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산 와인 대부분을 생산하는 타리하주의 포도원(해발 1700미터) 풍경. 노동효 제공
믿거나 말거나, 유랑생활을 하던 인류가 정착민이 된 건 술(와인) 때문이란 ‘썰’이 있다. 지구에 포도가 열리기 시작한 지 500만년쯤 지나 두 발로 걷는 인류가 등장했다. 대지에 떨어진 포도가 자연 발효되어 액체로 변하곤 했는데 인류가 이 액체를 마시는 사건이 벌어졌다.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았더랬다. 한번 술맛을 본 자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법. 알코올에 중독된 자들은 신비의 액체를 평생 마시기 위해 포도가 자라는 땅에 눌러앉았다. 해마다 떨어진 포도가 술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중 양조법을 터득했다. 6, 7천년 전 최초의 양조업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고마울시고!
이런 썰을 낯을 붉히지도 않고 주장하는 이는 ‘주류업’이야말로 인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산업이며 교역도 술 때문에 발전했다고 강변한다.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술을 파느라 교역이 발달했고, 화폐가 생겼고, 계약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 고대 이집트는 와인 대량 수입국이자 3천년 전부터 라벨(포도 생산지, 양조업자, 생산연도)을 단지에 표기하던 왕국이었다나! 와인 산업이 발달한 건 다른 농작물을 재배·판매하는 것보다 이윤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산 프리미엄급 하이엔드 와인 값이 수억원을 호가해도 병당 제조원가는 100달러가 되지 않는다.
400년 된 고택 카사비에하의 마당. 노동효 제공
타리하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과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 노동효 제공
나 역시 남미여행 중 와인 산업에 뛰어들어 제법 돈을 벌었다. ‘말베크 품종’으로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아르헨티나와 ‘카르메네르 품종’으로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칠레는 와인으로 돈 벌기에 가장 쉬운 나라였다. 돈 버는 방법은 간단했다. ‘약간의 투자금’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뿐 사실 방법이랄 것도 없다. 먼저, 현지 와인 가게나 식료품점에서 와인을 산다. 그다음 숙소로 가져가 친구들과 어울려 마신다.
그게 돈 쓰는 거지, 왜 돈 버는 거냐고 지인들이 항변했지만 ‘나의 산수’론 돈 버는 장사임이 틀림없었다. “지금 ○○ 와인이 한국에서 마시면 얼마니?” “3만원.” “그 와인을 여기서 1만원에 마시면 얼마 차이지?” “2만원.” “거봐, 병당 2만원 벌었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지인들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든 말든 난 돈벌이에 열중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대략 100만원, 칠레에서 대략 150만원. 꽤 짭짤한 장사였다. 마실수록 버는 셈이니 이보다 쉬운 돈벌이가 어디 있겠는가? 자연발효 와인을 처음 맛본 사피엔스처럼 포도주가 지천으로 널린 땅에 뿌리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 정체성은 정착 아닌 방랑, 눈물을 머금고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떠났다. 흑흑.
볼리비아로 들어섰다. 근데 웬걸? 안데스 고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볼리비아에도 포도가 열리고 와이너리가 밀집한 고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대 와인 생산국 ‘톱10’에 드는 아르헨티나와 순수 유럽 품종 포도를 고스란히 간직한 칠레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볼리비아도 와인을 생산하고, 라벨엔 한결같이 동일한 원산지가 씌어 있었다. 타리하(Tarija).
안데스 기슭 해발 1700~1900미터에 자리해 밤낮의 기온차가 크지 않으며 밝은 해가 내리쬐는 고장이다. 유럽 출신 이민자들은 타리하를 ‘볼리비아의 안달루시아’라고 부르며 강 이름도 안달루시아의 ‘과달키비르강’ 이름을 따서 붙였다. 볼리비아의 와인 산지는 어떤 곳일까? 도착하자마자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와이너리를 겸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카사비에하’, 번역하면 ‘고택’(古宅)으로 도심에서 1시간 떨어진 시골이었다. 고색창연한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와인 전시관에서 시음회가 열렸다. 페르난도가 와인을 잔에 따르고 선보였다.
“이 집은 400년 전에 지어졌어요. 원래는 포도 식초를 만들어 팔다가 1978년 안주인 빅토리아의 이름을 붙여 ‘도냐 비타’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죠. 2004년 와인앤치즈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받았어요. 최근엔 타나 품종 와인 생산량을 늘리고 있답니다. 심장에 좋은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죠.”
카사비에하 마당에서 익어가는 포도. 노동효 제공
타나 품종을 남미에 들여온 이는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온 이민자였다. 대중적 품종도 아니고 거칠고 투박한 맛 때문에 통상 메를로 품종과 섞어 와인을 만든다. 물론 샤토 몽투스의 ‘퀴베 프레스티지’처럼 100% 타나 품종 와인으로 보르도 1등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인도 있다. 와인을 맛본 뒤 포도 넝쿨 아래 놓인 식탁에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운치 있는 식당이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돼지고기 요리(남미에선 돼지가 소보다 비싸다)도 1만원. 대부분 5천원을 넘지 않았다. 글라스 와인에 고기요리까지 1만원 정도니 오늘도 돈을 번 셈이군! 흡족해하며 주변을 휘둘러보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두 여자가 항아리에 든 무언가를 표주박으로 떠 마시고 있었다.
“그 안에 든 게 뭐니?”
“와인! 병에 넣기 전 항아리에 담아서 팔아.”
‘항아리 동동주’는 봤어도 ‘항아리 와인’은 난생처음이었다. 더구나 와인에 표주박이라니! 유리잔이 아닌 터라 색·향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검붉고 바디감은 무거웠으며 투박한 맛이었다. 페르난도가 언급한 타나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구나. 카밀라와 이사벨은 타리하주 비야몬테스의 대학생이라고 했다. 타 지역 청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타리하주의 여성은 무척 활달해!”
“이유가 뭐니?”
“가우초 문화 때문 아닐까, 싶은데….”
대답과 동시에 카밀라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끝을 돌리며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쿠에카였다. 스페인의 이베리아반도에는 소 치는 사람들인 ‘바케로’가 있었다. 말 타고 소 키우던 이들은 북미로 넘어가 ‘카우보이’의 근간이 되었다. 남미에선 ‘가우초’라고 부른다. 크리올(남미에서 태어난 유러피언으로 한국식으론 ‘교포 2세’)과 메스티소가 많았는데 이들은 소를 방목하기에 좋은 터를 잡고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중 하나가 쿠에카다.
남자는 박차가 달린 부츠를 신고 여성은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고 손수건을 들고 춘다. 기원은 스페인의 판당고(안달루시아의 무곡으로 남녀가 캐스터네츠를 들고 춘다)로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와 접목되면서 변화했다. 가우초가 번성한 지역에서 남미 전역으로 번졌고 저마다 다른 쿠에카로 발전했다. 칠레에선 가장 대중적인 전통춤으로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권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시민을 학살, 납치, 고문, 투옥했다. 1978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무용단은 남녀 한 쌍이 추는 쿠에카를 여성 홀로 추는 모습으로 선보였다, 실종되거나 죽은 아들·남편·아버지의 초상화를 가슴에 매달고서. ‘쿠에카 솔라’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하며 세계로 번졌고 스팅이 피노체트 정권에 반대하며 ‘데이 댄스 얼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인들이 시체로 보이는 형체를 이고 홀로 춤추는 장면을 담은 뮤직비디오’ 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
항아리 와인을 표주박으로 마시는 볼리비아 대학생들. 노동효 제공
볼리비아산 와인을 마시고 타리하풍 쿠에카에 맞춰 춤추는 친구들. 노동효 제공
볼리비아에서는 10월의 첫 일요일을 ‘쿠에카의 날’로 정하고 기린다. 지역별로 음악풍이 다르다. 포토시의 쿠에카는 애잔하고 타리하는 경쾌하다. 카밀라의 춤을 보며 와인을 들이켜는 사이 항아리가 비었다. 한 동이를 더 주문했다. 항아리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웨이터를 카밀라가 붙잡았다. “쿠에카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맞상대해줄래?” 청년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 출신이니?” 카밀라가 물었다. “타리하!” “그럼 쿠에카를 출 줄 알겠군?” 그녀가 먼저 청년의 팔짱을 꼈다. 첫 순서는 ‘초대’로 남녀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년이 으쓱하더니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쿠에카가 흐르고 남녀가 손수건 대신 손끝을 돌리며 날렵한 춤동작을 선보였다. 이사벨이 휘파람을 불며 내 손을 당겼다 .
와인은 오감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한다. 눈으로 빛깔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목젖으로 감각을 느끼고, 귀로 술잔 부딪는 소리를 듣고. 와인을 표주박으로 떠 마시니 색, 향, 소리를 느끼기엔 미흡했다. 대신 표주박으로 와인을 떠 마시며 춤추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오감이 합쳐져 닿아야 할 최고의 경지’에 닿았다. 인류가 술을 경험한 이래 온갖 양조주와 증류주로 음주문화를 발전시키며 닿으려던 경지였고 알코올 금지법, 금주법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던 가치였다. 그게 뭐냐고? 흥!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