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 에스프레소 머신
입안이 뒤숭숭할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찾아나선다. 맛있는 커피집이 없을 때면 대형 커피체인점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종업원이 반문한다. “에스프레소는 진하고 쓴 소량의 원액 커피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종업원이 손님에게 커피 교육도 시켜준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다. 요즘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가 보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1820년에 고안됐다. 커피를 빨리 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름 역시 에스프레소, 급속이다. 마실 때도 원샷이 어울린다. 예전엔 증기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보일러의 펌프에다 높은 압력으로 물을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뜨거운 증기가 커피사이를 꿰뚫고 나와야 하니, 기계의 압력과 커피입자 사이의 공간이 관건이다.
그래서 바리스타(Barista; 커피만드는 사람)가 중요하다. 제대로 된 크레마(하얗게 생긴 크림층)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소량의 쓴 커피인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잘 뽑아낸 에스프레소는 절대 쓰지 않다. 조금은 시고, 조금은 쓰지만, 결국엔 달다.
여러가지 음식을 뒤섞어 먹은 후의 에스프레소 한잔은, 진공청소기와 같다. 모든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입 안의 상태를 밥 먹기 전으로 되돌려주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내 삶에도 이런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글·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일리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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