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 폭포. 노동효 제공
생애 최초로 이구아수 폭포를 봤던 때를 떠올린다. 지구란 행성에 너비 270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던 시절, 십자가에 묶인 사제가 엄청난 높이와 수량의 폭포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에서였다. 198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미션>. 바티칸 선정 ‘위대한 영화 45편’에 수록된 이 영화의 끝은 복음의 한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성경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안도현 시인은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라고 위로하며 ‘모항’을 찾아가라고 했다.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 같은 심정이 될 때 모항에 가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이구아수 폭포를 떠올린다, 시름과 분노를 한꺼번에 씻어주겠다는 듯 쏟아지던 물줄기를!
브라질령 이구아수 국립공원 내 산타마리아 전망 플랫폼. 노동효 제공
이구아수 폭포 아래 물세례를 받으려고 모인 관광객들. 노동효 제공
이구아수 폭포를 찾은 건 두번째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구아수강이 시작되는 쿠리치바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강이 구불구불 1300㎞를 흘러 파라나강과 합류하는 포스두이구아수로 향했다.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삼국이 만나는 국경으로 말하자면 ‘물의 삼각지’에 자리한 도시였다. 파라나강을 건너면 파라과이의 시우다드델에스테, 이구아수강을 건너면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이과수.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하루에 세 나라의 출입국 도장을 찍는다고도 했다.
포스두이구아수 도심에 숙소를 잡고 저녁 식사 겸 산책에 나섰다. 한적하던 시내가 일몰 후엔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하긴 리우데자네이루와 더불어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브라질 대표 휴양도시였으니까.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목적은 한결같았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 폭포를 보는 것. 높이론 빅토리아보다 20m가량 낮고 평균 유량으론 나이아가라의 3분의 2 정도지만, 너비론 빅토리아(1700m)와 나이아가라(1200m)를 훌쩍 넘는 2700m, 두 폭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오죽하면 엘리너 루스벨트가 이구아수 폭포를 마주했을 때 내뱉은 탄식(오, 나의 불쌍한 나이아가라!)이 지금껏 회자할 정도겠는가.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브라질령 이구아수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면서 랄프를 떠올렸다. 독일 출신의 그는 대서양 횡단 선박에 지프를 싣고 남미로 왔다. 자기 차를 운전하며 남미를 여행했다. 때론 여행사 손님을 태워주며 소소한 돈을 벌기도 했다. 돈이 바닥나자 차를 팔아 여행을 이어갔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봤을까? 궁금해진 나는 물었다. “마추픽추는 봤겠구나?” “아니.” 예상 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이구아수 폭포는 봤지?” “아니.” 연이은 부정에 그 이유를 묻자 금세 답이 돌아왔다. “관광지잖아.” 그가 되물었다. “남미에선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감흥을 주는 수많은 풍경을 만났어. 그런데 관광객에게 둘러싸여 감흥을 받지 못할 게 빤한 장소를 비싼 입장료까지 내면서 갈 필요가 있을까?” 명소의 경우 사진과 영상을 미리 접하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이구아수 폭포는 어떨까?
이구아수 폭포 중 가장 낙차가 큰 악마의 목구멍 입구. 노동효 제공
영화 ‘해피투게더’ 속 아휘가 서 있었던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노동효 제공
안내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셔틀에 올랐다. 아열대 밀림을 지나 버스가 섰다. 관광객 뒤를 따라 앞이 트인 마당으로 향했다.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맞은편에 있었다. 사진과 영화로 본 덕분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구아수 폭포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론 대체 불가한 장소였다. 직접 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흥이 온몸을 적셨다. 이구아수 폭포가 “날 추앙해.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라고 말했다면 백번, 아니 만번이라도 그러겠다고 대답했으리라.
일찍부터 이구아수 폭포 주변엔 아메리카 선주민이 살았다. 아프리카를 떠나 아메리카까지 이동한 인류의 후손 중 물의 향연에 도취해 눌러앉은 이였으리라. 미디어가 쏟아내는 이미지를 접한 현대인도 이구아수 폭포와 직접 대면하면 압도당하는데 인류 최초로 이구아수 폭포를 본 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구아수는 인류가 추앙해온 폭포이기도 했다. <타잔> <007 문레이커> <미션> <해피투게더> <인디아나 존스> <블랙팬서>에 이르기까지 100년 넘도록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을 정도로.
맞은편의 2단 폭포를 감상하며 ‘산타마리아 전망 플랫폼’으로 향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에선 ‘가상의 아마존 3단 폭포’가 등장했는데 존스 박사 일행이 2단으로 추락했던 곳이 보였다. 세번째 추락은 이구아수 폭포 중 가장 낙차가 큰 ‘악마의 목구멍’에서 촬영되었다. 이구아수는 대략 250개의 폭포로 나뉜다. 현무암 바위들로 인해 강물이 갈라지는데 수위가 높으면 갈래가 줄고, 수위가 낮으면 갈래가 늘어난다. 여러 갈래 중 수위와 상관없이 흐름을 유지하는 폭포들은 이름이 붙었다. 보세티, 산마르틴, 에스콘디도 등. 이구아수 폭포를 처음 발견했던 유럽인 탐험가는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과라니족이 부르던 ‘이구아수’가 폭포 전체를 포괄하는 이름으로 굳어졌고, ‘산타마리아’는 250여개 폭포 중 한 갈래의 이름이 되었다. 이구아수는 과라니어로 ‘거대한 물’이란 뜻이다.
산타마리아 플랫폼에서 물세례를 실컷 맞은 뒤 폭포 옆 계단을 올랐다. 2층, 3층 차례차례 난간에서 폭포를 보다가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옷이 젖은 채 폭포를 올려다보던 동양인 사내. 영화 <해피투게더>(1997)에서 보영(장궈룽·장국영)과 아르헨티나로 온 아휘(량차오웨이·양조위)는 남미를 떠나기 전 홀로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갔다. 작품 배경이 부에노스아이레스니 아르헨티나 쪽 폭포라고 짐작했는데 브라질에서 촬영한 장면이었다. 아휘가 섰던 곳에선 황토색 강이 추락과 동시에 미산란하며 백색 폭포로 바뀌는 모습이 보였다. 빛이 흩어지는 물방울 위로 무지개를 띄웠다. 아휘는 무지개를 못 봤겠구나. 흐린 날이었으니까. 볼 위로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비인지, 폭포인지 알 수 없던 그의 얼굴이 지나갔다.
이구아수 국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긴코너구리. 노동효 제공
악마의 목구멍 위를 날아와 난간에 앉은 나비. 노동효 제공
브라질령 이구아수 국립공원을 거닐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국경을 넘었다. 이구아수 폭포를 상공에서 보면 알파벳 유(U)에서 왼쪽 끝을 길게 당겨놓은 듯한 형상이다. 긴 쪽이 아르헨티나령, 짧은 쪽이 브라질령. 강은 폭포 부근에서 폭을 넓히고 말발굽처럼 생긴 지점에서 80m 아래로 내리꽂힌다. 마치 강을 다 집어삼키려는 괴물의 아가리 같다. 그래서 별명이 붙었다. 악마의 목구멍.
아르헨티나령 이구아수 국립공원에서 입장권을 산 뒤 기차에 올랐다. 강을 거슬러 올라 기차가 섰다. 여기서 악마의 목구멍까진 걸어가야 한다. 섬들을 지나 강 가운데로 다리가 이어졌다. 끝에 악마의 목구멍이 있었다. 강이 추락하며 지르는 굉음이 귀청을 두드렸다. 지름 90m 남짓한 목구멍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빨려 들어갔고, 일부는 물안개로 솟아올랐다. 하염없이 추락하는 폭포를, 치솟는 물안개를 보고 있노라니 ‘황홀’과 ‘혼미’가 뒤섞이고 소용돌이쳤다. 관광객의 함성과 비명과 환호까지 더해져 아득해지던 찰나, 뜻밖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비 한마리가 악마의 목구멍 위를 날아와선 내 앞에 앉았다. 백척간두에 좌정한 수도승 같았다. 미동도 않던 나비가 살며시 날개를 흔들어 내게 말을 걸었다. ‘이구아수강이 발원지에서 폭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구불거리는지 한 부분, 한 시기만 보면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아. 폭포란,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강이 인류 역사를 대변한다고 나비가 알려주었다.
나비가 떠나고 나도 악마의 목구멍에서 나왔다. 탐방로를 걸으며 다양한 위치에서 이구아수 폭포를 체험했다. 마치 물방울로 제작한 불꽃놀이 같았다. 하얀 물꽃이 터질 때면 온몸이 환희로 흠뻑 젖었다. 인류가 추앙하는 폭포, 이구아수가 베풀어준 물의 향연이었다.
※이구아수 폭포 너비는 유네스코 공인 2.7㎞지만 한국에선 4.5㎞로 늘곤 한다. 20세기 일본의 외래어 사전과 여행안내서에선 이구아수 폭포 너비를 4.5㎞로 기재했다. 오류였다. 한국에서 이들을 번역·출판하면서 오류도 넘어왔다. 언론과 방송에선 폭 4.5㎞로 소개하기 일쑤였고, 이를 근거로 엉터리 정보가 온라인에 차곡차곡 쌓였다. ‘2.7㎞라는 사실’과 ‘4.5㎞라는 오류’가 공존하면서 ‘길이 2.7㎞, 너비 4.5㎞’라는 해괴한 설명도 등장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서조차 ‘폭 4㎞’와 ‘총길이 2700m’라는 설명이 공존한다.
글·사진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