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칼’ 하면 ‘친구’가 기억납니다.
다정한 친구 얼굴이 아니라 장동건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칼이 밥도 아닌데 배부른 인사를 하다니요. 묵긴 뭘 많이 묵었단 말입니까. 흥행영화의 폐해라 우기고 싶습니다.
칼은 정말 친구입니다. 요리의 친구입니다. 처음 기획할 때 칼은 ‘요리의 친구들’이라는 조그만 상자기사의 주인공에 불과했습니다. 200자 원고지 서너 장 분량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일약 커버스토리로 격상되었습니다.
한국영화는 칼로 지지고 볶습니다. 얼마 전 관람한 <우아한 세계>도 그랬습니다. 송강호가 용을 쓰던 순간에 두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상대편 조폭에게 받은 칼날을 두 손으로 잡고 뽑아내려던 그 장면 말입니다. 그 칼 역시 요리용이었습니다. 이제 를 읽고 식견을 갖춘다면, 조폭영화를 보다가 전문가인양 이런 멘트를 날릴지도 모릅니다. “앗 저건 회칼이다. 어 중식당 칼도 있네? 근데 왜 저쪽 패거리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칼을 휘두르고 난리야?”
인간을 음식 취급하는 야만 행위는 중단돼야 합니다. 아니 사소한 폭력도 용인돼서는 안 됩니다, 라고 쓰려는데 오늘 오후에 느닷없이 걸려온 어느 남성 독자의 항의전화가 생각납니다. 그는 지난호에 실린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에 관해 분노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별 뒤 흑색선전까지 하는 포(4)다리 남친의 행태’에 대한 대처법이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치 1주어치 교사’니 ‘50만~70만원 합의금’이니 하는 표현이 신경을 거슬렀다고 합니다. 보복 수단으로 칼은 더더욱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칼로 사람을 요리하지는 맙시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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