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브랜드 원형들의 핑크 딜 케이크.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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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라이프스타일과 식음료 브랜드의 격전지이자 ‘팝업의 성지’다.
지난 5일, 더현대 서울 지하 1층 대행사장에서 개그맨 김경욱의 ‘부캐’(부캐릭터)인 ‘다나카’의 팝업스토어 ‘다나카 프렌즈’와 트로트 가수 영탁(박영탁)의 팝업스토어 ‘탁스 스튜디오’가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폭넓은 세대의 인파로 들끓을 때, 5층의 사운드포레스트에서는 에스파의 첫 단독 콘서트 기념 팝업스토어인 ‘컴 투 마이 일루전’이 열렸다. 팝업스토어 입장을 위한 행렬로 ‘오픈런’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곳에선 서울 청담동과 한남동, 홍대와 을지로, 성수동의 브랜드 생태계 역시 한눈에 보인다. 동시대 세계관과 취향, 놀거리가 집약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 사이에 서울의 하위문화가 지닌 감각으로 무장한 작은 디저트 팝업 역시 호황이었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기반의 디저트 바 ‘원형들’의 팝업스토어다.
서울 성수동 누데이크 매장 내부. 누데이크 제공
원형들은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바 ‘섬광’이 만든 또 다른 브랜드다. 원형들은 유화처럼 거친 질감의 크림을 흘러내릴 듯 바르고 그 위에 버섯을 기둥째 꽂는 등 일반적인 ‘제과 미감’과 무관한 케이크를 선보인다. 이국적인 고수 향에 압도되는 고수 크림 케이크는 제누아즈 시트에 고수 크림과 자몽 크림을 더해 상큼하고 달달하다. 작은 케이크의 꼭대기에는 밭에서 갓 수확한 작물인 양 고수를 한 줌 쥐어 푹 꽂았다. 핑크색 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의 한가운데 허브 딜을 꽂은 핑크 딜 케이크는 고수 크림 케이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는 ‘투 톱’이다. 역시 반전의 묘미를 노린 핑크 딜 케이크의 속은 진득한 초코 크림으로 채워졌다. 박용준 원형들 대표는 말했다. “용기를 내서 진짜 하고 싶은 것들, 무모한 시도를 해보자며 시작한 디저트 브랜드예요. 원형들은 매월 새로운 케이크를 선보입니다.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는 케이크일지라도 새로운 메뉴를 선보여야 하는 시기가 오면 판매를 멈춥니다. 디저트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원형들에 가면 언제든 특정 디저트를 만날 수 있게 하기보다, 해당 시기가 지나면 다신 만날 수 없는 케이크를 팔고 싶었어요.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을 계속해서 선사하는 게 목표죠.”
원형들이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서 팝업을 여는 동안 해당 층의 중앙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원형들이 제작한 거대한 분홍 크림 케이크 모형이 설치됐다. 귀엽고 몽글몽글한 크림 덩어리로 표현된 케이크 모형에는 과일과 파스텔톤의 꽃잎, 반짝거리는 가루가 불규칙적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원형들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어요. 귀엽고 말랑말랑하고 이상한 조형물이죠. 원형들을 계획할 때부터 디저트를 패션의 영역에서 펼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팝업스토어에서는 패션 영역의 소재로 디저트를 표현해보고자 패브릭 오브제 등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표는 원형들의 분위기로 워크웨어 등 아예 다른 카테고리의 브랜드로 확장해볼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브랜드예요. 많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기보다, 우리와 같은 눈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박 대표가 설명하듯 원형들은 새로운 감각과 재밌는 작업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그러니 원형들의 주축이 돼 기획을 담당한 이들 가운데 제과 전공자가 전무하단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디저트다운 방식과 틀에서 벗어난 행보를 원했기 때문이다. 경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미학적 관점이 맞거나, 하위문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원형들을 이뤘다. “언젠가 각자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마케터가 되고 싶은 친구들, 한 회사에 종속되기만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스리디(3D) 작업자와 매장 기획 및 구성 전문가(비주얼머천다이저·VMD) 등 대부분의 인력은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마다 헤쳐 모이며 일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번쩍’ 하고 모였다가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다양한 주체들과 흥미로운 협업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독특한 질감이 눈에 띄는 원형들의 케이크 장식.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룹 뉴진스와 누데이크가 협업해 출시한 ‘누진스 케이크’. 누데이크 제공
양식의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과일 따위의 음식에서 비롯된 디저트의 역사는 서울에서 그 장르가 미묘하게 변해왔다. 흔히 스시 식당에서 통용되어온 ‘오마카세’(맡긴다는 뜻의 일본어. 손님이 셰프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는 것) 방식을 접목시킨 ‘디저트 오마카세’부터 가벼운 술을 즐길 수 있는 가스트로 펍과 유사한 개념으로 디저트 식도락가와 술 애호가를 모두 만족시키는 디저트 바까지. 디저트가 수반하는 미감과 미각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로잡으며 진화했다.
서울 디저트의 ‘신박한’ 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인 하니의 생일에 맞춰,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그의 생일 케이크 이미지가 업로드됐다. 나비, 하트, 장미 모양의 초콜릿 장식으로 뉴진스가 표방하는 감성을 제대로 살린 케이크를 하니에게 선물한 것. 그 뒤 뉴진스는 싱글 앨범 <오엠지>(OMG) 발매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누데이크와 협업했고, 누데이크는 지난 연말연시를 뉴진스와 손잡고 문을 연 팝업스토어 ‘OMG! NU+JEANS’(오엠지 누+진스)라는 거대한 이벤트로 장식했다. 팝업스토어에선 2층 건물 높이의 초대형 뉴진스 토끼 케이크를 세웠고, 이는 ‘인증샷’ 스폿으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다섯 명의 뉴진스 멤버 수에 맞춰 다섯 가지 컬러와 맛으로 출시한 작은 토끼 케이크 ‘누진스 케이크’(NU+JEANS CAKE)와 함께 뉴진스 멤버들이 담긴 토퍼 세트, 레터 파우치, 가랜드(갈런드: 화환·장식줄) 등의 다양한 굿즈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디저트 브랜드가 그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동시대 아이돌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며 커스텀 생일케이크를 보내고, 시즌에 따라 전개하는 독특한 비주얼과 캠페인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으는 시대. 세상에 없던 ‘초현실 디저트’를 판매하며 생소한 비주얼 마케팅으로 정체성을 구축한 누데이크부터 을지로의 작은 디저트 바에서 시작해 그들만의 작은 세계관을 구축하며 색다른 방식으로 확장 중인 원형들에 이르기까지, 지금 서울의 디저트 생태계는 에프앤비(F&B)라는 장르의 경계를 버젓이 넘나든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생경한 장면이 달콤한 디저트 주위로 무한히 펼쳐진다. 뭔가 다른 맛을 찾는 세대의 열광적인 반응이 디저트 신에 집중되는 것은 그래서다.
더현대 서울에서 3월 한달간만 판매하는 원형들의 푸른색 딜 케이크. 원형들 제공
디저트를 향한 식욕은 정서의 문제에 가깝다. 누군가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도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외치며 디저트 카페로 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은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보면 당장 잘 구운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물고 싶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멘들스 케이크’를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케이크 부티크를 찾아 헤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카모메 식당>과 영화 <마틸다>를 보고 나서 갓 구운 시나몬 롤을 판매하는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거나 진득하다 못해 꾸덕한 초코 퍼지 케이크를 손과 얼굴에 묻거나 말거나 먹고 싶었다면 영화 속 디저트에 얽힌 이야기와 미장센에 매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서 펼쳐지는 디저트의 세계는, 디저트가 선사하는 정서적 휴식 한 조각을 찾아온 이들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리고 디저트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뜨겁다. 누데이크 도산점이 자리한 하우스 도산은 ‘테이스트 오브 메디테이션’(Taste of Meditation: 명상의 맛)이란 주제로 디저트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바 있다. 미디어 영상에 디저트를 먹는 사람들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맛의 경험을 미각과 시각 등 총체적인 감각 경험으로 확장시켰다. 명상부터 메타버스, 미디어 아트와 디지털 콘텐츠 등 뜨거운 트렌드와 문화 현상, 미적 경험의 ‘믹스매치’가 지금 서울 디저트 신의 재료가 되고 있다.
서울 성수동 텅플래닛 매장 내부. 텅플래닛 제공
지금 핫한 서울의 디저트 플레이스
바이칼리아
문을 열자마자 ‘핫플’로 등극한 쇼룸형 디저트 카페. 2개 층으로 이루어진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피라미드 모형 2개가 반긴다. 새빨간 벽과 태양 모양의 로고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의 모티프는 이집트 신화다. 각각의 디저트를 작품처럼 전시해둔 이곳의 대표 메뉴는 피라미드 무스 케이크. 사막 위 피라미드 주변의 모래까지 표현한 케이크는 초코, 로투스 치즈, 망고 치즈의 세가지 맛 무스 케이크 중 선택해서 주문할 수 있다. 1층 실내와 테라스에는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다.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68길 10, 인스타그램
@baikaleea_official
로얄멜팅클럽
일산의 작은 디저트 공방으로 시작해 지난해 7월 서울 한남동에 복합문화공간 ‘로얄멜팅클럽’으로 확장된 디저트 브랜드. 지난해부터 유수의 백화점에서 연이어 다채로운 콘셉트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한남동의 로얄멜팅클럽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눈이 시릴 만큼 채도 높은 색으로 구현한 디자인 케이크와 함께 동화 속 판타지를 실현한 공간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전시와 파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사랑스럽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등장과 동시에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로 인기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60, 인스타그램
@royalmeltingclub
감도
담백한 고급스러움을 표방하는 파인 디저트 다이닝. 질소 아이스크림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던 조수훈 대표의 브랜드다. 우주를 부유하는 운석을 그린 듯한 이미지와 극도로 담백한 선과 면, 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맛보게 될 디저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조약돌 바질 들판. 조약돌을 닮은 머랭 쿠키와 바질 아이스크림, 바삭한 감자튀김과 풍미 있는 그라나파다노 치즈 스틱을 함께 내는 구운 감자 크렘 브륄레, 유자 아이스크림 구슬로 만든 유자 밀푀유 등 신선한 메뉴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83-21 디타워 서울포레스트 지하 1층 B115, 인스타그램
@gamdo.official
텅플래닛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 혓바닥 콘셉트를 내세운 ‘키치’한 디저트 브랜드다. 서울의 성수와 신사점을 비롯해 전국에 4개의 지점을 운영한다. 강렬한 색과 네온사인, 곡선형 위주의 가구를 배치해 자유롭고 위트 넘치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게 하면서, 슬로건인 ‘메이크 유어 에피소드’(Make Your Episode)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팝업스토어를 통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이들만의 정체성을 전해왔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혓바닥 모양의 ‘텅 쿠키’, 유머러스한 표정을 구현한 ‘이모지 케이크’ 등 기존의 디저트 문법을 파괴한 메뉴가 스테디셀러다. 인스타그램
@tongue_cafe
이경진 <엘르 데코>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