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금속공업이 제작하는 손톱깎이 앞에 선 김정민 글로벌 비즈니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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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손톱깎이가 세계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때가 있었다. 로얄금속공업은 1950년대에 창업해 그 시대를 주름잡은 한국 3대 손톱깎이 회사 중 하나다. 시간이 흘러 한국 손톱깎이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로얄금속공업은 그 사이에서 고급형 손톱깎이 ‘혼’을 출시해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이걸 주도한 사람이 창업주의 2세 김정민 글로벌 비즈니스팀장이다. 단순한 가업 승계 이상의 의미가 있을 듯해 경기도 부천에 있는 로얄금속공업을 찾았다. 쇠 깎는 냄새 속에서 김 팀장을 만났다.
―어떻게 가업을 받게 되셨습니까?
“회사가 좀 어려웠다는 걸 군에서 제대하고 알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자수성가하신 혜택을 받고 살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소비자와 맞닿는 물건인 손톱깎이에서 매력도 느꼈습니다. 중소기업의 창업주들은 2세나 3세들이 뭔가를 밖에서 배워 와서 회사에 적용하는 걸 원하십니다. 국제통상 전공을 살려 해운회사에 취업해 수출 관련 업무와 회계 등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로얄금속공업의 규모와 생산성은 어떻습니까?
“직원은 45분쯤 계십니다. 사무직은 10분, 생산직이 35분 정도예요. 첨단 산업에 비하면 저희의 일은 자동화가 늦어요. 부가가치가 높으면 투자가 가능할 텐데, 손톱깎이가 부가가치가 높지는 않아요. 여전히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단순 업무에도 복잡성이 있어요. 손톱깎이 날을 연삭하는 기계는 자동이지만 그 기계에 손톱깎이를 하나씩 투입하는 건 사람입니다. 제품을 걸이에 걸어 도금액에 넣어야 하는 도금 공정에서도 손톱깎이를 일일이 걸어주는 일도 사람이 하고요.”
―손톱깎이가 브랜드에 좌우되는 상품이 아닐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브랜딩을 합니까?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영업 방식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가격 경쟁력으로는 이길 수 없었고 바이어들은 선택을 잘 바꾸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신제품을 만들어 브랜드로 알려지길 원했죠. 기존 손톱깎이가 작다고 생각해서 크게 만들었는데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어요. 아이 손톱을 깎는 돋보기 달린 제품은 가격 책정이 잘못돼서 시장에서 자리를 못 잡았고요. ‘우리의 한계치를 우리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게 안 팔려도 좋다. 우리가 이 정도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품질 손톱깎이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손톱이 잘 잘려야겠죠. 잘 잘린다는 건 날의 완성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보통 손톱깎이는 날 부분을 한번 연삭해요. 그렇게 날카롭지 않습니다. 손톱은 그래도 잘리니까요. 저희의 고급품 라인은 날 부분 연삭만 5회를 거칩니다. 날의 두께도 중요합니다. 날의 두께에 따라 잘릴 때 쓰는 힘이 달라요. 오래 써도 정이 들 만큼 튼튼한 내구성도 중요하겠죠.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저희의 고가 제품인 ‘혼’을 만들었습니다.”
―평소 만들던 제품과는 다를 텐데 어떻게 알렸습니까?
“크라우드 펀딩의 순기능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 아이디어 제품을 검증받기도 하고, 다양한 피드백도 받고, 양산 비용도 확보했으니까요. 크라우드 펀딩에서 5억원 분량의 제품이 판매됐어요. 우리의 최고 수준 제품을 만들어 제품 가치를 보여주자고 시작한 제품인데 상품성까지 인정받아 감격스러웠습니다.”
로얄금속공업의 보통 사양 손톱깎이(왼쪽)와 고급형 손톱깎이 ‘혼’(오른쪽).
―손톱깎이의 시장성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경쟁자가 많다는 점이 어렵고 누구나 쓰고 평생 쓰는 물건이라는 건 좋은 점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계속 부딪치죠.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가격대가 개당 2천원 정도입니다. 지금 ‘혼’ 손톱깎이의 소비자가격이 5만원대인데, 이 가격에 수익이 나지 않아요. 보통 손톱깎이는 한달에 최대 2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반면 혼 깎이는 1천개도 어려워요. 샌딩, 연삭, 접는 공정 등 모든 게 수작업이어서 그렇습니다. 손톱깎이가 저렴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저희가 수십년 동안 만들어 공정이 최적화돼서 그렇습니다. 혼 손톱깎이는 개발비를 감안하면 원가가 비정상정으로 높아져서 원가에 제품 개발비를 반영하지도 않았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산 고가 손톱깎이도 있습니다. 그 회사들과 경쟁하게 되겠네요.
“소비자들께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산 사야지’ 말고 ‘품질을 비교했을 때 한국산이 좋구나’라고 제품 자체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평생 저렴한 손톱깎이로 손톱을 잘 깎았습니다. 반면 고가 손톱깎이를 사는 저희 손님들은 삶의 작은 부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손톱을 깎을 때 그 느껴지는 내 신체의 작은 느낌, 예를 들어 소리, 손톱이 깎여 떨어질 때의 느낌과 모양, 깎이고 난 단면, 그 단면을 만졌을 때의 느낌까지요. 기존 손톱깎이들은 ‘잘 잘린다’까지만 신경을 썼습니다. 저희는 손톱을 깎일 때의 좋은 소리까지 신경 썼어요.”
―그런 건 실제 손톱으로 실험합니까?
“테스트용 플라스틱이 있지만 손톱만은 못하죠. 저는 테스트할 때 말고는 손톱을 안 잘라요. 손톱깎이 회사 사람의 손톱이 긴 이유입니다.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만 손톱을 잘라요. 평상시에는 손 보여드리기가 부끄러워서 손을 잘 숨기고 다닙니다. 손톱 깎는 게 아깝죠. 자를 때도 한 방에 자르는 게 아니라 두세 번씩 잘라봅니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저희의 포부나 미래 계획들을 소비자에게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누가 물어봐 주고 기사화가 되는 건 저희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기회인데, 바꿔 말하면 이러기 전에는 우리가 말씀드릴 수가 없죠. ‘혼’이라는 제품은 저희의 소명의식을 자극했습니다. 예전에는 손톱깎이가 그냥 일이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의 가치를 찾은 듯해요. 누군가에게는 이런 제품이 굉장히 필요했던 거예요. 단순히 비싼 제품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그분들께 만족을 드린다면 우리도 계속 힘을 낼 수 있겠죠. 인생은 유한하고 거기서 느낄 수 있는 만족도 유한하다면 작은 손톱깎이로라도 그 만족감을 더 크게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글·사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로 묶이는 업계 전반을 구경하며 정보를 만들고 편집한다. <요즘 브랜드>,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