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건축가 이준형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무소장이 후암동에 차린 예약제 공유서재인 ‘후암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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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명 연예인이 방송에서 이곳이 ‘후리단길’이 될 거라고 했어요.” 빈자리가 거의 없던 후암동 카페 ‘우리다’에서 21일 이준형 소장이 말했다. 이준형은 건축가다. 후암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다. 이야기를 나눈 카페도 이준형의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 놓인 후암연립 안내서에 쓰인 말에 따르면 2016년 ‘시간의 가치를 머금은 후암동이 좋아 자리 잡고’ 지낸 지 이제 6년째다. 사무실도 후암동에, 집도 후암동에 있다. 그동안 후리단길은 생기지 않았고 이준형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동네 건축가 이준형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무소장이 후암동에 차린 예약제 공유서재인 ‘후암서재’.
카페 우리다는 21세기의 동네 건축가가 진행하는 일군의 실험이다. 실험 주제는 도시와 마을이다. 이준형은 후암동에 회사를 차리고 후암동 주택가에 공유주방(후암주방), 공유서재(후암서재), 영화감상실(후암거실) 등을 차례로 만들었다. 그 결과 2022년 10월 현재 ‘후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유 시설만 8개. 그러나 이준형은 초연했다. “그때는 제가 원룸에 살아서 ‘공유 공간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사업이) 유지될 만큼의 성적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금요일 오후에 카페를 가득 채운 손님들을 보니 그의 시도는 성공한 것 같았다.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 여성 3명은 “후암동에 놀러오고 싶어서 찾아서 왔다”고 했다.
전국의 온갖 길이 ‘~리단길’이 되어 멋쟁이 가게가 들어오고 땅값이 올라 원주민이 떠나고 동네가 표백된 뒤 인류학적으로 분류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후암동은 왜 그리 되지 않았을까. “이곳이 재개발 지구라 그런 것 같아요.” 이준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건물 용도변경은 가능하나 신축은 불가능하다. 재개발이 동네의 한시적 평화를 만들었으니 재개발의 역설이다. 동네 부동산 전단에서도 재개발의 기운이 읽혔다. 매매 매물이 적고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크다. 집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팔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유는 몰라도. 이준형은 그 사이에서 그저 동네 건축가의 일을 한다. 도시재생을 고심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일요일에는 카페에서 직접 커피를 내린다.
후암연립에서 남산 쪽으로 뻗은 오르막길을 걷는다. 요즘 보기 힘든 가파른 계단이 많다. 보통 서울의 가파른 계단은 일제강점기의 산물이다. 계단 끝에 참배를 위한 신사가 마련된 경우가 많았다. 후암동과 용산2가동을 잇는 108계단 또한 일본군 전몰자를 기렸던 신사로 이어지던 계단이다. 후암동에는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인 적산가옥도 많이 남아 있다. 특정 건축물을 넘어 이 동네에 뻗어 있는 길의 레이아웃 자체가 시대의 유산이다. 그 시대를 느끼며 오르다 보면 ‘엠엠케이’ 전시장(쇼룸)이 보인다. 오늘날 후암동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그 캐릭터란 한남동의 배후지대이자 서울의 물리적 중심부다.
엠엠케이는 ‘뮤지움 오브 모던 키친’(현대 주방 박물관)의 약자다. 실제 박물관은 아니고 맞춤 주방가구 브랜드의 이름이나, 당장 주방을 맞출 생각이 없어도 볕 좋은 날, 한번쯤 이곳에 와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엠엠케이는 고가와 저가로 양분된 맞춤 가구 시장에서 대안을 제시하려고 만들었다. 실제 가격과 만듦새 모두 ‘조금 비쌀 수도 있지만, 터무니없지는 않은’ 정도로 설정됐다. 브랜드 전시장의 관점에서는 위치도 캐릭터다. 엠엠케이는 스스로의 캐릭터와 잘 맞는 장소를 고민하다 여타 주방 브랜드가 고르지 않는 후암동을 골랐다. 후암동의 캐릭터도 그렇다. 고급 주택과 일반 빌라가 한 동네에 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엠엠케이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알음알음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별다른 소문 없이도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 찾아오기도 한다고 엠엠케이 브랜드 매니저 허지연이 말했다. 부산에서 평생 지내다 서울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허 매니저에게도 후암동은 만족스러운 곳인 듯했다. “서울은 시간이 빨리 가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후암동은 시간이 조금 천천히 가는 것 같아요. 여기 앞에만 서 있어도 사계절이 지나는 게 다 보이고요.” 한창 단풍철이었다. 사람들이 남산공원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힐튼 호텔이 있다. 1983년 문을 연 뒤 수차례 이름을 바꾸고 리뉴얼을 거친 뒤 2019년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2022년 12월31일 영업이 종료된다. 힐튼 호텔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은 해당 부지의 호텔을 허물고 2027년까지 오피스와 호텔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한 한 직원은 “이제는 언론에 오르고 싶지 않다”고 점잖게 말했다. 이들은 ‘추억은 영원히 남는다’는 표어와 함께 남산에서 보낸 40년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나 밀레니엄 힐튼 호텔은 사라지기 전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특히 지금. 지난 40주년의 면면을 모은 전시가 로비 한켠에서 열리고 있다. 간략한 역사와 당시 객실 비품, 스태프의 의상도 볼 수 있다. 해마다 연말의 상징이었던 힐튼의 기차 장식도 건재하다. 아울러 밀레니엄 힐튼은 당시 한국 토목과 건축 기술의 정점에 있던 건축물 중 하나다. 이곳을 설계한 재미 건축가 김종성은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 사무실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미스의 전성기를 지켜보았다. 그는 2018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 호텔을 두고 미국에서 진행한 건물의 시공 완성도와 비교해도 98% 정도 따라왔다고 평했다.
후암동과 비슷한 분위기의 맞춤 주방 가구 브랜드 엠엠케이 쇼룸.
역사도 부동산도 지금 그것을 점유한 사람의 것이다. 후암동은 누군가가 독점하기엔 너무 귀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암동을 계속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암동과 남산 곳곳에 조선의 한양도성 유적과 일제강점기의 경성신사 터 등 역사건축 유물이 남아 있다. 산업시대의 산물인 힐튼 호텔도 과거가 되어 흔적만 남을 것이다. 한성부터 경성까지, 경성부터 오늘날의 서울까지, 후암동의 시간이 지나며 남은 건 보통 사람들이다. 이준형 소장처럼 자리를 지키며 커피를 내리고 동네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 후암동의 매력을 찾아낸 젊은 사람들. 이곳에서 똑같은 하루를 몇대째 사는 사람들.
실제로 후암동을 걷는 내내 생활의 소리가 들려왔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 일요일에 들리는 노래 연습 소리, 산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층층이 쌓인 역사 사이로 보통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글·사진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