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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치익∼ ‘에스프레소 특급열차’ 한잔에…여기가 이탈리아네!

등록 2021-10-21 04:59수정 2021-10-21 13:07

에스프레소 바가 뜬다
정통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커피 성공 뒤 인기 급상승
설탕 기본으로 넣어 쓴맛 제거…유럽 여행의 추억까지
서서 먹는 탓 작은 공간에서 창업 가능, 진입장벽 낮아
서서 커피를 마시는 유럽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장소협찬 쏘리에스프레소바
서서 커피를 마시는 유럽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장소협찬 쏘리에스프레소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약수역 인근의 한 골목길. 다세대 주택이 늘어선 흔한 풍경이었지만 한 건물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택가에 웬 줄? 두어평 되는 작은 공간에 다가가자, ‘치익, 치익’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진하게 풍겨 나왔다. 이곳은 에스프레소를 전문으로 파는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커피. 2017년 문을 연 이곳은 현재 한국에 불어닥친 에스프레소 바 인기의 근원지다. 서서 커피를 마시는 정통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바를 표방했다. 4명 정원의 작은 공간엔 손님이 앉을 의자도 없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3시면 닫는 것도 여느 카페와 다르다. 그렇다고 포장 전문인 테이크아웃 커피숍도 아니다. 에스프레소 바, 너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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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충격

긴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헉. 가격이 왜 이렇게 싸. 에스프레소가 1500원이다. 우유나 크림 등이 올라간 다른 메뉴도 있지만, 제일 비싼 것도 2천원. 이래도 남아? 괜한 걱정이었다. 사람들을 보니 기본이 두잔, 서너잔을 마시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다시 줄을 서기 싫어 한번에 3가지를 주문했다. 카페 에스프레소, 카페 스트라파짜토, 카페 오네로소. 에스프레소는 ‘빠른’이란 뜻 그대로 고온 고압으로 빨리 뽑아낸 커피다. 당연히 양이 적고 진하다. 여기에 물을 타면? 우리가 흔히 먹는 아메리카노다. 미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방식이라 붙은 이름. 스트라파짜토는 카카오 가루가 토핑된 것이고, 오네로소는 크림과 우유를 섞은 에스프레소다. 쓰지 않을까. 한모금 들이켰다. ‘오.’ 쓰지 않다. 달짝지근하면서 견과류의 향이 올라온다. ‘이거 뭐지’ 하면서 들이켜니 숨어 있던 정답이 드러났다. 잔 아래에 깔린 설탕! 이 설탕 한 스푼이 엄청난 풍미를 만들어줬다. 스트라파짜토는 은근한 카카오 향이 코를 즐겁게 했고, 오네로소는 크림과 우유의 부드러운 느낌이 식도와 위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먹었던 쓰고 역했던 에스프레소는 어디로 갔나. 순식간에 석잔을 마시고 가게를 나섰다. 한 10분 약간 넘게 걸렸나. 늘어선 사람들을 보니 젊은층만 있는 게 아니었다. 노년층도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잔을 들고 가게 밖에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 서서 먹는 카페라니, 세상에나. 문화적 충격!

리사르커피 약수점. 이정국 기자
리사르커피 약수점.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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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스푼의 ‘마력’

이런 독특한 형태의 카페인 에스프레소 바는 지금 커피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열풍’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최근 몇년 사이 서울 홍대 앞, 연남동, 서촌, 성수동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엔 에스프레소 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에스프레소 바를 검색하면 2만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온 상태. 여러 곳에 지점을 거느린 업소가 생길 정도로 성업 중이다. 열풍의 주역인 리사르커피도 약수 본점 외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매장을 운영 중이다.

사람들이 왜 에스프레소 바에 열광할까. 일단 커피가 맛있어서다. 에스프레소는 그동안 어디서도 먹을 수 있는 커피였지만 많은 이들이 찾지 않았다. 쓰디쓴 사약 같은 커피로만 인식된 것이 사실. 하지만 에스프레소에 천착한 젊은 바리스타들이 숙제를 풀어냈다. 리사르커피의 이민섭(34) 대표도 그런 경우다. 일반 커피숍을 운영했던 이 대표는 여타 커피숍과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에스프레소라는 장르에 몰두했다. 최적의 맛을 내는 원두 로스팅을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오래된 로스팅 기계를 수소문해 찾는 등 발로 뛰며 에스프레소를 연구했다. 그 결과 쓰지 않고 구수하면서 향이 좋은 로스팅 비법을 찾아냈다.

리사르커피 청담점. 이정국 기자
리사르커피 청담점. 이정국 기자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뽑아낸 신선함이다. 또 양이 적기 때문에 향의 여운이 길다”고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말한 이 대표는 “에스프레소는 신맛이 적고 달콤한 맛이 나야 한다. 그래서 기본으로 설탕을 넣어 제공한다”고 말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고품질 원두로 만든 커피) 업계에선 신맛이라 부르는 산미가 대세다. 에스프레소는 이에 역행하는 셈. 거기에 설탕까지 기본으로 넣는다니 역발상이나 다름없다.

설탕을 기본적으로 넣은 이 대표의 선택은 사실상 ‘신의 한수’라 평가받는다.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에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를 창업한 홍태기(30) 바리스타는 “리사르커피에서 영감을 받아 가게를 열게 됐다. 에스프레소 바를 창업하는 사람들이 참조를 많이 하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로스터리 커피 하우스 커피앰비언스의 윤형원 대표는 “에스프레소는 진하고 쓰다는 인식을 설탕을 넣음으로써 많이 상쇄시켰다. 설탕을 기본으로 넣은 리사르커피의 전략이 먹힌 것이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다가가게 만들었다”며 “젊은층에선 에스프레소 바가 확실히 힙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사르커피의 다양한 에스프레소. 이정국 기자
리사르커피의 다양한 에스프레소.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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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추억 소환

유럽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에스프레소 바 인기 요인의 하나다.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히자 유럽에서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것. 포르투갈에서 직접 수입한 원두를 사용하는 서울 종로 서촌의 쏘리에스프레소바의 이사라(30) 대표는 “유럽 여행 때 먹었던 맛이라며, 한번에 서너잔 먹고 가는 손님이 많다. 여행을 못 가는 시대라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포르투갈의 유명 디저트인 에그타르트도 함께 파는데, 여행지에서 에그타트르를 탑처럼 쌓아 올려 먹었던 추억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란다. 서서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먹고 후딱 자리를 떴던 여행의 추억을 한국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되살리는 것이다. 쏘리에스프레소바도 기대 이상의 인기에 힘입어 근처 안국동에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쏘리에스프레소바.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쏘리에스프레소바.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한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에스프레소 바는 유럽에선 가장 흔한 커피숍의 형태다. 음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커피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새로운 유행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여기에 창업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창업자들을 이끌고 있다. 에스프레소 바는 서서 먹기 때문에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고품질 원두를 준비해야 하는 스페셜티 커피와 달리 에스프레소 바는 원두 종류도 단출한데다, 딱히 고급스러운 디저트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대가’들이 선점한 스페셜티 커피 시장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셈이다.

오르소에스프레소바의 에스프레소. 이정국 기자
오르소에스프레소바의 에스프레소.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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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에스프레소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느는 추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긴 하지만, 값이 비싼데다 관리도 쉽지 않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산 뒤 얼마 못 쓰고 당근마켓에 내놓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 꽤 많지 않은가. 캡슐형 머신의 경우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아무래도 원두를 바로 갈아 내려 마실 때의 신선함은 떨어지는 게 사실.

가장 간편하게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모카포트다. 물을 끓여 그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인데 가격도 싸고 잘만 뽑으면 꽤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어 인기다. 온라인 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2019~2020년 사이 모카포트 판매율이 두배 가까이(97%) 늘었다. 에스프레소 인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모카포트를 사용하면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이정국 기자
모카포트를 사용하면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이정국 기자

하지만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뽑으면 맛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몇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선 원두는 무조건 에스프레소용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써야 한다. 일반적인 드립 커피용 원두와 에스프레소용으로 로스팅된 원두로 직접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비교해본 결과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기에 원두 분쇄도 모카포트용으로 해야 한다. 원두를 살 때 업장에 말하면 알맞은 굵기로 분쇄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리사르커피 이민섭 대표가 전한 꿀팁이 있다. 기계로 뽑는 에스프레소보다 덜 진하다고 느낄 때는 모카포트 아래쪽 물통에 원두 가루를 한 스푼 넣어보자. 효과?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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