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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회색 강과 거친 고원서 만난 다양한 삶의 얼굴

등록 2022-04-22 10:59수정 2022-04-22 18:35

[김남희의 걷다 보면] 파미르 하이웨이

키르기스스탄 오시에서 출발
타지키스탄 호로크까지 725㎞
황량한 파미르고원의 마을
신산한 삶 사는 다정한 사람들
국토의 절반이 고도 3000m가 넘는 타지키스탄에서는 종종 당나귀가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 김남희 제공
국토의 절반이 고도 3000m가 넘는 타지키스탄에서는 종종 당나귀가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 김남희 제공

이 벽에 붙은 독재자의 얼굴은 이 나라의 그 무엇도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이 벽에 걸고 싶은 얼굴은 무르가브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소녀의 작은 얼굴. 란가르의 들판에서 밀을 베는 여인의 주름진 얼굴. 지제우의 흙집에서 양을 치는 자로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다. 관공서의 건물마다 붙은 저 거대한 초상화의 주인공을 내가 만난 얼굴들로 바꾸고 싶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의 거리에서 나는 지나온 마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빈 들판과 회색의 강과 거친 고원에서 전기도, 수도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지난 며칠간 내가 건너온 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거칠고 고립된 도로로 꼽혔다. 암석이 굴러떨어지고, 모래먼지가 휘날리고, 중앙선이나 가드레일도 없는 좁고 구불거리는 도로의 평균 고도는 4000m. 이 도로를 건설한 소비에트는 ‘M41’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세상은 ‘파미르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여정은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에서 출발해 타지키스탄의 호로크까지 가는 725㎞. 친구 수정과 오스트레일리아인 루시가 일행이었다.

해발고도 3500m의 툴파르쿨 호수. 김남희 제공
해발고도 3500m의 툴파르쿨 호수. 김남희 제공

차를 타고 넘기에도 힘든 파미르 고개를 자전거로 넘어가는 여행자들. 김남희 제공
차를 타고 넘기에도 힘든 파미르 고개를 자전거로 넘어가는 여행자들. 김남희 제공

7000m급 봉우리가 네개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툴파르쿨 호숫가의 고도는 이미 3500m였다.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보름 넘게 지낸 뒤였기에 유목민 텐트의 시설이며 음식을 품평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 아침상에 올라온 계란 프라이가 하나뿐이라고 분개했으니. 호숫가에서는 7134m의 레닌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양지 녘에 앉아 ‘산멍’을 즐길 때, 말을 탄 유목민 남자가 다가왔다. 우리가 먹던 간식을 루시가 그에게 건넸다. 그 순간부터 이 남자의 노골적인 편애가 시작됐다. 루시의 전화번호만 따고, 그만 말에 태워주고, 둘이서만 사진을 찍다니. 저 간식은 우리가 샀는데! ‘유교걸’인 우리는 태워달라고 청하는 무례를 저지를 수 없어 그저 샘을 낼 뿐. “우린 송쿨에서 사흘간 말 탔잖아.” 이렇게 위로하면서.

파미르 하이웨이는 국경을 넘는 방식도 특이했다. 차 안에 앉은 채로 입국 서류에 도장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군인이 여권을 받아가 도장을 찍고 가져다주는 서비스라니! 오시에서 출발할 때 기사 아딜은 짐을 넣고 남은 트렁크의 모든 공간을 수박으로 채웠는데, 초소가 나올 때마다 경비원에게 하나씩 건넸다.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30년째 장기 집권 중인 이 나라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국경을 넘을 때조차 비리를 겪는다고 했다. 우리는 수박 덕분에 무사히 지나가는 거였을까.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풍경이 달랐다. 푸른 초원이 사라지고,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 이어졌다. 도로의 왼편으로는 회색의 판지강이 흐르고, 강 너머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강물조차 잿빛이라 온통 무채색이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풍경 사이로 장식도 색채도 없는 사각형의 흰 집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 너머로 빛나는 설산의 이마가 아니었다면 더없이 삭막했을 터였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93%가 산이고, 국토의 절반 가까이가 고도 3000m를 넘는다. 거기에 더해 7000m급 봉우리가 4개. 그냥 ‘세계의 지붕’이 된 게 아니었다. 저 산맥에 깃들여 산다는 눈표범과 마주칠까 싶어 매서운 눈으로 산들을 훑어보고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눈표범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가장 높은 악바이탈 패스는 ‘악’ 소리가 날 것 같은 4655m의 고도.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쏟아지는 눈발에 산들이 하얗게 묻히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8월의 눈을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 고개를 자전거로 올라오는 청춘들이 보였다. 제 몸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그들이 누릴 고통 가득한 환희가 부럽기도 했다. 삶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는데 패기 없는 나는 기껏 다음 생으로 미룰 뿐이었다.

수도 두샨베의 대통령궁 앞에 대형 사진으로 걸고 싶은 소녀 마디나를 만난 곳은 무르가브였다. 무르가브에는 컨테이너 상자로 이루어진 시장이 있었다. 파미르를 넘다가 사고가 난 화물차들이 버리고 간 컨테이너의 재활용이었다. 옷가게, 채소 가게, 전기용품 가게, 기념품 가게, 핸드폰 가게가 된 컨테이너들이 늘어서 있었다. 삭막하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시장 끝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온 아이들 사진을 찍다가 노란 원피스를 입은 마디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 손에는 물이 든 양동이를, 다른 손에는 세살 남동생 누르블롯의 손을 잡고 걷던 소녀가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요?” 소녀를 따라가니 할머니와 어머니, 삼촌까지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았다. 거실로 쓰는 큰 방에는 다른 집처럼 이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디나가 큰 천을 가져와 바닥에 깔고 차와 빵과 아이란을 내왔다. 한입만 빵을 베어먹거나 아이란을 떠먹어도 가까이 그것들을 놓아주는 마디나. 우리에게 차를 따라주는 틈틈이 태어난 지 한달 된 동생 벡블롯을 돌봤다. 동생을 바라보는 마디나의 얼굴에는 짜증이나 피로함이 없었다.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 다정한 얼굴이 성스럽게 보였다. 열두살인 소녀도 돌봄을 받을 나이인데…. 소녀 나이 때의 나는 밥상에 올라온 고등어 한 조각을 더 먹기 위해 동생들과 젓가락 싸움을 벌이던 누나였는데…. 마디나를 보고 있으니 내가 볼 수 없었던 내 어머니의 유년이 시간을 거슬러 내 앞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내 어머니. 식민지 시절에 태어난 엄마의 어린 시절도 마디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물을 길으러 가고, 어린 동생을 업고 다니며 온갖 집안일을 거드느라 하루가 짧은 소녀. 가난이 서러운 건 아이들을 너무 일찍 철들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마디나도 내 어머니처럼 삶을 향한 사랑과 호기심을 놓지 않고 나이 들어가기를 바랄 뿐. 돌이켜보니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만난 여인들은 누구나 마디나 같았다. 신산한 삶의 파고 같은 건 내보이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이를 환대할 뿐이었다. 감자 캐는 모습을 찍으려는 나를 보고 일어서서 포즈를 취해주는 바람에 뻣뻣한 자세의 사진만 찍게 만든 란가르의 할머니도, 어린 딸을 옆에 앉혀놓고 밀을 베다가 차 한잔을 내밀던 지제우의 젊은 여인도, 팬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고 다음날 두배는 많아진 팬케이크를 내밀던 호로크의 할머니도.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차와 빵을 대접하는 소녀 마디나. 김남희 제공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차와 빵을 대접하는 소녀 마디나. 김남희 제공

컨테이너 상자로 이루어진 무르가브의 시장. 김남희 제공
컨테이너 상자로 이루어진 무르가브의 시장. 김남희 제공

1년 중 151일 눈이 오는 곳

파미르 하이웨이를 넘는 동안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시설은 비슷했다. 저녁이면 발전기를 돌려 세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왔다. 상수도가 없어 세수도 양치도 최소한의 물로 해야 했다. 양고기 국수나 볶음밥을 저녁으로 먹고, 여러개의 침대가 놓인 방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뒤섞여 잠을 잤다. 어느 집이나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일은 고통스러운 기쁨이었다. 일단 패딩을 꺼내 입고, 신발을 신고, 랜턴을 챙겨야 했다. 문을 열면 8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찬 바람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맑은 날이라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지상의 어디에도 불빛이 없는 대신 밤하늘에는 수천수만의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알리추르 마을의 고도는 3922m였다. 알리추르는 ‘알리의 저주’라는 뜻.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가 이 지역을 여행하며 겪은 혹독한 기후와 지독한 바람에 대해 한 소리 하셨단다. 그걸 또 좋다고 마을의 이름으로 삼은 이들의 감수성이 남다르다. 이 주변에는 곰도 살고 아이벡스도 산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뭘 먹고 사는 걸까. 1년 중 151일 눈이 오고, 겨울철에 영하 30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는 곳에서.

파미르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덕분에 주어지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파미르 하이웨이를 넘는 내내 ‘여행자라니, 참 한가하군’ 자조적인 기분이 들곤 했다. 하룻밤을 신세 진 마을의 여자와 아이들이 물 긷는 일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만 생각해도 잠자리가 따끔거렸다. 전기는 그렇다 쳐도 생존을 위해 깨끗한 물만큼은 인간의 삶에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두샨베로 향하기 전, 오토바이도 다닐 수 없는 가파른 산길을 세시간 올라야 다다르는 지제우 마을을 찾아가 하룻밤을 머물렀다. 진흙으로 지은 소박한 집들의 담벼락에는 소똥이 말라가고, 다랑논마다 온 가족이 모여 밀을 베고 있었다. 끝나가는 여름의 햇살이 노랗게 익은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자로 할아버지가 마흔여덟마리 양과 아홉마리 소를 키우며 어린 손주들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었다. 냇가의 정자에 앉아 감자를 섞은 메밀밥으로 저녁을 먹고, 살구나무 가지 위로 무수한 별들이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침은 소리로 찾아왔다. 장난치는 아이들 웃음소리, 기세 좋게 흘러가는 물소리, 살구 열매를 탐하는 새들의 울음소리, 손녀를 부르는 할머니 음성.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의 결이 달랐다. 자로 할아버지가 왜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지, 할아버지의 딸이 왜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오토바이도 다닐 수 없는 산길을 세시간 걸어야 만나는 마을 지제우의 흙집. 김남희 제공
오토바이도 다닐 수 없는 산길을 세시간 걸어야 만나는 마을 지제우의 흙집. 김남희 제공

기억하고픈 이 나라의 얼굴

파미르의 마을을 마음으로 더듬다 보니 지금 여기 수도 두샨베의 풍경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이 도시의 어설픈 화려함이, 건물마다 걸린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규모만 압도적인 건축물들이 서글프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는 이 나라 대통령의 자서전을 쌓아놓고 있었다. 중심가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두샨베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 이들은 옷차림에도, 태도에도 자신감이 흘렀다. 쓸쓸한 마음으로 도시를 걷다 돌아오던 길, 숙소 앞에서 어린 소녀와 마주쳤다. 열서넛쯤 되었을까. 어린 소녀는 노인의 얼굴을 한 채 빵이 쌓인 수레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파미르고원 어디에선가 양을 치고 꼴을 베던 아이는 아니었을까. 내가 기억하고픈 이 나라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글·사진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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