 넣었다.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은 조식 뷔페 메뉴에 베이징덕, 대게, 랍스터를 포함시켰을 정도로 조식을 강화했다. 이 정도면 저녁 뷔페 수준이다.
바쁜 현대인의 삶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아침밥은 코로나 이후 현대인의 삶 속에 파고 들었다. 바쁜 직장인을 위한 간단한 간편식부터, 느긋한 주말의 브런치까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아침 식사의 매력이 아닐까.
〈아침식사의 문화사〉를 쓴 헤더 얀트 앤더슨의 “향후 아침 식사는 오늘날의 저녁 식사처럼 중요한 끼니로 인식되어 느긋하게 앉아 세 코스에 걸쳐 천천히 먹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이 되고 있다.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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