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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바다와 야자수, 성당… 브라질 문화 수도 “오! 린다”

등록 2022-12-31 10:00수정 2022-12-31 13:20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브라질 올린다

‘분홍 물결’ 중남미의 브라질
페르남부쿠주의 도시 올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빼어난 경관에 깊은 역사 품어
올린다의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 노동효 제공
올린다의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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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이었다. 바스쿠 다 가마가 개척한 항로를 따라 인도로 가던 포르투갈 함대가 아프리카 북서쪽 카보베르데 섬에 정박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함선 한 대가 보이지 않았다.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어디로 사라진 거지? 실종된 배를 찾아 나섰다가 북대서양 환류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어쩌다 보니 한 달간 항해 끝에 육지에 닿았다. 섬인지 대륙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스페인과 맺은 조약에 따라 서경 46도 안쪽이니 포르투갈 영토라고 주장하며 십자가를 세웠다. 그 땅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낯선 땅을 들락거리며 돈 될 거리를 찾았다. 수렵 채집하고 소소하게 농사짓는 아메리카 선주민을 만나기도 했다. 스페인이 한몫 잡았다는 아스텍이나 잉카 같은 왕국은 없었다. 약탈할만한 금은보화도 없고, 젠장 뭘 갖고 가지? 지천으로 널린 나무가 낯익었다. 벨벳 같은 고급 천을 붉게 염색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수입하는 비싼 나무와 흡사했다. 완전 대박인걸! 닥치는 대로 베어 날랐다. 선박이 유럽에 도착했다. 토막 낸 나무 단면이 빨개서 ‘파우 브라질’이라 불렀다. 브라질은 ‘잉걸불’을 뜻하는 ‘브라사’에서 왔고 파우는 ‘막대기’란 뜻이다. 나무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 선주민이 부르는 지역명을 따서 ‘페르남부쿠 나무’라고도 불렀다. 돈벌이가 되면서 유럽인이 몰려들었다. 페르남부쿠주에 브라질 최초의 도시, 올린다가 탄생하게 된 이유다.

올린다 역사지구의 골목길 풍경. 노동효 제공
올린다 역사지구의 골목길 풍경. 노동효 제공

베림바우 알린 세계적 음악가

해안선 따라 북상하던 나는 헤시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현재 올린다는 항구도시 헤시피의 위성마을이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해변으로 갔다. 십대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놀고 있었다. 동양인이 낯설었던지 다가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응, 한국인이야!” 고등학생이라는데 머리, 귀걸이, 손톱 등 개성이 또렷했다. 한국의 십대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선 몇 년 주기로 ‘블랙이 유행’이란 기사가 오르내리곤 했다. 유행이 아니라 흰색 아니면 검정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니었을까? 21세기에도 두발, 복장, 신발, 가방 등에서 원색을 금지하는 게 한국 중고등 학교생활 규정이다. 어쩌면 그 규정들이 미술, 철학, 과학, 경영의 방탄소년단(BTS)이 될 청소년의 잠재력을 막고 있는 게 아닐지.
음악가 나나 바스콘셀로스의 동상. 노동효 제공
음악가 나나 바스콘셀로스의 동상. 노동효 제공

“이 인물은 누구니?” 해변의 동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나 바스콘셀로스야. 이곳 출신 세계적인 음악가지. 베림바우를 세계에 알렸어.” 베림바우는 가장 오래된 타현악기다. 아프리카인들이 활시위를 화살로 두드리며 소리를 낸 데서 유래했으리라. 브라질 농장 탈출 노예들은 베림바우 반주에 맞춰 카포에이라를 연마했다. 학생들이 동상의 인물을 자랑했지만 내겐 낯선 이름이었다. 고개를 갸웃하자 다른 학생이 소리쳤다. “팻 메스니!” “〈오프 램프〉.” 스무 개의 그래미상을 거머쥔 팻 메스니에게 첫 그래미를 안긴 앨범을 함께 한 멤버였다. 전기 기타음을 감싸는 타악기 소리와 라틴 리듬이 나나 바스콘셀로스의 연주였구나! 그가 지구를 떠난 날, 페르남부쿠주는 사흘간 애도했고 그를 기려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시내버스로 갈아탄 지 20여분, 카르모 성당에 닿았다. 키 큰 야자나무가 늘어선 거리였다. 파스텔색으로 칠해진 골목 따라 언덕을 올랐다. 상벤투, 상페드로, 상프란시스쿠 등 성당과 수도원이 가득했다. 2006년 브라질의 ‘문화수도’로 선정되었던 올린다는 1982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었다. 처음 도시가 세워진 건 1535년, 무렵 올린다는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설탕 때문이었다.

유럽에선 재배하기 어려운 사탕수수가 토양과 기후가 맞았던지 무럭무럭 자랐다. 사탕수수즙을 가열하면 설탕을 생산할 수 있다. 설탕은 백색의 금이었다. 키 큰 사탕수수는 수액을 흠뻑 머금어 무겁다. 베고 옮기고 당일 압착하려면, 누구에게 일을 시키지? 선주민은 세균에 감염되어 죽거나 아마존으로 도망친 후였다. 아프리카에서 ‘인간’을 사들여와 하루 17시간 일을 시켰다. 노예는 7~8년이면 죽었다. ‘그럼 뭐 어때? 면직물 100m면 노예 오십 명을 살 수 있는데!’ 인신매매와 설탕으로 부를 쌓은 올린다는 ‘리스본보다 허영에 찬 도시’가 되었다.

머리부터 손끝까지 개성으로 충만한 브라질의 고등학생. 노동효 제공
머리부터 손끝까지 개성으로 충만한 브라질의 고등학생. 노동효 제공

남미에서 발견된 최초의 혜성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는 세 대성당과 미제리코르지아 교회를 잇는 길이다. 바다가 내려다뵈는 언덕은 해적 방어용 요새기도 했다. 광장이라기엔 길쭉한 공터 따라 공예가들이 작품을 팔았다. 상점을 기웃대는데 금속제 돔을 씌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도 몇 개 없고, 무슨 건물이지? 명패를 보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천문대? 의심스러웠지만 무료라니 일단 들어섰다. 층마다 전시 주제가 달랐다. 1층은 달, 2층은 화성, 3층은 우주. 오래전 프랑스 출신 천문학자가 이 지점에서 혜성을 발견했다. 올린다 혜성은 남미에서 발견된 최초의 혜성이 되었다. 알토다세 천문대가 세워진 건 그로부터 30년 지난 1890년이었다.
올린다 카니발에서 사용하는 인형을 모아둔 박물관. 노동효 제공
올린다 카니발에서 사용하는 인형을 모아둔 박물관. 노동효 제공

숙소를 찾아가는 길, 노사세뇨라 성당에선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화동들이 문 앞에서 깔깔대며 재롱을 부렸다. 호스텔은 성당 맞은편 건물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사진 전공의 레베카가 재활용 수공예품으로 꾸민 호스텔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나는 빈 병으로 만든 조명 아래서 레베카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곤 했다.

“도시명이 왜 올린다야?” “두 가지 설이 있어. 첫째는 포르투갈 정복자가 도시를 건설하기에 참 좋다는 의미로 “오, 린다(좋다)!”라고 해서래. 둘째는 중세유럽에서 잘 팔리던 소설이 있었어. 돈키호테의 애독서로도 등장했지. <갈리아의 아마디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 이름을 따서 도시명으로 했대.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으니 마음에 드는 거로 골라.”

올린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미제리코르지아 교회 앞이었다. 내려다뵈는 풍경이 바다와 야자수와 성당이 어우러져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는 마을이지만 하루 더, 하루만 더, 발길을 붙잡았다. 단골 음식점도 생겼다.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지만 ‘페이조아다’ 맛이 좋았다. 노예들이 부속 고기와 검은콩을 함께 삶아 먹던 스튜다. 지금은 브라질 국민 음식이 되었다.

하루는 식당 여주인이 텔레비전을 보며 탄식했다. 룰라 전 대통령에 관한 뇌물수사 소식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룰라 아니었으면 내 딸은 대학을 다닐 수 없었을 거야. 조카들은 밥을 굶었을 테고, 가난한 사람은 조상 대대로 가난했듯이 계속 가난할 거야. 정치인이 돈 받은 건 룰라 전부터 있었어. 노동당이 집권하는 게 싫어서 꼬투리를 잡으려는 거지!” 나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죄가 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하고 넌지시 되물었다. 그는 씩씩대며 답했다. “난 룰라가 결백하다고 믿어. 모루 판사는 악당의 칼잡이일 뿐이야. 저러다 정치인으로 나서겠지! 참, 룰라가 페르남부쿠주 출생이란 거 아니?”
콩과 고기를 넣고 끓인 브라질 국민 음식인 페이조아다. 노동효 제공
콩과 고기를 넣고 끓인 브라질 국민 음식인 페이조아다. 노동효 제공

그랬다. 룰라는 페르남부쿠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올린다에서 250㎞ 내륙의 오지였다. 아버지는 룰라가 갓난아이 때 도시로 나가 딴살림을 차렸다. 룰라 가족은 고향 떠나 도시 빈민이 되었다. 온 가족이 일했다. 룰라도 땅콩을 팔고 구두닦이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학업을 잇진 못했다. 공장에 나갔고 선반공으로 일하던 중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직장 동료와 결혼했다. 아내는 첫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죽었다. 정치에 관심 없던 룰라가 노조활동에 뛰어들었다.

올린다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과 항구도시 헤시페. 노동효 제공
올린다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과 항구도시 헤시페. 노동효 제공

새해 첫날 룰라 대통령 취임

룰라의 뛰어난 재능은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합의를 이끄는 소통 능력이었다. 스스로 “좌파도, 우파도 아니며, 단지 사람파다”고 여겼다. 국회의원 중 노동자 출신이 1%도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노동당을 창당했다. 삼수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빈농의 자식, 저학력, 노조위원장 출신, 좌파당. 보수주의자와 경제학자는 브라질 멸망의 날이 찾아온 것처럼 여겼다. 우려와 달리 브라질은 세계 8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룰라 재임 중 2천만이 빈민층에서 벗어났다. 3천만이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룰라는 말했다. “왜 부자들을 돕는 건 투자라고 하고, 빈자들을 돕는 건 비용이라고만 합니까?”

종종 올린다에서 먹던 페이조아다가 그립다. 식당 주인의 바람과 달리 룰라는 감옥에 갔다. 룰라 없는 대선에서 보우 소나루가 승리했고, 모루 판사는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2019년 모루 판사의 메시지가 유출되었다. 룰라를 뇌물혐의로 엮는 과정에서 검사와 공모한 게 드러났다. 룰라는 풀려났다. 연방대법관은 말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올바른 판사, 정당한 절차,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룰라는 3선 대통령에 당선했다. 현재의 중남미 정치지형을 ‘핑크 타이드’라고 부른다. 분홍 물결을 이끌 조타수가 돌아왔다.

2023년 1월 1일은 룰라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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