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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툭, 골! 하얗게 불태운 그날 우린 더 끈끈해졌다

등록 2022-10-29 09:00수정 2022-10-29 09:53

생애 첫 대회서 겪은 승부의 세계
승패 넘어선 완전한 소속감과 성취
풋살 인생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
첫 대회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팀 스피릿’으로 하나의 소속감을 갖는 건 놀라운 느낌이었다.
첫 대회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팀 스피릿’으로 하나의 소속감을 갖는 건 놀라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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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고장 났다.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초음파로 퉁퉁 부은 내 무릎을 확인하던 의사 선생님은 “이 나이에 이 정도로 물이 차는 건 흔치 않은데…”하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일주일에 네 번 공을 찬다는 내 답변에 금세 수긍했다.

진료를 본 후 물리치료를 받는데 옆 칸 환자와 선생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취미로 트레일 러닝을 한다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무릎 수술을 한 후 재활이 끝나자마자 다시 훈련을 시작했는데, 곧장 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참이었다. 선생님은 재활에 끝이 어디 있느냐며 환자를 나무랐다. 물리치료기의 전기 자극을 느끼며 훈련에 복귀할 생각만 하던 나는 뜨끔했다. 운동에 빠지면 다들 이렇게 무릎 하나쯤은 내놓게 되는 건가.

거칠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몇 주 째 레이저로 물을 말리고 뼈가 찌릿한 고통을 견디며 충격파 치료를 받고 있지만 통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고, 물이 차는 원인 또한 찾지 못했다. 그저 ‘과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원치 않는 휴식기를 갖고 있다. 월말에 잡혀있는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난다. 문제는 부상에 시달리는 팀원이 나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몇 달 사이 우리 팀에는 쇄골이 부러지고, 발목 인대를 다치거나, 만성적인 발목 염좌에 시달리는 등 부상 선수가 넘쳐난다. 새삼스레 풋살이 얼마나 거친 운동이었는지 깨닫는다.

풋살은 기록으로 경쟁하는 종목이 아니다. 이기거나 지는(물론 무승부도 있지만) 결말뿐인,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다. 운동장 위에서는 상대의 공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 상대 팀 골문을 흔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일까,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 물불 가리지 않는 전사가 된다.

지난여름, 풋살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생애 첫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홈구장에서 친선 경기만 해도 긴장감에 배를 부여잡는 사람인데, 대회라니! 그것도 팀 창단 이래 첫 대회 출전! 역시나 엄청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침부터 배가 아팠다. 대회 장소에 도착하니 축구장을 4등분 해 만들어 둔 풋살 경기장 위를 24개 팀 수십 명의 여자 풋살 동호회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차지한 여자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오늘 대회는 다했다 싶을 정도로 감동이 몰려왔다. 긴장감에 감동까지 더해져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 멋진 사람들도 경기장에서 만나는 순간, 결국 승부를 겨뤄야 하는 상대가 될 테니까.

삐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이제 진짜 실전이다. 오로지 승리를 향한 게임. 경기장 안에서의 속도감은 이전까지의 풋살 인생에서 경험한 것과 전혀 달랐다. 상대 팀은 훨씬 빠른 속도로 압박을 해오고, 그에 따라 공수 전환도 정말 빨랐다. 속도뿐 아니라 경합의 정도도 상상 이상이었는데 거칠게 몸을 부딪쳐오고, 넘어지고 구르는 상황이 계속됐다. 그 사이에서 믿을 건 우리 팀 동료들뿐. 간절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볼을 받은 동료의 움직임을 보며 예상되는 패스 경로를 따라 부리나케 달려간다. 찰나의 눈빛 교환 이후 내 앞으로 딱 맞춰 굴러오는 공, 또 다른 동료의 눈빛이 느껴진다. 가볍게 툭! 티키-타카-고올! “와!!!” 하늘을 찌를듯한 함성이 운동장을 가른다. 그렇게 우리가 훈련해왔던 패스 플레이를 해내고, 골로 연결되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기뻤다.

다섯 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내 모든 체력과 근육을 쥐어짜 경기에 임했다. ‘지금 내가 이 공을 놓치면 동료들 모두 다시 수비로 전환해야 한다.’ ‘내가 같이 뛰어주지 않으면 골키퍼인 동료가 홀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스칠 때마다 한 발짝 더 뛰려고 노력했다. 내가 더 뛰어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온전히 우리의 경기로 만들 수 있다는 마음에서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팀 동료 모두가 얼굴이 하얘지도록 뛰고 있었다.

대회가 치러진 경기장 전경
대회가 치러진 경기장 전경

운동장 위를 가득 채운 팀 스피릿

우리 팀은 조별 리그 2승 2무로 기세 좋게 본선에 올라갔는데, 본선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그만 탈락해 버렸다. 하지만 본선 첫 경기에서 탈락한 팀치고는 경기장을 떠나는 발걸음이 꽤 가벼웠다. 공격을 이어 갈 때면 경기장 밖에서 목이 터지라 외쳤던 동료들의 파이팅 소리, 필드 위에서는 목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포기할 수 없어 내달렸던 스프린트…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이었을까.

뒤풀이 자리에서 경기를 회고하며 한 팀원이 말했다. “오늘 우리가 한 플레이가 너무 좋았고 만족스러워요.”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동의했다. 그렇다. 1~2년 전만 해도 패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우리가 오늘 운동장 위에서 만들어낸 플레이들, 골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경기 중에 함께 만든 작은 성취 하나하나가 모두에게 기쁨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쯤 되니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팀으로서 생각하고 움직인 순간들이 이날을 만족감으로 가득 채우게 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우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도 한 팀이었고 친선 경기도 자주 가졌지만 대회에서 느낀 이 에너지는 정말이지 새로웠다. 경기장 안팎의 팀원들이 완전한 소속감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 ‘팀 스피릿’이란 끈이 우리 모두를 더 단단하게 하나로 이어준 듯했다. 이제 풋살팀 동료들의 존재는 운동장 밖에서도 나에게 큰 의지가 된다. 하는 일도, 일상의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풋살’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날 우리가 경기장 위에서 주고받은 뜨거운 에너지에 푹 빠져 몇 주는 더 행복했다. 오히려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배운 셈이다. 승패를 떠나 얻게 되는 이 찐득한 소속감과 희열. 앞으로도 팀 동료들이 주는 이 에너지가 내 풋살 인생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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