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봄날의 따스함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때다. 아침, 저녁으로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진 않았지만, 한낮에는 그간의 무거웠던 외투를 벗어 던지고 라이딩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작은 방 한 켠에서 겨우내 움츠렸던 자전거를 꺼내 차에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곳, 섬진강으로 향했다. 이번엔 ‘브롬핑’이다.
브롬핑은 접이식 자전거의 한 종류인 브롬톤과 캠핑의 합성어로 브롬톤에 장비를 싣고 떠나는 캠핑을 말한다. 브롬톤은 펼치면 앞뒤로 제법 길쭉한 미니벨로 자전거지만, 접으면 원래 크기의 3분의1 정도로 작아져서 휴대성이 좋다. 마니아들은 여기에 텐트, 침낭, 매트, 간단한 식기류 등을 배낭에 채워 전국 각지로 떠나는 자전거 캠핑을 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동호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자전거 캠핑에서 발전한 브롬핑은 2015년 전후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예쁘고 귀여운데 기동성까지 갖춘 브롬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캠핑과 접목한 것. 경기 여주 강천섬, 충북 충주 비내섬, 한강 자전거길, 남한강 자전거길, 섬진강 자전거길 등 전국 방방곡곡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는 곳들이 주로 브롬핑 성지가 되었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오롯이 동력만을 사용하는 자전거 캠핑을 추구하지만, 나는 주로 차박 브롬핑을 즐긴다. 느린 여행의 대명사인 자전거와 드라이브의 낭만에 더해 차박의 안락함까지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경기 여주 이포보, 가평 자라섬 등으로 자전거를 싣고 다니며 캠핑을 즐기곤 했다.
섬진강 상류 지점인 전남 곡성에는 강변을 따라 예쁘게 조성된 곡성 자전거길이 있다. 새봄을 시작하는 캠핑으로 이 자전거길을 따로 달리고, 하룻밤 묵은 뒤 섬진강 하류 쪽으로 이동해 구례 산수유 마을과 광양 매화마을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북 임실군 섬진강댐에서 시작해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전남 광양시 배알도 수변공원까지 174㎞로 이어진다. 상류의 곡성 기차마을을 비롯해 구례구역, 산수유마을, 하동 화개장터, 평사리공원, 광양 매화마을까지 봄날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차례로 들어앉았다.
하룻밤 묵어갈 곡성 압록 유원지에 주차하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압록유원지 바로 앞 예성교를 건너면 곧장 섬진강 자전거길로 진입한다. 섬진강을 따라 1시간 남짓 달리면 침실습지에 닿는다. 섬진강의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침실습지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섬진강과 곡성 시내에서 흘러든 곡성천, 고달천, 오곡천 등이 만나 형성된 자연형 하천 습지로 그 규모만도 약 200만㎡. 수달, 삵, 남생이, 흰꼬리수리와 같은 멸종 위기 동물부터 650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다. 여울지는 강물과 물에 비친 산 그림자, 소소한 들꽃이 아름다운 이곳은 일출도 멋지지만, 특히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물안개가 인상적이다. 침실목교, 퐁퐁다리, 생태 관찰 데크, 전망대까지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접이식 자전거 브롬톤에 캠핑 장비를 실어 떠나는 브롬핑.
내친김에 곡성섬진강기차마을도 들렀다. 침실습지에서 약 2㎞ 거리로 가깝고 볼거리로 많으니 함께 둘러 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미공원, 유리온실,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로즈카카오체험관,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미니기차 등을 가볍게 구경한다. 도로변에 주차 공간이나 갓길이 없어 차량으로 둘러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런 곳일수록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하기엔 자전거 여행이 제격이랄까. 자전거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한옥카페 두가헌에 들렀다. 섬진강 자전거길 길목에 있는 데다 정원이 너무 예쁜 곳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따끈한 생강차를 마시며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았다. 몸도 마음도 말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 곡성에서의 반나절이 알차게 채워졌다.
압록유원지는 취사와 텐트 설치가 가능한 무료 차박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도 차박과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도 간단히 차박 세팅을 마쳤다. 이 정도 날씨에는 침낭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따끈한 바닥의 느낌이 좋아 전기 매트도 깔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식사를 끝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식당에서 포장해 온 섬진강 명물 다슬기 해장국은 차박 한 끼 저녁 식사로 그만이었다. 알차게 보낸 하루에 노곤해진 몸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자 순식간에 숙면으로 빠져들었다.
구례 산수유마을은 해마다 3월이면 산수유꽃축제로 먼저 봄을 알린다. 올해는 3월11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되는데, 이 기간 산수유꽃 역시 절정일 것으로 예상한다. 축제장에서 가까운 구산공원, 산수유사랑공원으로 시작해 반곡마을과 현천마을까지 곳곳에 샛노란 산수유꽃 물결이 일렁인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산수유 군락지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걸어서 둘러보려면 특정 마을을 선택하여 한 곳만 집중하여 둘러보는 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기동성 좋은 자전거 여행이라면 마을마다 개성이 다른 모습을 만나기에 유리하다. 광양 매화마을은 봄철 섬진강 여행의 꽃이다. 벚꽃이 피기 전 반짝 만개하는 매화는 앙상한 겨울나무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방문객의 눈에 한껏 즐거움을 선물한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축제가 진행되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으나, 3월10일부터 열흘간 여러 가지 콘텐츠로 대대적인 축제의 장이 열린다. 무엇보다 매화마을 일원에 야간경관조명이 있어 낭만적인 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알아두면 좋아요
-자전거 라이딩 시, 안전을 위해 헬멧, 고글, 전조등, 후미등은 기본이다. 주행 중 고장을 대비해 휴대용 펌프와 자전거 수리 키트도 꼭 준비한다.
-압록유원지에서 섬진강기차마을까지는 약 22㎞, 쉼 없이 라이딩하면 약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자전거 캠핑은 최소한의 짐을 꾸리는 게 핵심이다. 짐의 무게는 10㎏ 내외가 적당하다.
-캠핑 혹은 차박 시 자연공원, 하천, 해수욕장은 야영 및 취사 행위가 허가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봄철에는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화기 사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꺼진 담배꽁초, 전열기, 스토브도 다시 보자.
-텐트 안, 차 안 등 밀폐된 공간에서 휴대용 가스스토브, 가스등, 가스 난방기 사용 시 일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 사고의 위험성이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가스용품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자.
홍유진 여행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시크릿 후쿠오카>, <무작정 따라하기 오사카. 교토>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