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마흔이니 저도 적은 나이는 아니에요. 어릴 때나 하는 고민 같아서 좀 부끄럽지만 그만큼 오래 참은 것 같아요. 대학 때부터 친했던 4총사가 있는데 한명이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 친구 친정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제가 이것저것 알려주고 많이 챙겨줬는데 3년쯤 전부터 저를 교묘하게 따라 해온 걸 눈치챘어요. 옛날에도 친구는 제가 운전면허증을 따고 곧바로 면허를 땄습니다. 차를 사니 자기도 어떻게든 사더군요. 제가 외제차를 뽑으니 자기도 외제차로 바꾸고, 이사를 하니 같은 동네로 따라왔어요. 문제는 집안 인테리어까지 비슷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모르도록 은밀하게 일을 추진합니다. 한참 나중에 비슷한 차를 타고 같은 동네에 살게 됐다는 걸 알게 되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친구들한테는 말도 못하고…. 처음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거듭되니 맘이 상해요. 남편 옷까지 비슷하게 입히고는 오래전에 자기가 사줬던 것인데 안 입었다고 거짓말합니다. 인스타그램에도 “내가 요즘 꽂힌 거”라면서 제가 해 먹는 음식이며 상차림 사진을 비슷하게 올려놓아요. 이젠 저를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친구가 변해서 제가 정보를 너무 많이 줬나 후회가 돼요. 대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거라 은근히 정말 스트레스받아요. 한바탕 쏟아붓고 끝내고 싶은데, 그냥 말 안 하고 살려고요. 안편해
A. 사사건건 따라 하고 나를 의식하는 것 같은 친구 때문에 고민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미 사연자분에게는 중요하지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든, 나를 따라 하고 은근히 깎아내리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행동에 대해 이미 ‘불쾌감’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확실하지만 스스로가 치사하게 느껴지니 어디 가서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요. 자, 바로 여기서 문제는 한 단계 다른 방향으로 전환됩니다. 친구의 이상해 보이는 행동 때문에 일련의 상황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제는 내가 ‘마음’이 상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죠. 저는 이 문제가 친구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바로 이런 문제예요. ‘내가 어찌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타인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 나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요. 사람들마다 각기 상황이나 사례는 다를지 모르나, 타인의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특이한 에피소드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그렇게 특별한 사연도 아닌 셈입니다.
차분히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타인이 내게 거슬리는 행동을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에는 세 가지 정도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혼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지만 꾹 누르는 것(감정의 억압과 회피), 둘째는 상대방에게 한바탕 쏟아붓고 끝내는 것(감정폭발),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화난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차분하게 전달하는 것(감정수용과 의사표현)입니다. 사연자분은 지금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서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일단은 여기에 세번째 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방식은 결국 나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지만, 세번째 방식은 우리를 다시금 돌아보고 그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대립하는 사람에게 ‘아, 저 사람은 아직 저런 상태에 머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라는 문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에게 이런 생각의 방법을 적용해 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어쩌면 친구는 큰 악의 같은 건 없이 약간의 질투심과 약간의 모방심 때문에 사연자분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일지 몰라요. 마치 새로운 정보로 가득한 잡지 한 권을 사서 이것저것 따라 해보듯, 사연자분을 살아있는 잡지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죠. 사실 저라면, ‘내가 얼마나 멋져 보이면 내가 하는 걸 이렇게까지 따라 할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 친구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더 많이 알려줄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정이 어려웠던 친구가 나랑 비슷한 것들을 즐기는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은 혹시 아닌지, 한번쯤은 내 마음도 돌아보는 시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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