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가수들에게도 떨리는 첫 무대가 있었다. 스타 탄생의 순간이 고스란이 담긴 각종 가요제 실황 엘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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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엠비시(MBC·문화방송)가 첫선을 보인 대학가요제가 젊은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티비시(TBC·동양방송)는 그다음 해인 1978년 충남 태안 연포해수욕장에서 해변가요제를 개최했다. 엠비시는 1979년 경기도 청평유원지에서 강변가요제로 맞불을 놨다.
1970년대 후반부터 우후죽순 생겨난 가요제 관련 엘피(LP)와 시디(CD)음반은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 아이템이다. 배철수, 구창모, 김성호, 이치현, 심수봉, 이용, 손현희, 이선희, 권진원, 박미경, 이상은, 신해철, 전유나, 김동률, 김경호, 장윤정까지 전설이 된 가수의 풋풋한 첫 무대, 스타 탄생의 순간이 고스란이 담겼기 때문이다. 특히 초창기 가요제 실황을 편집한 상태 좋은 엘피(LP)는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최근 다시 찍어낸 각종 가요제 리마스터링 엘피도 4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서울 황학동, 회현동 지하상가, 동네 재활용센터를 전전하며 일찌감치 짠내 수집을 이어 온 나는 그 귀한 가요제 엘피를 20장, 그것도 대부분 1만원 안팎의 착한 가격에 손에 넣었다. 가장 애지중지하는 건 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78년 제1회 해변가요제 실황 음반과 84년 제5회, 86년 제6회 강변가요제 음반이다.
이수만 우문에 현답 내놓은 박선희
1977년 발매한 <제1회 엠비시 대학가요제 1집>(힛트레코드사)엔 그랑프리를 차지한 서울대 농과대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비롯해 금상 곡인 상명여대 박선희의 ‘하늘’, 동상 곡인 서울대 농대 조경학과 민경식 등 3명이 부른 ‘젊은 연인들’ 등이 실려있다. 당시 가요제 실황을 편집한 이 음반엔 케이팝 기획사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인 이수만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담겼다. 이수만은 명현숙과 공동 사회자로 나섰는데, 요즘 잣대로 보면 위험천만한 농담도 출연자와 주고받는다.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 조혜옥이 ‘다시 핀 목련꽃’을 부른 뒤 이수만은 “신상명세서를 보니 취미가 음악감상, 운동은 배구, 수영, 스케이팅인데 수영과 스케이팅은 여성 미용이나 뭡니까…. 각선미, 각선미에 굉장히 좋다는 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금상을 받은 ‘하늘’을 부른 상명여대 체육교육학과 박선희에게 사회자 명현숙은 “여자분이 어떻게 작곡을 하셨어요?”라고 묻고, 이수만은 “전혀 운동 못 하는 남자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도 한다. 박선희는 “건강하면 운동을 잘하든 못 하든 문제가 없어요.…. 이수만씨 눈이 얼마나 작은지 보려고 출전했어요”라고 ‘현명한’ 대답을 한다. 이에 이수만은 “만약 등수에 들면 심사위원들 전부 못 나오게 하겠다.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대목까지 생생하게 담겨 엘피를 듣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
<84 MBC 강변가요제>(지구레코드) 엘피엔 대상 곡인 이선희의 ‘J에게’가 담겼다. 모두 이선희 노래로 알고 있지만 당시 인천전문대 환경관리과 1학년인 이선희가 같은 대학 기계과 2학년인 임성균과 혼성 듀엣 4막5장을 결성해 출전했다. 이 음반엔 ‘사랑이 저만치 가네’로 유명한 김종찬이 ‘환상’을 불렀고, 유명 배우가 된 한석규가 동국대 연극영화과 2학년 동기들과 4인조 중창단 덧마루를 결성해 장려상을 받은 ‘길 잃은 친구에게’라는 노래도 담겨있다.
1979년 경기도 청평유원지에서 시작해 2001년 대학가요제와 통폐합할 때 가지 22년간 명맥을 이어온 강변가요제 음반 가운데 최고의 순간을 담은 엘피는 <85 MBC 강변가요제>(한국음반)일 것이다. 이 음반엔 대상을 받은 건국대 혼성 듀엣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를 비롯해 동의대 어우러기의 ‘밤에 피는 장미’(금상), 외국어대 권진원의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은상), 서울예전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장려상) 등이 수록됐다. 한장에 전설이 된 가수의 데뷔곡이 무더기로 담긴 것이다.
스타 양산 해변가요제, 단 1회 단명
대학가요제에 맞서 티비시 라디오가 1978년 연포 해변에서 연 <제1회 해변가요제> 실황 음반(유니버어살레코오드사)은 가요제 엘피 가운데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본선 진출 12곡 모두 지금까지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불후의 명곡이고, 출연 가수 대부분 대중음악사나 연예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한양대 왕영은 정금화 등 혼성 4인조 징검다리가 부른 ‘여름’이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차트를 역주행한다.
왕영은은 엠비시 어린이 프로 <뽀뽀뽀>의 제1대 ‘뽀미 언니’로 발탁돼 원조 초통령에 등극했다. 홍익대 구창모 등 6인조 블랙 테트라의 ‘구름과 나’가 우수상, 배철수 등 항공대 4인조 런웨이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이현식 이용균 남성 듀엣 벗님들의 ‘그 바닷가’, 5인조 그룹사운드 페블스의 ‘그대로 그렇게’ 등이 인기상을 받았다. 중앙대 김성호도 블루 드래곤 멤버로 ‘내 단 하나의 소원’이라는 창작곡을 불러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 가요제에서 구창모의 가창력에 매료된 배철수는 음악을 접고 공부하러 설악산 암자로 들어간 구창모를 찾아가 자신이 만든 그룹사운드 송골매 보컬을 맡아 달라고 설득한다. 그렇게 송골매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용균은 이후 본명을 내세운 이치현과 벗님들로 활동을 이어갔고, 김성호는 ‘김성호의 회상’ ‘웃는 여잔 다 이뻐’ 등의 명곡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 우뚝 선다. 친누나 주선숙과 ‘속삭여 주세요’를 부른 주병진은 코미디언 겸 사회자로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해변가요제는 단 1회로 끝났다. 동양방송이 1979년 경연 장소를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기고 젊은이의 가요제로 명칭을 변경했고, 1980년엔 장충체육관에서 제3회 대회를 치렀다. 그나마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조치로 동양방송이 케이비에스(KBS·한국방송)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1년 2월25일 제 5공화국을 출범한 전두환은 여의도에서 관제 축제 ‘국풍 81’을 개최하면서 이틀에 걸쳐 ‘국풍 81 젊은이의 가요제’를 열었는 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바람 이려오’로 금상을 받은 서울예전 이용을 발굴한 게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였다. 1981년 7월 발매된 <국풍 81 젊은이 가요제 1집>(지구레코드)엔 이용의 노래와 함께 송골매가 부른 ‘바람’이 건전가요로 실려있다. 김태곤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피 끓는 가슴끼리/민족의 혼을 부어/젊은이의 축제/바람 불어라’는 노랫말로 확인되듯 국풍 81을 미화한 주제곡이다. 하지만 배철수와 구창모의 가창력과 연주 실력이 돋보이는 록 사운드로 이후 문화공보부 등록 때 음반마다 의무적으로 끼워 넣은 <시장에 가면> <어허야 둥기둥기>류의 건전가요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음악성을 엿볼 수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