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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쌀의 맛있는 변신…이것도 쌀로 만들었다고?

등록 2022-10-28 06:00수정 2022-10-28 08:26

‘힙’한 재료 되어 다양하게 변주
화이트 와인 버금가는 쌀맥주 매력
멥쌀 구슬 식초 등 편견 깨는 제품도
쌀맥주 ‘미미사워’가 원재료인 참드림 쌀 위에 놓여 있다. 에잇피플브루어리 제공
쌀맥주 ‘미미사워’가 원재료인 참드림 쌀 위에 놓여 있다. 에잇피플브루어리 제공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만큼 익숙하게, 자주 쓰이는 말이 있을까? 한국인이라면 디엔에이(DNA)에 새겨져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한 공기 밥이 주는 의미는 우리에게 유독 남다르다지만, 사실 이제 매 끼니 쌀밥을 챙겨 먹는 이도 드물다. 통계청의 ‘2021년 양곡 소비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1년 1인당 쌀 소비량은 56.9㎏으로, 2020년(57.7㎏)에 비해 1.4% 감소했다. 사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84년 이후 37년간 줄곧 하락하는 추세다. 식습관의 변화, 다양한 대체 식품의 등장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다. 하지만 떡, 주정, 기타 식사용 조리 식품 등을 제조하는 쌀 가공 사업체의 쌀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65만130톤이었던 소비량은 2021년 68만157톤으로 전년 대비 4.6%가량 성장했다는 지표가 그 예다. ‘한국인의 밥심은 옛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쌀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갈아 만든 식혜, 외국인에게 인기

흔히 쌀로 만든 식품이라고 하면 떡이나 빵, 즉석 밥 같은 뻔한 음식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맥주는 어떨까? 맥주를 보리로만 만든다는 말은 옛말이다. 경기도 남양주의 ‘에잇피플 브루어리’는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수제 맥주 양조장이다. ‘그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로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쌀맥주 ‘미미사워’다. 조준휘 대표는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담았던 오크 통에 맥주를 숙성시키고, 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영국에서는 위스키 배럴에서 맥주를 숙성시킨다.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인 쌀을 사용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부드럽고 은은한 맛이 특징인 경기도 독자적 품종 ‘참드림’쌀을 사용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맥주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에 발맞춰 출시한 쌀 맥주의 반응이 무척 뜨겁다”고 말하며 쌀 소비가 더욱 진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미사워는 세계 3대 국제 맥주 대회 중 하나인 아이비시(IBC·The International Beer Cup)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우리 쌀 맛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에잇피플 브루어리의 김무경 양조사는 “해외의 심사위원들이 오히려 발효된 쌀 특유의 독특한 풍미를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쌀이 발효되며 나는 특유의 산미와 가벼운 바디감이 마치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을 낸다는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은 그래도 역시 막걸리다. 막걸리야말로 요즘 엠제트(MZ) 세대가 가장 사랑하는, ‘힙’한 술 아닌가? 막걸리를 젊고 핫한 술의 반열로 올려놓은 양조장 중 하나가 바로 서울 성수동에 있는 ‘한강주조’다.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요즘 가장 사람이 몰린다는 성수동에서 막걸리 양조장이라니. 얼핏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오래된 공장 지대와 세련된 카페 사이에 자리 잡은 한강주조는 그야말로 현시대의 서울과 가장 잘 맞아 떨어진다.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는 서울 강서구에서 재배한 ‘경복궁’쌀을 사용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왜 하필 서울에서 나는 쌀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지금 서울에서 서울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맛있는 햅쌀로 만드는 막걸리’를 표방하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지역에서 나는 쌀보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경복궁 쌀이지만, 이 쌀만을 고집한다. ‘다 같은 쌀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쌀을 사용하면 술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강주조의 뚝심이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외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음료 중 하나가 식혜다.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모습을 ‘벌레가 떠 있는 것 같다’고 거부감을 느끼는 외국인이 의외로 많단다. 이에 착안해 ‘쌀알 없는 식혜’를 만든 업체도 있다. 경기도 광주의 ‘세준푸드’는 쌀알을 모두 갈아 맑은 형태의 식혜를 만든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세준푸드 쪽에서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쌀알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을 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해외에도 우리 쌀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은 셈이다.

새로운 형태의 쌀 식품도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와인을 발효해서 만드는 발사믹 식초에서 착안한 구본일발효 ‘발사믹 펄 코어’는 구슬 형태의 식초 시리즈다. 이 가운데 ‘멥쌀 펄 식초’는 파주 멥쌀과 누룩, 정제수만을 넣어 구슬 모양으로 만들었다. 액상 형태로 된 기존의 식초와 달리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독특한 식감 때문에 한식뿐 아니라 양식 요리에 활용하기에도 좋다. ‘한식은 고루하고 단조롭다’는 편견을 깨 버린 신선한 예다.

발사믹 식초에서 착안한 구본일발효 ‘발사믹 펄 코어’ 경기농업기술원
발사믹 식초에서 착안한 구본일발효 ‘발사믹 펄 코어’ 경기농업기술원

고유 쌀 품종 속속 개발

우리만의 쌀 품종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고시히카리나 아키바리(추청)과 같은 해외의 품종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과거와 달리 토종 벼를 복원한 품종들도 속속 개발하는 추세다. 토종 벼 품종과 새로운 품종 개발에 유독 공을 들이고 있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찹쌀과 멥쌀의 중간 단계인 ‘가와지 1호’ 품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흔히 ‘반찰’이라고 불리는 가와지 1호는 고시히카리와 맛이 비슷하지만, 우리 품종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라고 이대형 농업연구사가 설명했다.

매일 밥상에서 보는 쌀이지만,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맛도 향도 풍미도 달라진다는 점이 쌀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밥맛없다’는 말 만큼 속상한 말이 없고, ‘밥 한 끼 하자’는 말처럼 한국인에게 반가운 말이 또 있나?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바로 쌀이다. 쌀의 변신은 지금부터 시작이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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