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유럽에서 우연히 배운 체스는 이후 여행길 친구 사귀는 수단이 됐다.
20년 전, 학생 시절. 터키였던 것 같다. 체코였던 것 같기도 하고. 강변에 테이블을 놓아둔 노천 카페테리아였는데, 설탕을 넣은 달콤한 홍차를 시키면, 잔이 빌 때마다 계속 채워주는 집이었다. 배낭여행 중이었던 나는 일행도 없었고, 딱히 정해진 스케줄도 없었다. 그 강변엔 아저씨들이 주르륵 앉아서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테이블 자체가 체스 보드였던 것 같다. 멍하니 앉아서 차 마시고, 책 보고 그렇게 앉았다가 어디를 갈까? 영화나 볼까? 심심함을 이길 방법을 찾던 중이었겠지. 그런데, 내 앞에 한 할아버지가 불쑥 앉으셨다. 그리고 점원은 당연한 듯 체스 기물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카페는 원래 그런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체스를 두고 싶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다른 플레이어가 와서 함께 두는 것. 말하자면 요즘의 게임방 같은 느낌으로 운영했던 게 아닐까? 다행히 그 할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셨다. 혼자 왔냐? 한국? 그 나라 잘 알지. 체스는 얼마나 두니? 아? 체스 둘 줄 모르니? 가르쳐줄까?
배낭여행 중 카페에서 배운 체스
그날, 그 할아버지와 오후 내내 체스를 두었다. 바둑을 수담이라고 하지 않나? 말없이 손으로 나누는 대화. 그 날의 내 기억도 그랬다. 모르는 사람과 앉아서 별 주제 없이 서너 시간을 떠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체스판을 앞에 두고, 홍차를 마시고, 웃기도 하고, 무얼 물어보기도 하고. 헤어질 때 다음날도 비슷한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이튿날 함께 체스를 두었다. 그렇게 체스를 배워 배낭여행을 하는 내내 작은 체스 보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심심한 사람들이어서, 심심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체스 한판 둘래?’ 하고 수작을 걸었다.
결혼하고, 두 아이가 태어났다. 큰 애가 7살쯤 되었을 때였나? 매일 놀아 달라고 하는데, 장난감 팽이를 굴리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블록을 쌓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나도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싶었다. “이현아, 아빠가 재미있는 놀이 가르쳐줄까?” 처음에는 인내가 필요했다. 나무로 만든 말들로 하는 건데,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만큼 재미있다는 걸 아이가 이해해 줄 리가 없으니까. 룰을 하나씩 가르쳐주고, 나도 기억나지 않는 건 책을 찾아보면서 알려줬다. 아이가 어려서 재미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좀 밀어붙여서 “여기서 네가 이렇게 안 움직였으면, 퀸이 안 죽었겠지?” “지금 생각하는 거 확실해?” “어~ 지금 나이트 위험하다” 긴장하게 하다가, 마지막에 아이가 이기게 만드는 패턴. “엄마! 아빠가 나한테 체스 졌어!” 큰 애는 아빠를 이겼다는데 꽤 만족하는 눈치였고, 나 역시도 블록 놀이보다 한참 나으니까.
경기 성남 야탑초등학교 체스 교실에서 아이들과 진지하게 한 판 승부에 임했다.
2년 전 넷플릭스에서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음악도 좋았고, 미술도 좋았고, 여주인공도 멋졌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건 영화 중간에 나오는 ‘스콜라 메이트’라는 특별한 오프닝 전법. 이 전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은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게 단 네 수만에 패하게 되는데, 이걸 보고 아들에게 써먹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현아 오랜만에 체스 한판 둘까?” “싫은데…” “금방 끝나. 아빠가 딱 네 번 만에 이길 테니까 한판만 두자” “아빠가 지면 아이스크림 사 줄 거야?” “콜!” 그리고 딱 4수. 벙 찐 아들의 표정과 희희낙락하는 철없는 아빠. 한동안 체스에 심드렁하던 아들은 그 후로 체스를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신기한 일. 내가 실수를 하는 것인지, 아들이 잘 두기 시작한 건지. 다섯 판 하면 한 판. 다섯 판 하면 두 판. 지려고 마음먹은 게 아닌데, 나는 간혹 졌다. 나의 당황이 ‘찐’으로 기뻤는지 아이는 나에게 “아빠, 체스 두자”하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고, 아이의 체스 실력은 늘어갔다. 일요일 아침에, 캠핑 가서, 엄마가 게임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때마다 아이는 자주 놀아 달라고 하고 아빠는 “그럼, 체스 둘까?” 하면서 주섬주섬 체스 보드를 찾는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체스를 뒀다.
그러다 얼마 전 아들이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체스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하필 야근하며 밤을 새운 다음 날이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이른 퇴근길에 아이의 체스반 수업을 참관했다. 구경하다가, 나도 한판 두고 싶어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한번 둬보라고 하신다. 내가 들어간 판은 둘이서 하던 체스가 아니라, 이현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4인 체스. 예종이, 예솔이, 이현이, 나. 배운 아이들이라 다른 건지, 밤을 새워서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실력이 없는 건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나는 살짝 구멍이었고, 같은 편인 예종이는 자주 한숨을 쉬었다. 예종이는 신중하게 두는 편이었고, 예솔이는 수읽기가 좋았고, 이현이는 아빠와 비슷하게 즉흥적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간이 다 돼서 결판을 내지는 못했다. “다음에 삼촌이랑 한 번 더 두자.”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주 옛날 생각이 났다.
형과 장기 두면 분하기만 했는데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우던 기억. 그 시절 아버지는 경남 하동군 금남면의 경찰 지서장이었고, 그때는 아이들을 방목하던 시절이라 형과 나는 아침 해만 뜨면 낚싯대 들고 바다로 갔다가, 산으로 갔다가, 어둑어둑 해가 지면 우리 집 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 놓고 형과 나는 장기를 배웠다. 같이 배운 장기였는데, 형은 곧잘 두었고, 나는 잘 두지 못했다. 형과 두기만 하면 지니까 나는 분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슬며시 나에게 한 판 더 두자고 말씀하시고는 많이 져주셨다. 대충 계산해보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아버지보다 살짝 더 나이가 많거나 비슷하거나 할 거다. 당시의 아버지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겠지. 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함께 놀면서 많이 져주고, 그러다 좀 지나면 이기고 싶은데도 지게 된다.
사실 아직은 이기려고 마음먹으면 이길 수 있겠는데, 내년만 돼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배운 아이들은 다르니까. 그래도 나에겐 아직 둘째도 있다. 한동안 우리집은 계속 체스를 두지 않을까? 어느 일요일 아침, 아니면 캠핑 가서, 아니면 엄마가 게임하지 말라고 할 때. 아직은 서로 대화가 통하고, 아직은 아이가 아빠랑 노는 걸 좋아하니까.
글·사진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