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드레스 코드 더블 페이스 스카프. 한 면은 컬러, 다른 면은 흑백으로 작업했다. 그림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다니엘 클로스가 그린 가상의 초상화 갤러리. 에르메스 제공 ⓒ에르메스
한 유명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브이브이아이피(VVIP)라는 소문이 화제였다. 하필 에르메스라 소문이 더 퍼지는 것 같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 명품은 왜 비쌀까, 유독 에르메스는 왜 비쌀까?
에르메스가 비싼 데 이유는 있다. 최고급 소재를 쓴다. 제작도 프랑스에서 한다. 서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싼 지역이고 에르메스의 공방은 파리 근교에 있다. 거기서 재료 수급과 제작을 진행하니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에르메스에서 가죽을 만지려면 가죽 학교에 가서 2년간 교육을 받고 에르메스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가죽 학원에서 5년 정도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서유럽의 숙련공이 만드는 셈이다.
이미지가 아니라 숫자를 보면 마진을 너무 뗀다 싶을 수 있다. 그걸 지적한 기사도 있다. 온라인 경제지 <이코노믹리뷰>는 작년 처음 일반에 공개된 에르메스코리아의 금융감독원 사업보고서를 기반으로 기사를 냈다.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원가와 매출총이익을 비교해 매출액 대비 원가율을 계산하니 45.5%의 폭리였다는 것이다. 고가품이 밉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셈법에서는 판관비(판매·관리·유지에 발생하는 비용)가 빠져 있다. 고가품 업계는 모호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기 때문에 인건비, 수수료, 광고비 등 판관비 비중이 높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에르메스의 2019년 광고비 지출은 113억원, 2020년에는 86억원이었다. 판관비를 합산해 영업이익률을 계산하면 약 32.8%로 낮아진다. 물론 여전히 높은 영업이익률이다. 그래서 다들 프리미엄 제품이 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에르메스가 남다른 회사인 건 확실하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고가품 브랜드를 볼 때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남이 몰라보는 불필요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다. 거기 더해 기업 지배구조를 본다. 중고차의 소유주 이력에 따라 차량을 가늠할 수 있듯, 기업을 누가 언제 가졌는지가 그 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에르메스는 그 면에서 특별하다.
에르메스 가죽 공방에서 가방 모서리를 처리하는 모습. 에르메스 제공 ⓒ크리스 페인(Chris payne)
고가품은 어차피 생필품이 아니다. 생필품이 아니라면 얼마나 공들여 만드는지, 즉 공예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명품 게임의 관전 요소가 될 수 있다. 에르메스는 공예를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에르메스는 줄 서서 사는 가죽 가방만 만들지 않는다. 가방, 옷, 스카프, 기계식 시계, 가구, 나무로 만든 소품과 도자기 접시까지 취급한다. 이 모든 물건의 공예적 완성도가 무척 높다. ‘이렇게까지?’ 싶은 걸 하는 게 사치품이다. 에르메스는 늘 그렇게 한다. 에르메스 스카프의 발색과 촘촘한 무늬를 볼 때, 휴대용 체스 세트의 견고함과 채색 마감을 볼 때면 그들의 저력을 깨닫는다. 공예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거라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공예 제조업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산업자본주의풍 사치품’이라 볼 수 있다.
만져보면 왜 비싼지 이해가 가는 에르메스와 달리 요즘 세상에는 이게 왜 비싼가 싶은 물건도 많다. 대표적인 게 특정 로고와 수량 한정으로 프리미엄을 만드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다. 이 경우는 인간의 창의력이나 개념 설정에 마진이 붙은 거라 볼 수 있다. 일부 현대 미술 작품이 공예적 가치로 가늠할 수 없는 개념미술이듯, 현대의 고가 의상도 새 시대의 맥락을 모르면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적 사치품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넘어온 시대의 고가품인 셈이다.
공예와 창의력의 차이,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차이는 에르메스와 타 사치품 브랜드의 근원적 차이이기도 하다. 지금 현대 사회 거의 모든 사치품 브랜드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 그룹사의 산물이다. 대표적인 곳이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그룹이다. 와인과 코냑부터 고가의 패션 브랜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까지 가지고 있는 럭셔리 그룹사다. 이들이야말로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이미지메이킹 능력으로 무장한 현대 명품 산업의 최첨단이자 최정예다.
에르메스는 이들과 같은 반이긴 한데 성격은 영 다른 동창 같다. 에르메스의 지분은 창립자인 에르메스 가문의 친척 60여명에게 흩어져 있었다. 그룹의 독립성을 가문이 지키기 위해 일부러 많은 친척에게 지분을 나눠준 것이었다. 엘브이엠에이치는 에르메스 가문의 친척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분을 확보해 경쟁자 인수를 시도했다. 에르메스는 거기에 맞서 4년의 소송 끝에 브랜드를 지켰다. 엘브이엠에이치는 그 이후로도 각종 브랜드에 이어 최근 미국의 귀금속 거물 티파니까지 인수하며 그야말로 럭셔리 대제국을 지었다. 에르메스는 여전히 에르메스 하나만 만든다.
이런 글을 쓰면 ‘그래서 좋다는 거냐 뭐라는 거냐’ ‘사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돈 받았냐’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하나씩 대답하겠다. 에르메스 같은 회사가 세상에 하나쯤 있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 모든 게 단가관리와 생산관리와 내 모든 인터넷 검색 이력을 들여다보며 맞춤 광고를 찌르는 알고리즘에 의해 돌아가는 ‘공포의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다. 그런 때 에르메스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회사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다. 살다 보면 특별한 날이, 가끔은 조금 무리해도 값나가는 기념품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에르메스에 가면 좋겠지. 그 정도다.
‘사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는 각자의 마음이고 나는 살 생각이 없다. ‘세상에 저런 거 있어도 좋지’와 ‘저걸 갖고, 매일 쓰고 싶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무엇보다 에르메스 제품은 보드라운 만큼 나약하다. 명품 특유의 야들야들함은 낮은 내구성을 뜻하고 나는 안 튼튼한 물건에 관심이 없다. ‘돈 받았냐’는, 음… 나는 광고 수주에 실패해 폐간된 매체 3곳에서 일해봤다. 명품 브랜드에서 돈 받기, 사는 것보다 쉽지 않다.
박찬용(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