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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내추럴 와인에 마음의 문이 열리다 [ESC]

등록 2023-04-22 09:00수정 2023-04-22 17:27

권은중의 생활와인 페르랑 팡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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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핫하다’는 내추럴 와인을 즐겨 마시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추럴 와인이란 화학비료, 농약은 물론 현대식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기른 포도로 만든 술이다. 인공배양 효모 등 인공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심지어 태양이 아니라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포도를 키운다.

내가 이런 와인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와이너리는 포도에 물도, 화학비료도 안준다. 이를 어기면 원산지보호인증(DOC)을 받지 못한다. 유기농 재배 와이너리도 흔하다. 괴물처럼 생긴 현대식 농기계 대신 손으로 포도를 딴다. 일부 와이너리는 이미 월력에 따라 포도를 키운다. “왜 비싼 돈을 주고 아마추어 와인을 마시냐”는 게 이탈리아 와인 친구들의 주장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내추럴 와인을 몇차례 마셔보긴 했다.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필터링을 하지 않아 정제되지 않은 맛과 향기가 느껴졌다. 뫼르소처럼 쨍하게 명징한 와인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사실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많은 이들이 내추럴 와인을 선호했고 특히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와인 모임을 하면 여성들은 자신이 즐기는 내추럴 와인을 가져왔다. 여성들이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공의 손길을 줄인 건강함 때문이었다. 또 라벨이 기존 와인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예쁘고 창의적이라는 것도 이유였다. 이런 트렌드 탓에 서울의 와인바나 레스토랑 가운데 내추럴 와인만 파는 곳이 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에스엔에스(SNS)에 능한 여성 고객 취향을 겨냥한 것이다.

와인 모임을 자주 하다 보니 이런 곳을 가끔 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와인바는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와인바와 사뭇 달랐다. 인테리어도 안주도, 와인만큼 달랐다. 눅진한 라구 소스 라자냐에 모듬 치즈 같은 빤한 걸 내놓지 않았다.

얼마 전 내추럴 와인만을 파는 서울 중구 한 바에서 여러 병의 와인을 마셨다. 타파스처럼 적은 양의 안주를 내놓는 곳이라서 와인이 바뀔 때마다 계속 안주를 시켜야 했다. 그렇게 주문한 바질페스토를 올린 골뱅이. 특이한 조합이었지만 적절하게 삶긴 골뱅이와 바질페스토의 균형이 좋았다.

마침 나왔던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이너리 ‘라 페름므 데 셉트 륀’이 생산한 ‘페르랑 팡팡’과 잘 어울렸다. ‘팡팡’이란 이름처럼 따를 때 미세한 거품이 올라온다. 거품이 자연 발생하는 펫낫(Pet-Nat)이다. ‘7개 달의 농가’라는 뜻의 이 와이너리의 모든 라벨에는 달을 상징하는 로고가 그려있다. 월력을 따라 만든다는 의미다. 이곳에선 론 지역의 화이트 와인인 비오니에와 쉬라로 컬트 와인(소량 생산 고품질 와인)을 만든다.

이 와인을 주문한 건 내가 섬세한 비오니에 품종과 스파클링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비오니에의 상큼한 바탕에 내추럴 와인의 복합적인 향과 펫낫의 귀여운 거품이 올라왔다. 맵게만 먹는 골뱅이의 재해석도, 비오니에의 새로운 해석도 마음에 들었다. 장점보다 결점을 주로 느꼈던 내추럴 와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7개 달이 뜨는 농가’의 고집 덕에 그날 나는 내추럴 와인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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