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환경에서 캠핑을 즐긴다면 머미형 침낭이 좋다. 이현상 제공
편안한 수면은 캠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먹거리야 가는 길에 시장이나 대형마트에 들러 구할 수 있고, 정 안되면 가까운 편의점에서라도 구할 수 있지만 잠자리는 사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다. 캠핑에서 편안한 잠자리는 텐트와 침낭이 담당한다. 텐트가 가지고 다니는 집이라면 침낭은 가지고 다니는 이부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부자리라는 순우리말은 덮는 이불과 바닥에 까는 요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침낭은 깔고 덮는 게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약간 어려운 한자이지만 ‘잘 침’(寢)에 ‘주머니 낭’(囊)을 써서 침낭이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주머니처럼 생겨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주머니’라는 말은 침낭의 생김새뿐 아니라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주머니를 잘 닫지 않으면 내용물이 빠져버릴 수 있듯이 침낭도 사람의 체온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잘 닫아주어야 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추운 밤을 따뜻하게 버티는 것은 매일의 일상이자 생존을 위해 날마다 치러야 하는 전투이기도 했다. 오래전 담요는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담요의 획기적인 진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말인데, 극한적인 탐험과 등산 활동의 요구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침낭이 만들어졌다. 단열 충전재로 새의 털, 즉 우모를 넣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등산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앨버트 머머리가 1892년 최초로 우모가 충전된 침낭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침낭의 스펙에는 내한온도라는 게 있다. 깊이 잘 수 있는 온도를 측정하여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다. 내한온도는 제조사가 함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표준에 따른 테스트 방법에 따라 측정한다. 전세계적으로는 2005년 발효된 침낭에 관한 유럽 산업표준을 사용하다가 2016년부터 국제표준 ‘EN ISO 23537:2016’으로 대체되었다.
국제표준 침낭 내한온도 그래프에서 ‘컴포트’(Comfort)는 일반적인 여성이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온도를, ‘로어 리밋’(Lower Limit)은 일반적인 남성이 잠을 깊이 잘 수 있는 온도를 나타낸다. ‘익스트림’(Extreme)은 일반적인 여성이 생존할 수 있는 최저 온도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일반인들의 캠핑 활동에서는 중요한 지표가 아니다. 이와 같은 내한온도 그래프 읽는 법을 알아둔다면 침낭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침낭도 텐트처럼 3계절용과 동계용으로 나누는데 서양에서는 보통 내한온도 20℉(-6℃)를 기준으로 동계용과 3계절용으로 분류한다. 즉 동계용은 컴포트 온도 기준으로 최소 20℉(약 -6.6℃) 이하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물론 3계절용이라고 해도 동계에 사용 불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한온도가 -6℃라고 해서 무조건 동계 캠핑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 4월보다 더 따뜻한 12월의 어느 날도 있고, 12월보다 더 추운 4월의 어느 날 밤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많이 사용하는 핫팩이나 뜨거운 물을 담은 수통 등으로 보온을 유지할 수도 있다.
침낭의 충전재로 우모와 합성 보온재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보온성과 압축 크기, 무게 등에서는 우모가 우수하며, 습기와 관리, 가격 면에서는 합성 보온재가 유리하다. 우모와 합성 보온재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추위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무게와 패킹 사이즈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우수한 필파워(복원력)의 구스다운이 좋은 선택이며, 사용 환경이 추위 대응력이나 경량성보다는 습기 대응력이 중요하며 저렴한 제품을 원한다면 합성 보온재가 더 좋은 선택일 것이다. 최근에는 합성 보온재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고, 천연 우모 채취 과정에서의 동물 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어서 합성 보온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캐주얼한 캠핑에서는 굳이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우모 침낭보다는 합성 보온재 침낭을 추천한다.
그리고 침낭은 ‘장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뻔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장비는 고유의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침낭은 ‘추위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것이 일차적인 고유의 역할이다.
그러니 침낭을 고를 때 자신에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가?’
익스트림한 등반에서부터 동계 백패킹, 장거리 트레일까지 본인의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하드코어에 가까운 경우와 가족과 함께 즐기는 캐주얼 캠핑으로 한정된 경우의 침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를 A, 후자를 B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선택 기준을 참고하자.
A: 보온성 > 무게 > 부피 > 편안함: 머미형(다리 쯕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 우모 충전재가 유리
B: 편안함 > 보온성 > 부피 > 무게: 사각형, 합성 충전재가 유리
캠핑장에서의 야영은 보온을 위한 다른 장치들, 예를 들어 난로, 전기장판, 두꺼운 매트리스 등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편안함’이 우선이다. 캐주얼한 백패킹이라면 그 중간쯤의 어느 제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혹한기 백패킹과 얼음 위에서 캠핑을 즐긴다면 보온성과 부피가 최우선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물론 더 비싸다.
침낭의 모양도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머미형은 사람의 신체 형태를 본뜬 모양으로 내부의 불필요한 공간을 줄여 무게 대비 보온성이 높다. 반면 사각형은 머미형보다 내부 움직임이 자유로워서 편안하다. 이 둘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머미형은 보온성이 우수하며, 불필요한 면적을 최소화하여 무게가 가볍고 패킹 사이즈가 작다. 사각형은 편안하며, 지퍼를 완전히 개방하여 담요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캐주얼한 캠핑을 주로 즐기고 여름용 침낭을 찾는다면 당연히 사각형 침낭이 유리하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머미형을 권장한다. 머미형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캐주얼한 캠핑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사각형은 여름을 제외한 계절, 특히 겨울 캠핑에서는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