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난…’
[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선배는 예전부터 들고다니던 검은 직사각형의 가죽가방을 메고 있었다. 소위 짭새가방이라 불리던, 지퍼를 열지 않고도 앞뒤에 뭔가를 잔뜩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 거기서 짭새가 사과탄이나 접힌 곤봉 따위를 쉽사리 꺼내들던 바로 그 가방이었다.”(권여선의 <분홍리본의 시절> 중)
소설을 읽다 ‘짭새’라는 낱말에 눈길이 갔다. 그래, 그 새들이 대학 캠퍼스를 훨훨 떼지어 날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지. ‘짭새’는 몇가지 종류로 나뉘었다. 말단 전투경찰, 청재킷을 입은 공포의 백골단, 그리고 사복 입은 정보과 형사들. 그 사복은 사복이었으되 100미터 앞에서도 식별이 가능했다. 깃이 있는 조금 긴 점퍼. 색깔은 희거나 연함. 몽땅 채운 단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으나 아무튼 짭새 같은 인상.(전국의 정보과 형사 여러분 미안합니다) 반대편 시위대는 어땠나? 운동권 여학생들은 하이힐보다 운동화 쪽이었다. 선두에서 짱돌과 화염병을 날리던 남학생들은 교련복을 자주 입었다. 복면을 쓰고 명찰은 청테이프로 가렸던가.
6월항쟁 20돌이 코앞이다. 그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언론 보도가 넘쳐날 것이다. 그런 거 말고, 6월항쟁의 거리를 재현하는 패션쇼는 어떨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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