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접실 식탁에 앉은 이가원씨. 뒤쪽 그림은 백향목 작가의 (2020).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이 집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십년 가까이 자취생활을 했어요. 반지하에서부터 오피스텔, 빌라, 스튜디오 등등 꽤 다양한 주거공간을 전전했던 거 같아요.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건 오로지 자연 가까이 살고 싶은 마음, 창 밖으로 나무 한그루라도 제대로 보고 살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건 우연히 오래된 연립주택을 개조해 살고 있는 한 커플을 SNS에서 만나게 된 이후부터 였는데요. 창밖으로 보이는 노오란 은행잎과 저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의 모습이 기가 막혔어요. 이후 그 비슷한 조건의 집을 찾아다녔고, 결국 만나게 됐습니다.”
―처음 이 집을 수리하는데 컨셉을 어떻게 잡으셨고, 이후 집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부동산 소개로 처음 이 집이 딱 들어섰을 때, 울창한 나뭇잎이 집 안으로 반사되는데, 정신이 혼미하더라고요. 나무가 마치 집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바깥 풍경과 관계를 잘 맺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 집은 아주 기초공사만 했다고 보심 됩니다. 특별히 좋은 마감재를 쓰지도 않았고요. 이 집을 완성하는 건 바깥 풍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결국 인테리어도 관계맺기인 거 같아요.”
―집을 수리하면서 가장 애쓴 부분과, 살면서 가장 애정이 가는 공간이 어디일까요?
“설계를 전문가(전우진 스튜디오)와 조금 오랜 시간 공들여 했던 거 같아요. 저와 제 파트너의 루틴을 고려해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고, 없던 구조물을 세우는 등의 작업을 했는데, 옷을 자기 몸에 딱 맞게 고쳐입는 기분이 들었어요. 특별히 공을 들인 곳은 주방과 현관 맞은편에 세운 구조물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집을 고치기 전엔 현관을 열면 거실 내부가 훤히 보여 집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는데 현관을 마주보는 공간에 구조물을 세워 그 곳에 세탁기를 넣었습니다. 집안을 분할하는 기능도 하고 있어, 적재적소에 기둥 하나 잘 세우는 게 공간의 짜임새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손님에게 집 투어를 시켜줄 때,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하시나요?
“서울 시내 이렇게 좋은 경치 속에서 살기 힘들다는 점과 집 값이 서울 여타의 동네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집 값이 안정적이라는 건 아주 큰 장점인데, 부동산이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도구가 된 지금 제 말이 긍정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지하철이 다니지 않고, 학군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서인듯 한데, 이 두 가지가 주거 우선순위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는 적극 이 동네 구옥을 알아보라 권하는 편입니다.”
현관 앞 중문격으로 가벽을 세운 뒤 세탁기와 건조기를 배치했다. 사진 윤동길
―그래도 이 집에 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오래된 집이잖아요. 그게 좋아서 이사 왔는데, 시시때때로 재건축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와요. 집을 샀지만 주거가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집 값의 적지 않은 부분을 대출을 냈으니, 만약 재건축을 하게 되면 자기 자본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큰 낭패죠. 한편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 매력을 발견하고 터를 잡아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또래 집단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동네 친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거죠.”
―이 집이 경관도 그렇지만 인테리어가 무척 유명합니다. 비초에 선반은 설치에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마음 먹고 구매했는데, 벽돌로 지은 집에는 설치가 어렵다고 해서 마음 고생 짧게 했지요. 전기 설비 공사를 할 때였는데, 설비 사장님이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태도를 가진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셨어요. 그 분 덕분에 아주 튼튼하게 설치했습니다. 4미터를 꽉 채운 책장을 바라보면 꽤 만족스럽습니다. 비초에 선반의 특징은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감인 듯요. 딱히 튀지 않는데 눈길이 가죠. 이걸 디자인한 디터 람스의 철학인 ‘Less is better’가 구현됐다고 봅니다. 이 시스템 선반은 직관적이고 편리한 DIY인데, 1960년대에 이걸 디자인한 디터 람스의 영리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더군요.” (웃음)
한쪽 벽을 꽉 채운 비초에 선반. 사진 윤동길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시간되실 때마다 구입하셨는데, 그림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는 집안에 당장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 예컨대 밥솥이나 진동청소기같이 생활의 편리를 위한 도구보다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을 그림을 거는 게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림은 거의 대부분 우연한 기회로 즉흥적으로 ‘지른’ 건데, 구매처는 아트 페어나 개인전도 있지만, 여행지 길거리나 에스엔에서(SNS)상에서 알게된 아마추어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어울리는 공간이 떠오르지 않으면 구매를 포기하는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인테리어 또는 집꾸밈 사이트나 취향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 습관 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한창 인테리어를 궁리할 때는 핀터레스트(Pinterest)를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거 같아요. 무궁무진하게 레퍼런스가 많았고, 그 안에서 제가 꽂히는 것들을 말그대로‘ pin’하는 습관을 가졌던 거 같아요. 집을 꾸밀 때는 일단 자신이 어떤 분위기에 마음이 뺏기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작업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스웨덴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칼악셀 아킹이 1959년 도쿄의 스웨덴대사관 납품용으로 만든 ‘도쿄체어’. 사진 윤동길
―오래된 집을 고치며 느끼는 가치랄까, 오래된 집과 물건 등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시나요?
“잘 보존된 헌 것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데요. 새 것이 주는 일종의 들뜸을 견디지 못하는 거 같아요. 요샛말로 ‘착붙’이라는 느낌을 새 것에서 느끼기 어려워요. 그런데 오래된 물건에는 새 것이 주는 일말의 위화감이 없어요. 그래서 마치 헌 것을 구매하는 일은 물건을 길들이는 데 혹은 물건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분량의 시간을 구매하는 일인 듯도 싶어요. 세월이 잘 응축된 물질적 존재로서 오래된 주택은 일종의 원숙미를 넘어 범접할 수 없는 오라(aura)가 느껴지죠. 최근에 건축가 김중업이 1983년 설계한 사직동 주택이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었어요. 사진으로만 접했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세월을 거듭하며 독자적인 멋을 갖춘 시간적 존재로서 오래된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 삽니다. 건물이 오래돼도 멋지려면 애초에 잘 지어야 하는데, 그런 주택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고, 그런 건물이 있다고 해도, 이 부동산 광풍에선 그런 아름다움이 큰 쓸모가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집은 무엇일까요? 지금 꿈꾸고 있는 집이 있나요?
“평범한 사람들이 탐욕적이어서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한다기보다, 불안해지는 삶에 대한 스스로 안전망를 마련하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져요. 엄청나게 큰 빚을 지면서, 집값을 메우기 위해 실상 일의 세계에서의 착취를 견디며 살아가는 거잖아요. 집이 삶의 굴레가 되는거죠. 그러나 이제 그 굴레마저 일종의 특권이 되어 버렸어요.
제 경우 저와 제 파트너의 원룸 전세금을 합하고도 많은 대출을 껴야 오래된 연립주택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어요. 소득 대비 빚을 많이 내긴 했습니다만, 이 주택을 구매한 자금으로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어림없어요. (웃음)
소득이 적은 제가 원하는 주거 공간을 꿈꾼다고 주변에서 우스개소리로 분수를 모른다고들 했어요. 집은 쉬고 나 자신을 재생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분수를 알라’는 말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생각해요. 더 나은 주거의 형태를 상상하고, 더 나은 주거를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저는 그저 좀 더 나다운, 그리고 나무가 보이는 살 만한 집에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걸 두고 분수를 모른다고 한다면 저는 기꺼이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